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發 ‘돈맥경화’… 지자체도 신용등급 평가해야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2022. 11. 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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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신순규의 월가에서 온 편지]
강원도 채무 불이행 결정
투자자와 시민 보호하려면

미국 정부 시스템은 국가를 대표하는 연방정부와 50개 주를 대표하는 주 정부, 그리고 각 주에 소속된 카운티와 시티 또는 타운 등으로 나눠진다. 증권 분석 일을 28년간 해온 나는 약 10년 동안 주식이나 회사채가 아니라 주 정부 및 소속 지자체 등이 발행하는 지방채를 분석하는 일을 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애널리스트에게 지난달에 일어난 레고랜드발(發) 한국 채권 시장의 유동성 경색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정치 리더의 채무 불이행 결정에 대해 비판을 하고 싶진 않다. 비슷한 결정이 거의 불가능한 신용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한상엽

내 아들과 아내처럼 레고를 매우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레고랜드는 꼭 가보고 싶은 테마파크일 것이다.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에 있는 레고랜드를 각각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내겐 꽤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국 레고랜드의 위치는 강원도로 결정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강원도는 2012년 강원중도개발공사(GJC)라는 부동산 개발 업체를 설립했다고 한다. 자금 조달을 위해 GJC가 채권을 발행했는데, 새로 설립돼 사업 성과도 없고 믿을 만한 경영진의 업적도 없었기 때문에 강원도가 직접 채무 보증을 섰다.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레고랜드는 올해 5월에야 문을 열었고, 그때부터 벌기 시작한 돈으로는 9월 말에 지급해야 하는 채무 액수 2050억원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 당연히 보증을 선 강원도가 이 액수를 채권 만기일이었던 9월 29일까지 지불했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강원도는 GJC의 기업 회생 절차를 법원에 요청했다. 간단히 말해 부도를 낸 것이다. 상황을 여기까지 듣고 읽었을 때, 한때 지방채 애널리스트였던 내게 떠오른 질문은 하나였다. 그 결정으로 강원도의 신용 등급이 얼마나 타격을 받았을까? 당연한 질문이 아닌가? 보증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아니 다하지 않기로 한 채무자의 신용 등급은 물론 하향 조정돼야 한다.

융자를 받는 개인에게 신용점수가 있듯이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이나 정부, 그리고 정부 기관들에도 신용 등급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신용 평가 업체로는 무디스 인베스터 서비스와 S&P 글로벌, 피치 레이팅스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강원도의 신용 등급에 관한 그들의 결정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강원도는 무디스, S&P, 피치 사이트에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럼 한국 신용 평가 업체들이 강원도의 신용에 대해 어떤 언급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강원도는 신용 등급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중앙 정부의 영향이 비교적 큰 한국에서는 각 지자체의 신용 등급보다는 한국 국가 신용 등급을 토대로 채권 거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 채권 이자율에 얼마를 더해서 지방채가 거래된다는 말이었다.

GJC 사건으로 인해 채권 시장이 심각하게 얼어붙지 않았다면, 지자체만이 아니라 채권 투자로 이루어지는 자금 조달에 의존해야 하는 모든 기업과 정부 기관들에 큰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다면, GJC의 디폴트를 결정한 강원도 지사를 향한 비판은 아마도 하루 이틀 기삿거리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결정이 강원도에 별 타격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비판이나 기자들에게 받는 불편한 질문을 견뎌내는 것이 레고랜드 개발사를 살리기 위해 2050억원의 시민 세금을 내어놓는 것보다 나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자금이 필요한 발행사들과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채권자들이 의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업적, 결정, 선택 등에 따라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결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업이나 살림살이를 잘한 발행사에는 더 높은 신용 평가가 주어져야 하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반면 채권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을 어긴 발행사는 신용 등급의 하락으로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지거나, 지급해야 하는 이자율이 더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고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나는 ‘레고랜드법’을 추천한다. 정부가 발표한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책도, 강원도가 12월까지 약속한 전액 상환도 한계가 있고 일시적인 것들이다. 한번 잃게 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국법에 따른 책임이 명백한 채권 시장 시스템이 보증돼야 한다고 본다. 우선 제3자를 위해 지불 보증한 액수를 포함한 총 채무 액수가 얼마 이상인 지자체는 신용 등급을 측정하고, 그 측정 기한을 설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필수일 것 같다. 투자자들이 의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신용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자체가 사용할 수 있는 보증의 종류도 몇 가지로 좁히고 각각 규칙을 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 보증 (general obligation)은 세금을 올리는 방법까지도 동원해서 원금과 이자 지급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무조건적인 약속이다. 신용 등급을 가장 많이 높여주는 선택이다. 또 의회 승인 보증(appropriation)은 예산에 지급 액수를 포함하겠다는 계약인데, 이것은 도의회나 시의회가 지급 결정을 할 수 있는 옵션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한 사람, 즉 도지사나 시장의 결정만으로 부도가 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신용 등급 조정과 이자율 차이에 신경을 쓰게 함으로써,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투자자들과 시민들을 보호하는 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억하자. 나라 자산, 연금, 보험금 등 어마어마한 국민들의 돈이 채권에 투자된다. 그러니 레고랜드법은 결국 국민을 보호하는 법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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