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표 반전 스릴러 vs 80대 노인의 핏빛 단죄

김유태 2022. 11. 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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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주제 해외영화 리메이크작
김윤진의 귀환 '자백'
불륜 폭로 협박 받고
밀실살인 용의자로 내몰려
무죄증명 위한 광기어린 싸움
이성민 주연 '리멤버'
뇌종양 말기 알츠하이머 환자
60년 동안 치밀하게 계획한
친일파 살인 버킷리스트

징벌과 단죄는 만인의 욕망이다. 그래서 복수극은 욕망의 대체재와 같은 장르다. 멀게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부터 가깝게는 '악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이르기까지, 또 넓게는 '킬빌' '존윅' '레버넌트' '녹터널 애니멀스'의 계보를 형성한 복수극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검은 욕망을 대체했다.

복수를 주제로 삼은 두 편의 영화가 지난달 26일 동시에 개봉했다. 해외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영화 '자백'은 2017년 제작된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한국적으로 각색했고 '리멤버'는 2015년 캐나다·독일 영화 '리멤버:기억의 살인자'의 설정을 홀로코스트 복수극에서 식민지 조선 친일 부역자 암살극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두 영화를 살펴봤다.

벤츠 한 대가 한겨울 설산을 오른다. 도착한 곳은 강원도 인제의 외딴 별장.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는 그곳에서 유민호(소지섭)를 만난다. 막 검찰에서 풀려났지만 검찰이 새 증인을 확보하면서 몇 시간 후 다시 구속될 것이 분명하다. 제한된 시간, 아직 커리어 관리를 위해 변호사 수임계를 쓰지 않은 양신애는 유민호에게 "고통 없는 구원은 없다"며 빨리 당일 범죄 유무를 실토하라고 다그친다.

유민호의 상황은 이렇다. 유민호는 불륜을 폭로하지 않는 대가로 10억원을 달라는 협박을 받고 한 호텔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내연녀였던 김세희(나나)가 있었다. 그때 건물 밖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둘만 있는 줄 알았던 호텔방에 괴한이 나타나 유민호의 머리를 강타한다. 유민호가 정신을 차려보니 김세희는 사망했다. 창문까지 모두 닫힌 밀실 살인. 양신애는 "처음부터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며 유민호와 치열하게 조각을 맞춰나간다. 그 과정에서 유민호가 얽혀버린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드러나고 이제 조작이 시작된다. '두 개의 사건, 두 개의 시신.' 수임계에 서명한 양신애는 진실을 뒤로하고 유민호의 유죄를 무죄로 바느질하듯 바꿔나간다.

이 영화의 백미는 ①2차선 도로(첫 번째 사건현장) ②호텔방 514호(두 번째 사건 현장)에서의 사건 재구성이 ③유민호 별장에서 전개된다는 점이다. '세 개의 공간'을 두고 플래시백(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수십 번씩 이뤄지며 유민호의 무죄는 설계된다. 전략은 이렇다. ①에 연루된 자에게 누명을 씌우고 ②에서 범인이 밀실을 탈출한 방법을 고안하는 것. 양신애의 차가운 이성은 광기에 가깝다.

범인을 예상하는 건 쉽게 가능해 보이지만 윤종석 감독은 서사를 그렇게 심드렁하게 구성하지 않았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팝콘 몇 알 못 먹을 정도로 집중하게 된다는 평이 뒤따르는 영화. 입소문만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화 '리멤버'도 공교롭게 차량에서 시작된다. 빨강 포르쉐가 전속으로 질주 중인 도로가 영화의 첫 배경이다.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핀 80대 노인 한필주(이성민)가 녹색 알약을 먹으려다 차 바닥에 떨어뜨린다. 한필주는 뇌종양 말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다.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카를 빌려 몰게 된 건 일생의 복수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한필주는 생각한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상황은 이렇다. 패밀리 레스토랑 TGI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별명이 '프레디'인 한필주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무려 60년을 계획했던 복수에 나선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웃음 뒤로, 그의 살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됐다.

한필주의 아버지는 경기도 양주의 지주였다. 그러나 소작농 정백진에 의해 좌익으로 몰려 죽었다. 어머니는 그 억울함의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필주의 형은 친구 양성익에게 속아 강제징용을 당한 뒤 무너진 탄광에 갇혀 압사했다. 일본 자위대 헌병 대장 도조 히사시가 양주시 친일 세력인 이 모든 자들의 뒷배였다. 그들의 '최종 보스'는 김치덕(박근형). 한필주의 유일한 혈육이던 누나는 김치덕의 꾐에 빠져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가 고향에 돌아와 목숨을 끊었다. 한필주는 정백진, 양성익, 도조 히사시, 김치덕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리멤버'는 친일파 처단이라는 노인 한필주의 버킷리스트를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마땅한 복수를 대리만족시키는 강점을 지닌다.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하지만 단죄자의 복잡한 심리나 피살자의 이중적인 논리를 들어보면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김치덕은 일본제국에 충성했지만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자넨 그게 엄청난 일 같겠지만 우린 그냥 그 시절을 살아간 것뿐이야." 김치덕의 항변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순서가 어떻든, 해외 원작 영화를 함께 보며 비교하는 것도 좋겠다.

'자백'의 원작 '인비저블 게스트'는 넷플릭스에서 '세 번째 손님'이란 제목으로 검색 가능하다. 이야기를 끝맺는 방식도 '자백'과 '인비저블 게스트' 사이에 차이가 큰데, 전자가 한국식으로 완전한 결말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반전을 폭발시키는 순간 바로 막을 내린다. '리멤버'의 원작 '리멤버:기억의 살인자'의 경우 한국 영화 쪽이 좀 더 가볍다. 원작은 굉장히 무겁고 바그너의 음악이 흐르면서 절정에 달한다. 반전 요소도 원작이 좀 더 강하다. 제프가 루디 컬랜더란 아우슈비츠 나치 부역자를 찾아가는 여정과 그 결말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충분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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