[이범의 불편한 진실] 인공지능 교육? 플랫폼 중립성부터!
한국의 공교육에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학력 저하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으로 인공지능이 손꼽히고 있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예를 들어 아이가 매우 낮은 수학 점수를 계속 받아오는데 학교에서는 적절한 대응 없이 방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 인공지능이 유용한 이유는 개인별로 ‘맞춤형’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생의 성취도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과업을 부과(큐레이션)하고 관리하는 데 인공지능만한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분수 덧셈을 잘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학습을 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능이 자동화되어 있으므로 교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다.
인공지능의 도입이 임박했음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징후는, 이주호씨가 최근 청문회를 마쳤고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에듀테크에 관심을 가져왔고, 2020년에는 아시아교육협회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취약계층 아동의 학습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가 설립한 아시아교육협회에 한 에듀테크 업체의 대표가 출연했고 이후 국내 굴지의 에듀테크 기업인 ‘아이스크림(i-Scream)에듀’가 1억원을 기부했음이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가 교육업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지 여부와 별도로, 대한민국 공교육계에 에듀테크가 접목되는 접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미 구조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이스크림에듀는 전시콘텐츠 전문업체인 시공테크(전두환씨 장남이 설립한 시공사와는 무관하다)의 자회사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많은 초등학교 교사들이 수업에 활용하고 있는 콘텐츠 사이트인 ‘아이스크림’의 운영사로서 교육계에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2021년 1월 ‘아이시티(ICT) 연계 교육서비스 운영 및 유지관리’의 위탁사업자로 ‘아이스크림미디어 컨소시엄’을 선정한 바 있다. 이 시스템은 교사들이 수업 콘텐츠를 쉽게 제작·공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인데, 이변이 없는 한 향후 ‘K에듀 통합플랫폼’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문제는 K에듀 통합플랫폼에 탑재될 콘텐츠와 서비스에는 공공과 민간이 모두 참여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아이스크림에듀 또한 여기에 참여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이다. 즉 플랫폼 운영자이면서 동시에 콘텐츠 사업자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플랫폼 운영자가 콘텐츠 사업자가 되는 것은 왜 문제인가? 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소유한 업체가 영화를 직접 제작하여 스크린을 과점하는 사례를 생각해보면 쉽다. 그런데 영화보다 교육에서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 멀티플렉스 극장과 달리 K에듀는 ‘독점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미 교원단체들이 “교육 콘텐츠를 제작·판매하는 특정 업체에 교사들의 콘텐츠 활용 경향에 관한 빅데이터가 흘러가면 (어떤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은지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향후 사교육 상품 제작·판매에 활용될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교육부는 서버가 정부 소유이고 데이터 유출이 없도록 보안체계가 작동할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서비스 운영을 외주로 맡겨놓고서 데이터 유출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설령 데이터 유출이 없다 할지라도 플랫폼 운영 과정에서 확보된 핵심적인 암묵지(tacit knowledge)가 콘텐츠·서비스 제작에 활용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디지털·인공지능 활용 교육이 성공하려면 에듀테크 업체가 콘텐츠·서비스를 제공하고, 교사와 학생이 콘텐츠·서비스를 선택하고, 정부가 종량제로 에듀테크 업체에 지불하는 일종의 오픈마켓이 구성되어야 한다. 현행 검정교과서 제도하에서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제작하고, 교사가 교과서를 선택하고, 정부가 대금을 출판사에 지불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여기서 경쟁을 활성화하여 품질을 높이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업로드되는 콘텐츠·서비스 모듈을 비교적 작은 단위로 지정하여,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신생 업체들의 시장 진입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스크림과 같은 거대 서비스가 시장을 독점할 우려가 있다. 둘째로 콘텐츠·서비스에 참여하는 에듀테크 업체들은 플랫폼 운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플랫폼 중립성을 위한 법제화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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