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한 페이지로 엮은 비가[책과 삶]
녹스
앤 카슨 지음·윤경희 옮김
봄날의책 | 192쪽 | 5만5000원
회색의 견고한 직사각형 상자. 상자의 겉면에는 수영복을 입고 물안경을 쓴 채 정면을 응시하는 한 소년의 흑백 사진이 붙어 있다. 상자를 열면 같은 표지의 책이 나오고, 책을 펼치자 종이가 주르륵 쏟아진다. 페이지의 ‘단절’이 없는 이 책은 192쪽 분량의 종이를 한 장으로 이어붙인 아코디언북. 책은 마치 관을 떠올리게 하는 상자의 사진 속 소년을 위한 ‘묘비명’이기도 하다.
다시 찾아온 애도의 시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긴 하나의 페이지로 엮어낸 책이 번역 출간됐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언급되는 캐나다의 시인 앤 카슨의 <녹스>다. ‘녹스(nox)’는 라틴어로 일몰과 일출 사이의 시간, 밤을 뜻한다.
카슨은 22년 동안 헤어져 있던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책을 만들었다. 그의 오빠는 마약거래 혐의를 받은 뒤 도주해 해외를 떠돌았고, 엄마는 그런 아들을 기다리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죽은 오빠의 삶과 그에 대한 기억의 파편을 채집해 한 권의 비가를 완성했다.
책의 물성 못지않게 구성도 독특하다. 책을 펼치면 왼편에는 로마 시인 카툴루스가 쓴 비가의 라틴어 단어를 하나하나 번역한 페이지가, 오른편에는 오빠에 대한 작가의 상념들이 담겼다.
내밀한 기억을 담은 메모, 유년 시절의 사진, 일기, 편지 등을 오리고 찢어 붙였다. 그렇게 만든 수첩을 본떠 이 책이 나왔다.
펼치면 병풍 같은 모양이 되는 아코디언북의 특성상 기계 제작이 어려워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카슨의 다른 저작들과 달리 주요 언어권에서 번역되지 못한 이유다. ‘활판공방’의 장인 두 명이 초판 1500부를 풀칠해 제작하는 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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