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미 국방 “B-1B, 텍사스서 10시간이면 한국 도착”

이철재 2022. 11. 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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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안보협의회의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3일(현지시간) 열린 제54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SCM은 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이 주도하는 양국 군사 정책 협의·조정 기구다. 전날 펜타곤에서 열린 기념 만찬 도중 북한이 일본 쪽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이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의장 등은 만찬장에서 곧바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 연장을 제의했고 오스틴 장관도 흔쾌히 동의했다. 지난달 31일 시작한 이 훈련은 당초 4일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북한의 연쇄 도발 속에 하루 더 늘어나게 됐다. 북한은 SCM 회의 시작 직전에도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세 발을 쐈다. 오스틴 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최근 ICBM을 포함해 다수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건 안보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선 이유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주저하도록 만드는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이는 방안이 이번 SCM의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확장억제는 예전엔 핵우산으로도 불렸다. 이후 핵우산 외에 스텔스 전투기 등 재래식 무기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 능력 등 억제 수단이 늘면서 확장억제로 발전했다. 최근엔 우주·사이버·전자전 등 ‘진전된 비핵 능력’도 덧붙여지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확장억제가 북한을 상대로 통하려면 미국이 유사시 한국을 위해 억제 수단을 반드시 쓸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두 장관이 이날 SCM에서 확장억제와 관련해 정보 공유와 협의 절차, 공동 기획과 실행 등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적잖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기 판단과 대응, 확장억제 수단의 결정은 물론 핵 사용을 결심하는 데 있어 한국의 지분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는 미국이 역대 SCM에서 ‘흔들림 없는 확장억제 공약 재확인’이란 수사적 표현으로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담보하려 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구체적이고 진일보한 것이란 평가다.

실제로 확장억제와 관련해 한국은 그동안 미국의 이행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이에 국내 정치권과 외교가 일각에선 유사시 미국이 자국 영토에 대한 핵 공격 위험을 감수하고도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 회의를 통해 미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구체적 운용 계획도 마련하는 등 ‘한국형 확장억제’ 구축을 위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양국이 SCM에서 북한의 전술핵을 특정한 뒤 이에 대한 우려와 대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확장억제를 강화해 나가기로 한 점은 분명 진일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총론엔 찬성했지만 아직 각론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에 관여할 수 있는 문이 막 열린 셈”이라며 “빨리 입장하게 될지, 아니면 조금 늦어질지는 앞으로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또 매년 확장억제 수단 운용 연습을 실시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따라 한·미 대응 능력을 조정하는 ‘맞춤형 억제 전략’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기로 했다. 이와 관련, 이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신뢰한다는 뜻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이번 SCM의 또 다른 성과로는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 수준 전개를 꼽을 수 있다. 이 장관은 “차관보급 협의 채널과 합동참모본부·연합사령부 간 채널을 통해 필요할 때 적시에 전략자산 배치를 미국에 요청할 경우 바로 전개하는 것과 효과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상시 배치 수준의 전개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략자산을 전개하기로 한 합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 상시 배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효과가 그에 맞먹도록 전략자산의 전개와 강도를 높이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실제로 정상회담 이후 F-35A 스텔스 전투기와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 핵추진 공격 잠수함인 아나폴리스·키웨스트함 등 전략자산이 잇따라 한반도에 전개됐다.

오스틴 장관은 “전략자산 전개는 (북한에 보내는) 아주 강력한 신호가 될 것”이라며 “준비 태세 강화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한·미)는 매우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국방장관은 회의 후 앤드루스 공군기지도 방문해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와 B-52H 등을 함께 둘러봤다. 오스틴 장관은 “B-1B는 텍사스 공군기지에서 한국까지 10시간 걸리고 괌에 두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략자산의 한국 배치를 요구하는 일각의 목소리에 대해 굳이 한국이 붙박이로 둘 필요가 없다는 점을 에둘러 설명한 것이란 분석이다.

그런 가운데 국회 국방위는 4일 전체회의를 열고 ‘북한 탄도미사일 도발 규탄 및 중단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국방위는 결의안에서 “북한이 도발을 지속할 경우 국제적 고립과 자멸을 초래해 김정은 정권의 생존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향후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북한 당국이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여야는 오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결의안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워싱턴=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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