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잊지 않기 위하여
인간에 애정 담은 문학정신 닮아
옌롄커, <한쪽 팔을 잊다>(‘그해 여름 끝’에 수록, 김태성 옮김, 넥서스)
사람들은 인즈의 말을 믿지도 않고 확인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곤 “밥이나 먹어!” 한마디만 던졌다. 이 사고가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듯. 인즈는 폐지 한 장을 구해 자줏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팔을 덮어주다가 가운뎃손가락의 반지를 본다. 진방은 구리에 도금한 금반지를 끼고 다녔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누군가 인즈를 한쪽으로 잡아끌며 조용히 말했다. “모두가 공사장에서 일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거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병원으로 실려 갔던 진방은 사망에 이른다. 사고가 왜 일어났으며 누구의 책임인가.
부상자들의 혈흔이 스며든 모래까지 교반기에 넣고 섞어서 시멘트 반죽을 만드는 사람들, 묵인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열일곱 살 인즈는 어떤 결심을 한다.
공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버드나무 묘목림으로 옮겨놓고 시멘트 포대로 다시 덮어주었던 팔을 인즈는 커다란 비닐로 포장한 다음 잘 묶었다. 몇 겹씩 정성껏 포장하느라 “아마도 흙과 나뭇잎 부스러기도 팔과 함께 싸였을 것이다.” 그리고 인즈는 사람들이 잠든 사이 짐을 꾸려나왔다. 진방의 팔이 든 가방을 들고 걸어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곤 이틀 만에 허난 서쪽의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누군가 인즈를 보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진방은 죽었는데 너는 살아서 돌아왔어?” 진방의 장례는 이미 보상금으로 성대하게 치른 후였고 유골을 매장해버린 뒤였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온 인즈는 삽 한 자루를 챙겨 진방네 묘지로 갔다. 진방의 팔을 담아 왔던 비닐봉지를 열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만다. “봄날의 따스한 온기로 인해 버드나무 묘종(苗種)이 돋아나 있었다.” 거기선 맑고 은은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비닐봉지에 붙어 있는 그 묘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봉지 안에 든 것은 진방의 팔이라기보다 묘종을 키우기 위한 특별하고도 비옥한 흙처럼 보였다.
“그렇게 버드나무 묘종을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인즈는 이를 진방의 무덤 앞에 잘 심어주었다.”
인즈는 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진방을 잊지 않았다. 그게 진방이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 일터에 있던 사람이 자신일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인즈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애도했다. 그 안에서 작고 노란 묘종이 돋아났다. ‘한쪽 팔을 잊다’는 작가 옌롄커의 문학 정신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단편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학은 인간에 대해 영원한 존엄과 애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흔들리지 않는 그 믿음을 인즈라는 청년에게서 보았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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