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서영의 별별영어] 이해 부족(Lack of Understanding)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만 시켰지 그들이 어려서부터 핼러윈을 알았고 코스프레 문화도 자연스레 접했다는 건 몰랐습니다. 한류가 알려져 좋았지만 남의 문화는 이해하지 못했지요. 10월 마지막 날이 기독교의 ‘모든 성인의 날(All Hallow(Saints)’s Day)’ 전야인데 일찍이 브리튼에서 살아온 켈트족의 연말 풍속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날이라서 귀신도 놀랄 복장을 하고 즐기는 축제의 날이 된 것도요. 코로나로 갇혔던 마음에도 공감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서울에 서양 귀신이 웬 말이냐고 그들을 나무랐어요.
그 기저에는 우리의 권위적인 문화가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문화죠. 어느 사회에나 사람들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강조하는 반면 서구 사회는 평등을 지향합니다. 언어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요.
영어는 대등하게 말하기 쉬운 언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대를 지칭하는 대명사 ‘you’이지요. 이것 하나로 친구나 선생님, 할머니와 사장님과도 편히 말할 수 있어요. 또한 대부분 서로 ‘이름(John)’을 사용합니다. ‘타이틀과 성(Dr. Smith)’ 같은 존중의 표현이 있지만 웬만하면 처음 만난 사이라도 사장과 사원도 이름을 부르며 상하관계보다 친밀함에 가치를 둡니다.
이에 비해 한국어는 서로 나이와 직위를 살펴 알맞은 호칭과 경어법을 골라 써야 합니다. 상명하복 문화 속에 말로 무수히 상처받아 본 우리에겐 영어의 친밀함과 단순성이 낯설기도 하죠.
본래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지만, 거꾸로 언어를 조율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도 합니다. 최근 IT업계와 스타트업 회사에서 시작된 서열 파괴와 호칭 평등화 움직임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지요. 요즘은 직함과 직위를 내세우는 것이 좀 구태의연해 보일 정도예요. 하지만 변하지 않은 영역이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에도요.
이름 하나로 대표되는 개인, 수평적인 관계야말로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형식과 허세를 내려놓고 위계를 넘어 사람들 사이에 평등하고 진솔한 관계가 만들어질 때 진짜 소통이 이뤄지지요.
우리가 예측도 방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참사를 겪게 된 데는 그간 여러 영역에서 소통과 이해가 부족했다는 원인도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안타깝게 떠나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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