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은 페미니즘과 화해할 수 있을까

김유태 2022. 11. 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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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세종서적 펴냄, 2만2000원
성별의 차이 당연하다고 여겨
반여성주의 학문으로 비판받아
원숭이 실험에선 性고정관념
드러날때도 무너질때도 있어
한쪽 주장만으론 설명 어려워
유전자·환경 모두 고려해야
복잡다단 젠더문제 접근 가능

봉제 인형과 바퀴 달린 장난감을 원숭이 100마리에게 나눠 준다. 그 결과 수컷 원숭이는 바퀴 장난감을 차지하고 암컷 원숭이는 대부분 인형을 가져간다.

이 간단한 실험은 유아에게 주어진 장난감 선택이 최초의 남녀 편견을 만들고 성역할을 형성한다는 페미니즘 주장을 무너뜨린다.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는 가정이 와해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례. 네덜란드 왕립 뷔르허르스 동물원엔 '마마'란 이름의 암컷 침팬지가 알파(우두머리)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마마의 군림 기간은 무려 40년이었다. 마마는 서로 싸운 수컷 침팬지를 화해시켰고, 포악한 수컷이 나타나면 다른 침팬지들과 함께 저항하기도 했다.

이 사례는 위와 반대로, 남녀에게 고정된 젠더 개념을 붕괴시킨다. '암컷'의 리더십이 무리의 평화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의 신간 '차이에 관한 생각'이 번역 출간됐다. '타임'이 선정한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고, TED 강연 400만뷰를 기록할 정도의 팬덤을 가진 유럽 석학이다. 인간과 영장류 사이의 유사성과 연속성을 증명하는 연구에 골몰했던 그는 이번 책에서 성차(性差)의 인정과 젠더의 기원이란 주제를 묵직하게 다룬다.

그동안 생물학과 페미니즘이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고 저자는 본다.

먼저 생물학은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자주 사용됐다. 수컷의 바람기를 진화의 산물로 보거나 가부장제를 동물의 보편법칙으로 이해하려는 연구는 남녀 간 불평등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란 주장으로 이어졌다. 생물학은 수구 보수 학문이자 반페미니즘으로 매도돼 강하게 비판받았다.

그렇다고 페미니즘 학자들의 주장이 모두 옳았던 것도 아니었다. 1991년 존 머니라는 심리학자 주장이 미국 사회를 강타했던 적이 있다. 그는 젠더(사회적 성)라는 명칭을 1955년 일찌감치 도입할 정도로 생물학을 얕잡아 봤다. 머니는 젠더가 양육에 달린 문제이며, 양육 방식에 따라 남아를 여아로 또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통제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머니는 포경수술 실패로 음경을 거의 다 잃은 캐나다 남자아이 부르스의 성전환에 깊이 관여했는데, 부르스의 부모는 그의 제언을 받아들여 부르스를 여아 브렌다로 길렀다.

자신의 본래 성이 뭔지 알지 못한 채 자란 브렌다 덕에 머니는 여성운동의 영웅이 됐지만, 여성으로 변했다고 간주됐던 '소년'은 14세 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됐다. 소년은 즉시 자신이 '태어났던 성'을 되찾았고, 우여곡절 끝에 38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머니는 돌팔이, 사기꾼으로 매도됐다.

영장류학자이자 동시에 페미니스트임을 자임하는 저자는 선언한다. 어느 방향이든 극단적 입장을 취한 입장은 모두 틀렸다고 말이다. 생물학과 페미니즘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해서는 안 되며,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포장도로에 떨어진 한 알의 씨앗이다. 혼자서는 발아가 불가능하니, 씨앗 자체로는 아무것도 만들어질 수 없다. 포장도로도 씨앗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유전자를 가진 씨앗이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가해지는 유전자와 환경, 양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해 각자의 기여도가 얼마인지 알 수는 없다. 연구의 관심사는 바로 그 지점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 추천사에서 "성과 젠더에 관한 가장 뜨거운 논란들에 과학적이고 동정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법을 제공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책"이라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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