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어게인 2018' 부활 꿈꾸는 박인수

김동찬 기자 2022. 11. 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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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팔 부상...농구선수 꿈 접고
18세 때 선수 입문, 한때 큐 놓기도 
프로당구 선수 박인수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벌써 23년차 베테랑 선수 대열에 포함된 박인수(41·크라운해태) 선수의 원래 꿈은 농구선수였다. 프로농구 선수의 꿈을 키워갔던 박인수는 중학생 때 불의의 사고로 왼팔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눈물을 머금고 농구의 꿈을 접은 그는 우연히 찾은 당구장에서 새로운 희망을 엿보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당구를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 무렵 3쿠션에 입문했다. 박인수는 고등학교 3학년, 18세의 나이에 경기당구연맹 선수로 등록하면서 선수생활의 길로 접어들었다.

남들보다 일찍 선수 활동을 했지만 굴곡도 많았다. 20대 후반부터는 당구장을 직접 운영했는데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선수 활동을 접기도 했다. 한때 큐를 완전히 놓을 상황에 처해졌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한 박인수를 만나보았다. 

프로당구 선수 박인수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할머니 슬하에서 농구·당구가 위안

박인수의 어린 시절부터 친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감수성이 민감한 10대 나이에 그는 위안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농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릴 때 농구를 엄청 좋아했어요. 단순히 놀이로 좋아한 정도가 아니고 농구 선수가 되기 위한 목표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농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된 사건이 생겼어요. 제가 불의의 사고로 왼팔을 크게 다쳤거든요. 그래서 농구에 대한 꿈을 15살에 접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왼팔 부상으로 농구선수에 대한 꿈을 펴보지도 못하자 그는 상실감과 우울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친구들과 우연히 찾은 당구장에서 그는 새로운 위안거리를 찾아냈다. 어두웠던 그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중3 겨울방학 때 친구들하고 당구장에 갔습니다. 처음 치는 당구지만 칠수록 점점 오묘한 매력에 푹 빠졌던 것 같아요. 남들처럼 저도 4구로 시작을 했는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3쿠션을 시작했는데, 정말 고수들이 무척 많았어요. 4구에선 서울 화곡동에서 저를 이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했는데 3쿠션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귀한 손주를 돌보는 친할머니는 손주의 당구장 출입이 마뜩치 않았다. 남들처럼 부모의 손길을 타야 할 시기에 홀로 된 손주가 마냥 안타까웠던 할머니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어머니는 일본으로 가셨고, 아버지와도 떨어져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제가 당구장을 매일 들락거리니 할머니께서 당연히 엄청 싫어하셨죠. 물론 저도 어릴 때라 당구선수를 꿈꾸지는 않았어요. 단지 재밌으니까 가는 건데 할머니의 반대에 부딪치니 신경이 좀 쓰이기도 했습니다."

박인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당구를 취미로만 즐겼다. 당구선수라는 직업조차 몰랐던 그는 경기 의정부로 이사를 가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결국 18세의 어린 나이에 당구를 평생 직업으로 삼게 됐기 때문이다.

"고3때 의정부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 당구선수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강문수 선배님과 김봉수 선배님이에요. 당시 선배님들을 만나 국제식 대대를 접했고, 그분들의 권유로 결국 고3때 경기당구연맹에 선수로 등록하게 됐죠. 선수 등록을 하고 보니까 제 또래는 한 명 정도 있고 전부 저와 10년 이상씩 차이 나는 선배들만 있더라고요."

박인수는 몇 년 전 헤어졌던 어머니와 20년 만에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프로 당구선수가 된 지금은 어머니가 든든한 버팀목이다. 주변 친척들도 모두 그를 응원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명절날이 되면 친척들이 모이잖아요. 예전에는 주로 다른 삼촌들이 조카들 대학을 간 거를 자랑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요새는 화젯거리가 다 제 이야기예요. PBA가 아무래도 명절에 경기를 하고, 방송에 계속 제 모습이 나오면서 다들 저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조카들도 다 제 팬이고 하니까 더 기운이 나죠. 다만 명절에 당구 이야기 말고 저 결혼하라고도 하는 것이 좀(웃음)."

20년 만에 재회해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 연맹시절 샤빌롯 강인용 회장님과 함께, 목동YG 캐롬 클럽 지인들과 함께.

당구장 빚 때문에 선수 포기 고려

지인 후원 덕으로 선수생활 이어가

박인수는 고3 때 선수를 시작해 지금까지 23년간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두 차례 선수 경력을 중단해야 했다. 한 번은 군 입대였고 다른 한 번은 빚 때문이었다.

"군대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을 쉬었습니다. 물론 자의로 쉰 건 아니었죠. 문제는 3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약 5년 정도 시합을 전혀 안 나갔어요. 20대 후반부터 제가 직접 당구장을 운영하다 보니 시합 참가를 신경 쓸 겨를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구장 운영도 좀 어려운 편이어서 시합에 나갈 형편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할 수 없이 선수 활동을 중단한 채 당구장 운영에만 집중했습니다."

박인수는 결국 당구장을 접었다. 그 과정에서 빚도 떠안고 심신이 많이 지쳤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다시 당구 선수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아예 제3의 다른 길을 갈 것이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때 나타난 지인의 도움으로 그는 다시 선수 생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당구는 진짜 하고 싶은데 당시 당구선수는 수입이 넉넉하지 않았잖아요. 선수는 하고 싶어도 빚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그때 프랑스 명품 당구대 '쉐빌로트 테이블'을 한국에 공급하고 있는 강인영 회장님이 스폰서로 나설 테니 당구를 접지 말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당구를 할 수 있었죠."

사업도 정리하고 서울당구연맹으로 옮긴 박인수는 2018년 최고의 해를 보내게 된다. 그해 연맹 대회에서 우승컵을 휩쓸면서 1년 한 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기세를 이어 프로당구 출범 첫 해인 2019년 PBA로 합류했다.

"2018년은 진짜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힘든 시기를 보냈고 돈도 필요하다 보니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갔거든요. 거기다 레슨도 10명씩 하는 등 하루도 당구를 쉬는 날이 없을 정도였죠. 그러다 보니 실력도 급상승했고, 나가는 시합마다 좋은 성적도 거뒀어요. 그때 우승을 제일 많이 했어요. 제가 살면서 당구를 그렇게 죽을 듯이 쳐본 기억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박인수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롤모델 브롬달과 맞대결 꿈꿔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강동궁

박인수의 롤모델은 3쿠션 '4대 천왕' 중 한명인 스웨덴 당구선수 토브욘 브롬달(60) 선수이다. 그는 자신에게 당구의 영감을 준 브롬달과 언젠가 경기에서 만나길 희망하고 있다.

"PBA에서 쿠드롱이 잘 하고 대세인 건 맞아요. 그런데 저의 롤모델은 브롬달 선수입니다. 어렸을 때 주변에 저보다 잘 치는 사람도 없고, 또 어린 나이부터 선수를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슬럼프에 빠지게 됐죠. 그러다 브롬달 선수 비디오를 보게 된 거예요. 그때 받은 충격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당구를 마치 예술로 승화한 것처럼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길로 공략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하게 된 거죠. 정말 최고였어요. 아직 시합에서 만나지 못했지만 꼭 경기를 해보고 싶은 선수가 브롬달입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박인수에겐 강동궁(SK렌터카) 선수가 피하고 싶은 존재다. 매번 결승 문턱에서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제가 연맹에서 경기를 치를 때 최성원, 조재호 등 정상급 선배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그 형들한테 지기도 하지만 이기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강동궁 선배만 만나면 발목이 잡히는 겁니다. 제 기억엔 거의 못 이겼던 것 같아요. 특히 4강에서 만나면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기피 선수 1호는 강동궁 선수입니다."

최근 20대의 젊은 선수들은 과거와 달리 체계적인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고 선수 활동을 시작한다. 이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적용되면서 국내 당구 수준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박인수도 이를 절감하고 있다. 

"어린 친구들은 거의 한 3~4년만 배우면 선수로 뛸 실력이 돼요. 하나부터 열까지 프로선수들이 직접 세심하게 알려주니까 실력이 올라가는 속도가 엄청 빠릅니다. 제가 볼 땐 이런 환경 덕에 우리나라 당구가 평균으로 보면 수준이 제일 높은 것 같아요."

박인수 역시 최근 당구 유망주 2명을 가르치고 있다. 그중 한명이 지난해 성인부 경기에서 베테랑 정진수 선수를 꺾고 우승한 허채원 선수다. 당시 허채원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서울당구연맹에서 주최한 '제17회 하림배 3쿠션 마스터스'에서 성인부 경기에 출전했다. 고등학생이 성인부에서 우승한 첫 사례다.

"채원이는 오래 가르쳤어요. 또 다른 친구는 채원이의 친한 언니로 이제 4개월 정도 가르치고 있고요. 둘 다 당구에 진심이라 조금만 알려줘도 실력이 금방 올라오고 있습니다. 조만간 모두 LPBA로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프로무대로 오면 팀리그에서 같은 팀으로도 만날 수 있고, 다른 팀으로 대결도 할 수 있어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프로당구 선수 박인수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올해 목표는 '어게인 2018'

"개인 우승과 팀리그 우승이 목표"

PBA에서 아직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박인수는 '어게인 2018'을 외치고 있다. 헝그리 정신으로 우승컵을 휩쓸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올해 무언가 한방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다.

"PBA 출범 첫해는 진짜 의욕이 충만하고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조금 여유가 생기다 보니까 배가 불렀는지 좀 느슨해진 것 같아요. 특히 저희 팀 리더인 김재근 선배가 결혼한 후 운영하던 당구장도 접고 연습을 엄청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 결과 성적도 잘 나오는걸 보니까 저도 자극을 받아서 다시 한 번 제대로 시작해 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개인우승과 함께 올해 팀리그 우승 역시 목표로 삼았다. 크라운해태가 팀 창단 후 매번 3위만 기록했는데 올해만큼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올해는 팀리그, 개인전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둘 테니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제가 힘들었을 때 도와주신 에보큐 장석범, 김영기 이사님, 배세진 부장님, 그리고 강인용 회장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목동 YG캐롬클럽 선배님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dc007@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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