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작별의 형식
예고 없는 작별에 유가족 애통
도저히 보내줄 수 없는 이별
그 상실감·아픔 어찌 위로할까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계시던 아버지를 우리 아파트 바로 아래층으로 모신 지 꽤 된다. 어느새 여든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는 눈이 침침하고 거동이 불편한 것 외에는 여전히 건강하신 편이다. 그러나 저장해둔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스마트폰 화면에 뜰 때면 매번 깜짝 놀란다. 아버지를 담당하고 있는 요양보호사의 전화는 더하다. 아버지 댁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설 때 잠시나마 나를 엄습해오는 정적의 무게에 가슴이 철렁한 적도 적지 않다.
감당할 수 없는 참사가 10월29일 이태원에서 벌어졌다. 어떤 말로도 그 아픔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망설여지는 이 참사의 느닷없음은 지금 우리 모두를 거대한 슬픔의 한가운데로 이끌고 있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살아가는 동안 축제의 기쁨을 맛보는 것만도 모자라고 아쉬운 젊은 청춘들이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어떤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작별의 형식으로 인해 영원히 작별할 수 없기도 하다.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 광주의 원혼들을 위무했던 소설가 한강은 새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그 작업을 제주 4·3으로 확장한다. 소설가인 화자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친구와 함께 친구의 고향인 제주의 빈 땅에 통나무 수천 그루를 심고 뜻이 맞는 여남은 사람과 함께 그 나무에 검은 먹을 입히는 작업을 기록영화로 남기고자 한다. 소설의 표제이기도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 프로젝트의 가제다. 이 제목을 들은 친구가 묻는다. 작별 인사만 하지 않는 것인지 정말 작별하지 않는 것인지. 화자가 말이 없자 다시 친구가 묻는다. 완성되지 않는 거냐고, 작별이. 그래도 대꾸가 없자 마침내 친구가 말한다.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어쩌면 한강의 이 소설은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만하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작별할 수 있는가, 아니 어떻게 작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애도와 정치가 별개인지 하나인지 확정하기 쉽지 않다.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애도가 우선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진정한 애도는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사태를 방치한 공권력의 문제를 환기하는 데 있다는 비판도 필요해 보인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떤가. 그에 따르면, 죽음의 심연에 가닿는다는 것, 그것과 함께한다는 것은 언제나 사태를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조사와 비판적 문제 제기를 배제하지 않는다. 소설 속 부모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했던 친구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그것은 또한 어떤 언어나 이성의 한계도 초과하는 간절한 접신의 마음, 그 고통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는 몸의 윤리와 무관하지 않다. 친구의 아픔을 되풀이하는 화자의 와병이 그러하듯. 이럴 때 소설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무당 같기도 하다. 그는 대신 죽는 자다. 작별하지 않는 작별은 이렇게 작별한다. 지독한 작별이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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