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잊지 않기 위하여

2022. 11. 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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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 억울한 죽음 기리는 청년
인간에 애정 담은 문학정신 닮아

옌롄커, <한쪽 팔을 잊다>(‘그해 여름 끝’에 수록, 김태성 옮김, 넥서스)

인즈는 이제 막 신분증을 갖게 된 열일곱 살 청년이다. 고향인 허난(河南)에서 베이징의 이 공사장으로 인즈를 데려와 준 사람은 진방. 그들은 베이징 어느 기관의 부속건물을 건축 중인 공사장에서 일했고 다른 인부들과 공사장 옆의 비좁은 가건물에서 생활했다. 3월의 따스한 봄기운이 공사장 밖 강변에 물들고 봄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이 강가에 평화롭게 앉아 있던 날. 부러운 눈으로 한동안 그들을 보던 인즈가 강변길 입구 매점에 가서 진방에게 줄 맥주 두 병을 사갖고 나왔을 때였다.
조경란 소설가
공사장 쪽에서 굉음과 함께 연기와 분진이 솟아오르며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쌓아두었던 벽돌 더미가 무너진 걸까. 그런데 왜 구급차로 쓰이는 트럭이 공사장 남문을 향해 가고 있는 거지? 밀밭을 가로질러 공사장으로 가던 인즈는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무너진 것은 벽돌 더미가 아니라 이미 2층까지 올라간 건물의 벽과 비계였다. 사람들의 아우성과 바닥의 흔적들. 부상자들을 실어나른 트럭이 떠나자 인즈는 퍼뜩 무너진 비계와 건물 벽을 향해 달려갔다. 진방, 그가 있을 텐데. 그러나 진방은 거기에 없고 인즈는 그만 다른 것을 발견했다. 붉게 젖은 시멘트 포대 아래 잘린 팔 한 짝을. 인즈는 남문 쪽으로 뛰었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이곳에 사람의 팔이 하나 떨어져 있다고.

사람들은 인즈의 말을 믿지도 않고 확인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곤 “밥이나 먹어!” 한마디만 던졌다. 이 사고가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듯. 인즈는 폐지 한 장을 구해 자줏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팔을 덮어주다가 가운뎃손가락의 반지를 본다. 진방은 구리에 도금한 금반지를 끼고 다녔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누군가 인즈를 한쪽으로 잡아끌며 조용히 말했다. “모두가 공사장에서 일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거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병원으로 실려 갔던 진방은 사망에 이른다. 사고가 왜 일어났으며 누구의 책임인가.

부상자들의 혈흔이 스며든 모래까지 교반기에 넣고 섞어서 시멘트 반죽을 만드는 사람들, 묵인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열일곱 살 인즈는 어떤 결심을 한다.

공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버드나무 묘목림으로 옮겨놓고 시멘트 포대로 다시 덮어주었던 팔을 인즈는 커다란 비닐로 포장한 다음 잘 묶었다. 몇 겹씩 정성껏 포장하느라 “아마도 흙과 나뭇잎 부스러기도 팔과 함께 싸였을 것이다.” 그리고 인즈는 사람들이 잠든 사이 짐을 꾸려나왔다. 진방의 팔이 든 가방을 들고 걸어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곤 이틀 만에 허난 서쪽의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누군가 인즈를 보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진방은 죽었는데 너는 살아서 돌아왔어?” 진방의 장례는 이미 보상금으로 성대하게 치른 후였고 유골을 매장해버린 뒤였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온 인즈는 삽 한 자루를 챙겨 진방네 묘지로 갔다. 진방의 팔을 담아 왔던 비닐봉지를 열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만다. “봄날의 따스한 온기로 인해 버드나무 묘종(苗種)이 돋아나 있었다.” 거기선 맑고 은은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비닐봉지에 붙어 있는 그 묘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봉지 안에 든 것은 진방의 팔이라기보다 묘종을 키우기 위한 특별하고도 비옥한 흙처럼 보였다.

“그렇게 버드나무 묘종을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인즈는 이를 진방의 무덤 앞에 잘 심어주었다.”

인즈는 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진방을 잊지 않았다. 그게 진방이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 일터에 있던 사람이 자신일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인즈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애도했다. 그 안에서 작고 노란 묘종이 돋아났다. ‘한쪽 팔을 잊다’는 작가 옌롄커의 문학 정신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단편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학은 인간에 대해 영원한 존엄과 애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흔들리지 않는 그 믿음을 인즈라는 청년에게서 보았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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