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상환압박→은행대출→이자부담···"부채 스파이럴 우려"
■ 신용경색에 이자공포 가중
고금리에 회사채 발행 언감생심
10월 5대銀 대기업 대출 6.6조↑
연준 따라 한은 또 빅스텝 가능성
신규 대출커녕 이자갚기도 벅차
기업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 73%
"정부, 고정금리 전환 지원해야"
회사채 시장이 크게 얼어붙은 가운데 은행 대출금리까지 치솟으면서 대기업의 자금 조달 경로가 전방위로 막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에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만큼 이자 비용도 훨씬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른다. 기업들이 신규 대출은커녕 기존에 빌렸던 빚을 상환하는 데도 벅찬 비상 상황에 내몰렸다는 평가다. 재계에서는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재무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률(전체 발행 금액 대비 미매각 금액 비율)은 20.5%를 기록했다. 1년 전 미매각률은 0.2%에 그쳤다. 특히 10월 이후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최고 신용등급(AAA)인 한전채마저 미매각이 잇따르는 실정이다. 신규 회사채 발행이 막히면서 지난달 회사채 순상환액은 4조 8379억 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기존 회사채를 갚으려는 대기업들이 은행 창구를 두드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회사채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다 보니 대기업이 은행을 찾고 있다”면서 “최근 채권시장 환경이 악화되면서 기업대출금리는 더욱 오르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기업의 은행 대출 증가액은 27조 9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7배 늘었다. 여기에 10월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증가액이 약 6조 6700억 원에 달했다. 중소기업 대출까지 포함해 이들 은행의 전체 기업대출 잔액은 10월 말 기준 704조 6706억 원으로 한 달 만에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대기업 재무팀의 한 관계자는 “저금리 환경에서는 회사채만으로도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은행에 자주 손을 벌리지 않았다”면서 “요즘처럼 대기업이 은행에 몰리는 상황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고 있어 기업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9월 대출 잔액 기준으로 전체 기업 중 72.7%가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27.3%에 불과했다. 당장 한국은행은 2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10월에 이어 사상 처음 연속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결국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으면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0.75~1.00%포인트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경우 대기업의 평균 대출금리는 5%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올 9월 기준 대기업의 신규 은행 대출금리(가중 평균 기준)는 4.38%를 기록했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이미 5%를 향하고 있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중소기업이 은행에 빌린 신규 대출 가운데 연 금리 5% 이상 비중이 약 40%를 차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가 계속 오르게 되면 우량 기업에도 대출을 거절하는 사례가 잇따를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대출의 부실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전경련은 최근 내놓은 ‘기업대출 부실 징후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최근 레고랜드발 자금 경색이 금융시장에 혼란을 가져온 가운데 또 다른 채무 불이행 사태가 촉발될 위험이 있다”며 “유사시 기업 유동성을 확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경련은 기업대출의 부실 징후로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기업대출 △기업들의 대출 상환 능력 악화 △높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 등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변동금리 기업대출을 고정금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기업들의 요구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재무 리스크가 높아진 만큼 투자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졌다가 금리가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자금난, 신용 경색 등을 겪었다”면서 “현재는 그때보다 금리가 더욱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 기업들이 불어나는 상환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 법인세 부담 경감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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