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국민 죽음 앞에 ‘통증 느끼지 못하는’ 정권은 위험하다

박호재 2022. 11.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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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어린 학생들의 죽음 앞에서도 '통증을 느끼지 않는' 권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결국 광화문 촛불로 타올라 정권을 몰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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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에 눈물 짓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윤석열 대통령 사과해야 마땅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독일의 대표적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드 브레이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집에 실린 시 한 구절이다. 국가가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위태로운 처지에 통렬하게 와 닿는 시구(詩句)이다.

물론 브레이트의 이 시구는 불운과 행운의 갈림길을 예기하는 것이 아닌, 죽어간 자들을 보는 살아남은 이들의 ‘통증’을 은유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국민들이 몇 날 며칠째 눈물을 흘리며 견디기 힘든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들은 텔레비전 영상을 보며 울고, 사고현장에 차려진 추모의 광장에서 울고, 합동 분향소에서 울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사연을 전해 들으며 울고, 압사의 현장에 굴러다니는 유품들을 보며 울고, 죽어간 이들과의 지난 시간을 애달프게 되새기는 지인들의 비통한 몸부림을 보며 또 눈물을 흘린다.

시인 정철훈은 ‘농부의 죽음이 유난히 슬픈 이유는 추수를 앞둔 종말이기 때문이다'고 죽음이 지닌 또 하나의 비애의 본질을 토로했다. 그렇다. 이태원의 죽음은 찬란한 미래라는 결실이 소멸돼버린 숱한 청춘들의 안타까운 종말이었기에 우리를 더욱 극한의 슬픔으로 몰아세운다.

임계점을 넘어서버린 이 슬픔의 쓰나미 속에서, ’애도 기간‘이라는 것을 정한 정부의 조치는 오만하고도 철면피하다. 남은 유족들은 물론 대다수 국민들이 앞으로도 숱한 시간 동안 이태원의 참사를 고통스럽게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의 시간들이 새삼 떠오른다. 박 정권은 사실상 최순실이 아닌, 세월호 침몰과 함께 가라앉았다. 국민들은 어린 목숨들의 죽음 앞에서도 정권의 안위를 위해 대통령의 시간을 속이고,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로 망언하고, 골든타임에 그 어떤 유효한 조치도 취하지 못한 무능과 무책임을 ’할일 다 했다‘고 변명하는 ’대통령의 사람들‘의 후안무치를 보면서 절망하고 냉혈한 정권에 대한 분노의 칼을 가슴속에 품었다.

어린 학생들의 죽음 앞에서도 ’통증을 느끼지 않는‘ 권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결국 광화문 촛불로 타올라 정권을 몰락시켰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앞에서 우리는 다시 그 데자뷰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참사 직후 국민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각료, 단체장, 고위 공직자 그 누구도 그 죽음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지 않았다. 사고의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할 궁리에만 골몰했다.

112 신고가 쇄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에야 이들은 비로소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매일 일과처럼 조문 길에 나서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사과를 미루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간 참사 앞에서 책임의 경계를 따지는 듯 사과에 인색한 윤 대통령의 처신에 국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경위파악은 국회의 시간으로 넘겨졌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거듭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져야 할 이들을 단죄해야 할 것이며, 구멍 난 안전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무통각증‘이라는 유전병이 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 질병이다. 외부의 자극에 통각으로 반사하지 못하기에 늘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나 질병에 의한 통증을 느낄 수가 없어 생명의 위협에 처할 때가 많다. 이처럼 통증을 느끼는 것은 괴로운 체험이지만, 역설적으로 생존을 지켜주는 모든 생명체의 불가결한 감각이기도 하다.

이태원 참사 이후 펼쳐진 윤석열 정권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보며 국민의 죽음 앞에서 ’통증을 느끼지 않는‘ 정권이라는 의구심을 거둘 수가 없다. 국민의 아픔에도 거리낌이 없는 정치의 무통각증…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정권은 위험하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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