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 당장 물러가라
일요일 아침, 아내의 비명에 잠이 깼다. “어떡해, 어떡해.” 잠자고 있는 동안 서울 이태원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가 일어났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혔다. 아침을 먹다가 아내가 울었다. 같은 시간에 이 땅의 어머니들이, 젊은이들이, 산천초목이 울었을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걸었다. 바람이 없어도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있었다. 조붓한 산길은 낙엽에 덮여 있었다. 햇살이 붉은 잎에 군색하게 붙어 있었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도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갔다. 나무도 햇살도 사람도 말이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건만 죽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래, 그들은 어제 보았고 내일도 나타나는 우리 젊은이들 얼굴이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누군가 전화를 했다. 윤제림 시인이었다. “전화했었네.” “네. 갑자기 형 생각이 나서요. 지난번 칼럼에 용산역 압사 썼잖아요. 형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때랑은 다르겠지만.” 시인의 목소리가 낮고 극히 건조해서 다른 사람 같았다. 대답할 말을 찾다가 엉뚱한 답을 했다. “그냥 걷고 있어.” “다 무너졌어요. 이거 공업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공업.”
공업(共業), 공동으로 선과 악의 업을 짓고 함께 고(苦)와 낙의 인과응보를 받는 것을 이름이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함께 숨 쉬고 함께 업을 짓는 중생이다. 그래서 공업중생이다. 개인의 운명은 혼자만의 업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공동의 업에도 영향을 받는다. 부처도 “삼천대천세계가 한 인연이나 한 사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인연과 한량없는 사실로 이뤄진다”(화엄경)고 이르셨다. 중생이 자신의 공간에서 따로따로 업을 짓는 것 같지만 모든 업은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연기(緣起)이다.
1974년 9월28일 ‘용산역 귀성객 압사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현장에 있었다(경향신문 9월3일, 김택근의 묵언). 너도나도 열차를 타려 구름다리로 몰려가 순식간에 사람들이 엉켰고, 쓰러진 사람 위로 사람이 쓰러졌다. 사상자는 거의가 여공이나 식모였다. 지금도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면 그날 광경이 떠오른다. 그때의 음산했던 장면들이 불쑥 나타난다. 죽을 뻔했던 귀성객의 한 사람으로서, 현장의 목격자로서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용렬하고 문약(文弱)해서 여전히 그날 그 자리를 서성거리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변한 게 없다. 용산역에서 아주 가까운 이태원에서 같은 참사가 일어났다. 어림 반세기가 지났지만 젊은이들이 압사했다. 어떤 시점에 발생한 일은 우주 속으로 흩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맴돈다고 한다. 업력이 중력을 뚫고 나갈 수 없음이다. 그래서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려면 오늘의 우리 행위를 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도 업보가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 재앙으로 닥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지만 업장을 녹일 단 하나의 행위가 있으니 바로 참회이다. 모든 종교는 복과 운을 빌기 전에 참회부터 하라고 이른다.
성철 스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삼천배를 하라고 시켰다. 그런 후에야 마주 앉았다.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는 삼천 번의 절,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거의가 중간에 울음을 터뜨린다. 탈진에 이르는 고통 때문이 아니다. 저 아래 밑바닥에 잠겨 있던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교만과 위선이 빠져나간 자리에 한없이 작고 초라한 자신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을 있게 한 무수한 존재들이 보인다. 미천하고 연약한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그들이 고맙다. 그 고마움을 고스란히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공업을 깨닫는 공명(共鳴)이다. 성철 스님은 삼천배를 통해 일체중생을 위해 참회하라고 이른 것이다. “자기를 바로 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남모르게 남을 도와라.”
세월호가 침몰하고도 참사는 끊이지 않았다. 진정으로 참회하지 않았다. 시늉만 냈을 뿐이다. 책임 전가에서 편 가르기 선동까지 더러운 일들이 꼬리를 물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이 클수록 과보가 크다. 권좌에 앉은 자와 저자의 필부는 그 업의 질량이 다르다. 이태원 참사에 연루된 자들은 입 다물고 당장 물러가라. 더 이상 세상에 먼지를 피우지 말라. 남아서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가증스러운 핑계를 대지 말라. 민심이 선이다.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 지금 민초들이 울고 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죄송합니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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