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모과 그림으로 느끼는 무르익은 가을 정취

도재기 기자 2022. 11. 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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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작가’ 윤병락, 노화랑서 개인전
‘모과 작가’ 김광한, 갤러리 BHAK서 개인전
윤병락 작가의 ‘가을향기-상생’. 노화랑 제공

무르익은 가을 과일들이 나오면서 올 가을도 절정에 이르렀음을 느낀다. 사과든 모과든 저마다 독특한 모양새와 향기, 색에는 지난 봄과 여름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 애써 가꾸고 거둬들인 이들의 정성스러운 손길도 담겼다. 사과와 모과에 담긴 그 시간과 사연들을 사과·모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이 있다. 끈질기게 매달리다 보니 실제 사과보다 더 사과같은 그림, 모과보다 더 모과같은 그림이라는 평가 속에 사랑을 받는다.

윤병락 작가의 ‘가을향기’. 노화랑 제공

‘사과 작가’로 불리는 윤병락(54)이 노화랑(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사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작가와 작품일 정도로 이제는 ‘사과와 윤병락’을 떼어놓기 힘들다는 평가다. 특히 전시회 때마다 그의 작품은 모조리 새 주인을 맞이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보니 ‘짝퉁’ 그림까지 나돈다. 실제 작품을 마주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싱싱하고 탐스러운 사과들이 풍요로움, 행복감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윤병락 작가의 ‘가을향기-공존’. 노화랑 제공

오로지 사과 그림에 19년째 매달린 작가의 끈기와 노력, 실험 덕분이다. 윤 작가는 작품에 더 어울리게 캔버스를 직접 만든다. 작업실에 아예 캔버스 공방이 있다. 나무로 지지체를 만들고는 한지를 3~4겹 붙이고 그 위에 작업을 한다. 세심하고 정교한 붓질로 극사실적 표현에 이르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부감법도 한 특징이다. 사과들을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윤 작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업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은 물론 작업이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조금이라도 더 작품의 밀도를 높이려는 작가적 자존심 때문이다. “제 작품을 보면 ‘즐거워진다’ ‘행복해진다’ ‘힐링 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작가로서 큰 힘을 받으면서도 책임감이 든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가을향기’ 시리즈 등 20여 점의 신작들이 내걸렸다. 깊어진 내공으로 한 경지에 이른 ‘윤병락의 사과’들이다. 미술사가인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상큼한 과즙 향이 그림에서 담박 우러날 듯 리얼리티가 빛을 발한다”며 “윤병락은 이제 사과가 된 것 같다. 사과도 윤병락이 된 모양이다”라고 표현했다. 전시는 17일까지.

김광한 작가의 ‘향기가득’ 연작. 갤러리 BHAK 제공

작가 김광한(48)은 모과와 대추·석류 등 과일을 소재로 한 극사실화로 주목받는다. 부모님의 농삿일을 도우며 느끼는 수확의 풍요로움, 자연에의 감사함, 더불어 충만해지는 에너지와 그 마음을 가을 과일에 절절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모과 작가’로 이름난 김 작가가 개인전 ‘향기가득’을 갤러리 BHAK(서울 한남동)에 마련했다.

김광한 작가의 작품. 갤러리 BHAK 제공

20년 가까이 과일을 소재로 한 작업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관찰·연구하며 매달린 모과를 중심으로 한 작품전이다. 모과는 독특한 향기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만 사실 갖가지 가을 과일 가운데 유독 못생긴 것으로 유명하다. 맛도 떫어 직접 베어 먹지 않고 차로 즐긴다.

하지만 김 작가에게 모과는 특별히 규정되지 않은 비정형의 형태가 무한한 조형성으로 다가온다. 투박하고 못생긴 듯한 모양이 오히려 후덕하고 풍성함으로 느껴진다. 인심 좋은 이웃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또 은근한 노란색감, 특별한 향기도 작가의 영감을 자극한다. 모과야 말로 뜨거운 땀과 숱한 노력의 결실인 가을날 황금빛 들녘을 상징한다고 여긴다. 그의 모과 작품은 유독 색감이 두드러진다. 희망적이고 따뜻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을 강조하다 보면 작가 스스로 “행복해 진다”고 말한다. 모과가 익어가면서 풍기는 특별한 향기와 맛도 화면 속에 응축된 듯하다. 시각을 넘어 후각·미각까지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모과로 화면을 가득채우던 작가는 신작들에서 여백을 뒀다.

김광한 작가의 작품. 갤러리 BHAK 제공

김 작가는 “한 때는 많이 담는 것을 풍요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며 “해를 거듭해 작업할수록 여백이 주는 공간감·여유의 가치가 소중해지고,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오히려 더 충만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작가는 그 여백에서 관람객들이 바람과 햇살. 모과에 담긴 시간들을 마음껏 느끼기를 기대한다. 전시는 24일까지.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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