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의 이태원 참사 대응, 총체적 난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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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부터 청장까지 위기 컨트롤타워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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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은 과도한데 역량도 기강도 참담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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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검토하고 국회는 검수완박법 개정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0월 29일 밤에 발생한 핼러윈 압사 참사 희생자 156명의 영면을 비는 국민 애도 기간이 5일 자정에 끝난다. 일부 외국인을 제외하면 장례 절차도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이제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하지만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한 사고의 구조적 원인과 책임 규명 작업은 지금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가 먹통이 된 원인, 긴급 재난 대응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이유 등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동시에 유사한 재난을 막기 위한 사각지대 점검과 제도적 개선 방안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 단순히 책임자 몇 명을 경질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 쉬쉬하다 사고 이틀 뒤에야 공개된 당시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녹취록은 충격적이었다.
13만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파가 핼러윈 파티를 즐기기 위해 운집한 이태원 골목길에서 시민들은 참사 4시간 전인 오후 6시 34분부터 다급한 상황을 알렸다. 시시각각 112로 모두 11차례 신고했지만 4회만 출동하고 7회는 묵살됐다. 그 와중에 10시 15분부터 압사자가 속출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참사 전후 경찰의 대응을 보면 일선 파출소부터 용산경찰서·서울경찰청·경찰청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부실과 난맥상을 드러냈다. 긴급한 비상 상황에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상하 조직 기강도 엉망이었다. 대한민국 경찰의 위기 대응 수준이 이 정도인지 참담한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경찰의 대응이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당시 지휘라인이 사실상 실종 상태였기 때문으로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그날 야간 당직 책임자였던 서울청 112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 류미진 총경은 자리를 비웠다가 사고 발생 1시간 24분 뒤에야 상황실로 복귀했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사고 발생 1시간 21분이 지나 상황실이 아닌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의 늑장 보고를 받았다. 휴일에 충북 제천에서 등산을 마치고 캠핑장에서 취침 중이던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1시간 59분 뒤 이태원역 일대가 아수라장이 된 시점에야 보고를 받았다. 심지어 서울청장과 경찰청장은 윤석열 대통령(사고 발생 46분 뒤)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1시간 5분 뒤)보다 늦게 보고를 받았다니 그날 경찰의 보고 체계와 대응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알 수 있다. 행안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지자체·경찰·소방 간에 구축한 재난통신망도 그날엔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주도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권을 대거 넘겨받았다. 과도한 권한 이양이 일시적으로 이뤄지면서 당시에도 경찰이 과부하가 걸려 사건 처리가 심하게 지연된다는 하소연이 많았다. 설상가상 이번 이태원 참사는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터졌고, 경찰의 무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번의 대형 재난사고에 대해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없다.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 지난 9월 시행되면서 검찰 수사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바람에 원인 규명도 경찰의 ‘셀프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경찰청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참사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에 나섰는데, 벌써부터 수사 결과를 국민이 얼마나 신뢰할지 의문이란 얘기가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7일 열린다. 정쟁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가려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필요하면 법무부 장관은 상설특검 발동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회는 비현실적 검수완박법을 바로잡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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