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놓고 뜬눈으로 밤새워” 민통선 주민들, 북 도발에 가슴 졸여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주민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여차하면 대피하기 위해 짐도 싸놨다. 초긴장 상태다. 잇따른 북한의 도발 때문이다.
지난 2일 새벽 미사일이 넘어왔다. 휴전 이후 처음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북한 접경지역인 민통선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3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부전선 민통선 내 횡산리를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태풍전망대 아래쪽에 위치한 횡산리는 중부전선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27가구 57명이 살고 있다. 김학용 이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강도가 점점 높아져 가니 민통선 주민들은 너무 불안하다”며 “울릉도 공습경보 직후 마을 주민 50여명 전원이 마을 입구 지하에 있는 ‘민방공 대피소’로 긴급 대피할 채비를 마치고 여러 시간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횡산리 마을 민방공 대피소는 128㎡ 규모다. 지하에는 비상 발전기, 급수시설, 방폭 문, 방폭 밸브, 창고, 방송 청취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이날 오후에는 시설을 관리하는 연천군 공무원 3명이 나와 긴급 시설점검을 하고 돌아갔다. 이날도 주민들은 전날에 이어 대부분 집에 머물며 뉴스 속보를 통해 북한군의 추가 도발 여부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김학용 이장은 “지난 2일 북한의 추가 도발 시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해 민통선 바깥으로 마을 주민 전체를 긴급 대피시키기 위한 ‘전시 주민 대피계획’을 군부대와 긴급 점검했다”며 “연일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대피를 위해 짐을 싸기는 8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면서 면사무소 마당 등에 총탄이 날아들자 주민들은 면사무소 옆 대피소로 피신했다. 당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남북이 군사적으로 긴박하게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날 마을 인근 민통선 내 밭에서 만난 출입영농자 이모씨는 “북한이 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처음 발사한 것도 모자라 3일에는 미국을 겨냥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쏘아대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거듭된 위협 속에서도 탈북민 단체들은 대북전단을 접경지역 일대에서 계속 살포하고 있어 더 좌불안석”이라며 “북한이 핵실험 마저 강행한다면 접경지역의 긴장이 극에 달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횡산리 주민들은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한 해법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박모씨는 “우리 정부도 물러서지 말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북한이 더는 까불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모씨는 “최근 남북 대화가 단절된 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원인”이라며 “국지적 도발로 이어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막바지 가을걷이가 한창이어야 할 횡산리의 밭에는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휴전선 남측 11개 전망대 중 북한과 가장 가깝다는 태풍전망대도, 생태공원인 ‘임진강 평화습지원’도 방문객은 없었다. 습지원 옆 미술 전시관인 ‘연강 갤러리’와 ‘두루미 탐조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임진강 평화습지원의 이광길 소장은 “지난 2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태풍전망대 출입이 금지됐다”며 “이달 초부터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가 월동을 위해 날아와 현재 50여 마리가 빙애여울 일대에서 서식 중이고, 이달 중순쯤이면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도 찾아올 때인데 대목을 놓쳤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3일 밤에도 강원 금강군 일대에서 동해 해상 완충 구역으로 포 사격을 벌였다. 횡산리 주민들의 불안한 밤, 불면의 밤이 이어지고 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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