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천수답에 드는 가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부동산개발(시행)과 시공을 같이 하던 한 주택건설업체 사장이 지금은 사라진 천수답 이야기를 꺼냈다. “주택사업이라는 게 천수답하고 똑같아요. 정부나 금융권(하늘)에서 규제 완화나 자금 지원(비)을 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거든.” 이 업체는 당시 미분양이 적지 않아 부도설이 끊이지 않았다. 겨우 부도는 면했지만 그 이후로는 아파트를 짓지도, 개발하지도 않는다.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건설사의 부도설이 끊이지 않는다. 해당 업체가 여러 근거를 들며 아니라고 부인해도 다음날이면 또 다른 지라시에 등장한다. 주택사업 구조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천수답 구조와 닮은 때문이다. 주택시장은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데 전 정부가 쳐 놓은 규제 그물은 여전하고, 레고랜드발(發) 채권시장 자금경색으로 돈줄까지 마르고 있다. 농사를 망칠 게 뻔한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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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권시장 불안, 주택 공급 빨간불
주택시장 연착륙 방안 서둘러야
」
당장 주택 착공이 눈에 띄게 줄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주택 착공 규모는 전국 26만1193가구로 지난해 동기 대비 24.9%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주택 인허가 물량은 34만7458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1% 증가했다. 인허가가 늘어나는 데도 시장이 침체하고 돈줄까지 마르면서 실제 착공은 되레 줄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비단 시행·건설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8년처럼 전국 곳곳에서 주택이 남아돌 때라면 시행·건설사의 방만 경영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지금은 정부가 나설 정도로 주택 공급이 시급한 상황이다.
집값이 하락하다 못해 폭락하고 있어 주택 공급이 한가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치솟는 대출 이자로 주택 수요가 움츠러들고 있으나 물가가 잡히고 금리가 안정된다면 주택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낡은 주택은 늘어만 가는데 신규 입주 물량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지은 지 2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지난해 총 주택은 1881만2000가구로 1년 전보다 1.5%(28만6000가구)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1980년 이후 가장 낮은 연평균 주택 증감률이다.
부동산R114 조사 결과 2024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1881가구로 이 회사가 1990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저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분양 여파로 2012년 서울 입주 물량이 역대 최저인 2만336가구를 기록했을 때보다도 41%가량 적다. 규제로 일관했던 전 정부가 정권 말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조만간 대규모 주택 공급을 위한 첫 신규택지 후보지를 발표할 계획이다. 당초 이번 주에 발표 예정이었지만, 이태원 참사가 터지면서 정부 역량을 사고 수습에 집중하기 위해 발표 일정을 조정했다. 앞서 국토부는 8·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신규택지 조성으로 5년간 88만 가구 등 총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내년까지 15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후보지를 선정해 순차적으로 발표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그 첫 후보지를 이제 공개할 참이다.
하지만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부동산시장이 경착륙하면 신규택지를 아무리 많이 발표한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다. 아무도 집을 지으려 하지 않을 테니 주택 공급 계획은 멀어지고, 언젠가 또 다시 집값이 들썩여 국민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천수답에 물을 댈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 신규택지 발표 때 이 방안이 함께 나오길 기대해 본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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