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참전 한국계 前 미군 장교, 생일 이틀 앞두고 전사

박정훈 기자 2022. 11. 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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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리 킴 대위

베테랑 한국계 전 미 육군 장교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원했다가 생일을 이틀 앞둔 지난달 5일 전사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지난 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는 “지난달 국제영토방위군 소속 폴 리 킴(Paul Lee Kim·35) 대위가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 지역을 (러시아로부터) 해방시키던 중 전사했다”며 “우리는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산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CSCIS)가 3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5일 폴 리 킴 전 미군 대위가 남부 미콜라이우 해방을 위한 전투에서 숨졌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웅이 됐다"고 전했다./연합뉴스

킴 대위는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전선인 하르키우와 헤르손에서 대대적 반격을 준비하던 지난 8월 “지금 여기서 러시아군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서부까지 밀리게 될 것”이라며 다국적 군대인 국제영토방위군에 자원했다. 이후 남부 전선 등에서 싸우던 그는 지난달 5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던 우크라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에서 전투를 벌였다. 킴 대위는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 12명을 포로로 잡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이후 벌어진 러시아 장갑차 부대의 대규모 포격에 전사했다. 생일을 단 이틀 앞둔 날이었다. 킴 대위의 시신은 고향인 미국 텍사스로 옮겨져 4일 현지의 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킴 대위는 전쟁에서 ‘킬로(Kilo)’라는 콜사인(작전 수행 때 부르는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킴 대위는 1987년 10월 7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006년 텍사스 얼리도고교를 졸업하고 미군에 입대한 그는 일반 사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해 2011년 보병 장교로 임관했다. 2007년부터 1년간은 이라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제82공수사단 등을 거쳐 2017년 대위로 제대한 뒤 오클라호마대를 졸업, 2019년부터는 텍사스 알링턴 대학에서 ROTC 후보생들에게 군사 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킴 대위의 전사 소식이 알려지자 모교와 지역사회는 추모의 메시지를 내며 그를 애도했다. 오클라호마대는 지난달 13일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5일 우크라이나 국제 군단에 자원했던 우리의 동문 폴 킴이 교전 중 전사했다. 우리 동문의 전사를 애도한다”며 킴 대위의 우크라이나 복무 시절 사진들을 올렸다. 얼리도고 역시 지난 2일 홈페이지를 통해 킴 대위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텍사스 현지 매체인 ‘포트워스 스타-텔레그램’은 “12년간 자랑스럽게 조국을 위해 봉사한 폴 킴 대위가 우크라이나에서 주님의 곁으로 돌아갔다”라고 했다. 이 매체는 킴 대위에 대해 “여행,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열정적이었으며 항상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시하는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오클라호마 미식축구, 아버지의 농담과 말장난, 친구와 가족을 사랑한 폴을 알고 지내던 모든 이들은 킴 대위를 그리워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부고 기사에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이 노력한 모든 일과 봉사에 감사드린다” “진정한 영웅이자 민주주의의 방패였던 폴 킴 대위의 희생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등 수십 개의 추모 방명록이 올라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에서 킴 대위를 만났다는 한 시민은 방명록에 “‘킬로’는 전문적이고 군인다운 방식으로 행동했다”며 “자랑스러운 군인의 길을 택한 그와 함께 일한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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