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500만종 '작은 친구들'…지구촌이 위태롭다
곤충, 작물 87% 수정시키고
흙 건강 돕는 '생태계 파수꾼'
살충제 사용 늘어난 탓에
美 제왕나비·英 뒤영벌 등
절지동물 10년새 66% 감소
멸종위기 곤충 구해내려면
공원·도시로 모일 수 있게
인류가 '정원사' 역할해야
데이브 굴슨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펴냄, 2만2000원
매일 아주 작은 것들의 종말이 일어난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곤충들의 세계에서.
영국 서식스대 생물학 교수인 데이브 굴슨은 30여 년간 곤충들의 생태를 연구해온 전문가다. 전 세계에 번역된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에서 그는 5년간의 연구 끝에 최근 방문한 다른 뒤영벌의 희미한 발 냄새를 맡고 빈 꽃을 피해 가는 벌들의 지혜를 밝혀낸 바 있다. 음모와 처형이 난무하는 복잡한 사회 군집 속에서 뒤영벌은 지적인 거인이었다.
매혹된 곤충을 연구하려고 그는 파타고니아의 빙하부터 부탄의 숲까지 세계를 누볐다. 곤충들의 신비한 세계를 목격하면서도 늘 이 동물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북미에서는 제왕나비 집단이 붕괴했고, 독일에선 숲과 풀밭의 곤충이 멸종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도 뒤영벌과 꽃등에의 분포 범위가 좁혀지고 있었다.
약 5억년 전 해저에서 진화한 곤충들의 조상, 절지동물은 겉뼈대에 관절로 연결된 다리를 가진 갑옷을 입은 기이한 동물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포식자를 피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 뭍으로 올라왔다. 땅에 발을 디딘 동물 중 가장 성공한 이들은 주로 유기물을 갉아먹으며 살아남았지만 비행이라는 진화적 도약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동물 중 가장 먼저 하늘로 날아오는 건 약 3억8000만년 전에 비상한 곤충이었다. 날 수 있으면 육지의 포식자를 피하고, 빨리 이동하며 먹이나 짝을 찾기도 쉽다. 제왕나비와 작은멋쟁이나비는 겨울의 추위를 피해 해마다 수천 ㎞를 이주하기도 한다.
곤충의 또 다른 혁신도 있다. 유충에서 성충으로 변신하는 변태를 익혔고, '초유기체'라 할 만큼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는 능력을 갖췄다. 분업을 통해 각 개체는 전문가가 되어 번성을 이룩한다. 개미는 일부 육상 생태계에서 총동물생물량의 약 25%를 차지한다. 개체 수로는 사람보다 약 100만배 많다.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생물인 곤충의 위기는 인류가 불러왔다. 도시인들에게 집에 침입하고 징그러운 곤충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곤충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원시 서식지의 파괴와 살충제로 인한 오염, 불빛으로 밝아진 환경 등이다.
곤충학자들의 크레펠트협회가 1989년부터 독일 전역에서 채집 장치로 연구한 결과 2016년까지 26년 동안 덫에 걸린 날아다니는 곤충의 총생물량(무게)이 75% 감소한 사실이 드러났다. 뮌헨공대의 연구에서도 2017년까지 10년간 절지동물 생물량의 3분의 2, 종수의 3분의 1이 사라진 걸 확인했다. 특히 농경지에 인접한 조사지에서 감소 폭이 컸다. 유럽 전역과 미국의 연구에서도 곤충 개체 수의 감소 속도는 두려울 정도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곤충 없는 세계는 "미래 세대에게 따분하고 빈약한 세계에서 살아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새의 노래와 나비, 윙윙거리는 벌이 우리 삶에 안겨주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가라고 말이다"라고 탄식한다.
500만종으로 추정되는 곤충의 감소는 인류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곤충은 딸기, 사과, 오이, 호박, 콩 등 약 87%의 작물을 수정시킨다. 곤충은 배설물과 낙엽, 사체를 재순환하게 만들고, 토질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해충의 방제에도 필요하다. 조류, 어류, 양서류도 곤충을 먹이로 삼는다. 심지어 인류의 80%는 곤충을 직접 먹는다. 곤충은 변온동물로 에너지 효율이 높다. 귀뚜라미에 비해 소는 12배의 식물을 더 먹고, 55배의 물을 더 마신다. 소와 달리 온실가스 메탄도 내뿜지 않는다. 곤충이 사라지면 인간들의 세상도 멈추게 된다.
이 책의 간곡한 요청은 곤충들에게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아직 멸종하지 않았고, 얼마간 공간만 마련해준다면 빨리 번식하는 곤충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내놓은 실천 양식은 구체적이다. 가장 가까운 해법은 우리가 정원사가 되는 것. 꽃가루 매개자 친화적인 꽃, 즉 라벤더, 로즈메리, 개박하, 타임, 제라늄처럼 시골집 정원에 흔히 있는 화초와 허브로 정원을 채우는 것은 나쁘지 않다. 베란다나 옥상도 벌과 꽃등에 같은 곤충에게는 충분한 서식 환경이 될 수 있다.
저자는 10층 건물에서 뒤영벌이 정해진 시간마다 나타나 도시 정글의 어딘가로 먹이를 옮기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잔디밭을 깎는 횟수를 줄이는 것도 정원을 곤충에게 베푸는 방법의 하나다. 이렇게 도로변, 철도변, 원형 교차로를 꽃들이 가득 차고 농약을 쓰지 않는 상호 연결된 서식지로 바꿔 텃밭과 공원, 도시로 더 많은 곤충이 모여들도록 초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음식물쓰레기와 육류 소비를 줄임으로써 망가진 식량 공급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땅을 자연에 돌려줄 수 있어서다. 드넓은 땅에 농약과 비료를 잔뜩 뿌려 상업용 작물을 단일 경작하는 대신, 자연과 협력하는 지속 가능 농법을 개발하는 것도 곤충의 생태계를 지킬 대안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고 주문한다. 이 작은 첫걸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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