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점자' 표기 확대…시각장애인 불편 여전

임현지 기자 2022. 11. 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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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뚜기 제공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맥주나 주스 같은 경우 겨우 '음료'라고만 점자로 표기돼 있어 어떤 음료인지 구분되지 않아요. 식혜, 콜라, 사이다 같이 구체적으로 표기돼야할 것 같아요"

"참치 통조림, 닭가슴살 통조림 증 통조림에도 점자 표기가 돼 있지 않아요.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어요. 과자 봉투도 같아서 헷갈려요" (한국소비자원 '시각장애인 식품 점자 표기 소비자 문제 실태조사' 소비자 면담 사례 中)

식음료업계가 시각장애인용 문자인 '점자' 표기를 확대하고 있으나 실제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식품에는 점자 표기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에 점자 표기 방법에 대한 규제 개선과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오뚜기와 삼양 등 라면 업계는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에 점자 표기를 확대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9월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시작으로 현재 '까르보불닭볶음면', '짜장불닭볶음면' 등 컵라면 큰컵 총 6종에 점자를 적용했다.

삼양식품 점자 표기는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과 공동 개발했다. 원샷한솔은 점자 오탈자 및 가독성 확인, 외부 물 확인선 등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점자는 용기면 제품 하단에 삽입했으며 빠른 확인을 위해 불닭볶음면은 '불닭', 삼양라면은 '삼양' 등으로 축약 표기했다.

오뚜기는 컵라면 전 제품은 물론 최근 선보인 '두수고방 컵밥'을 포함한 컵밥 14종, 용기죽 전 제품 8종에 점자 적용을 늘렸다. 컵라면 용기에 제품명과 물 붓는 선(물선),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여부를 나타내는 기호까지 표기돼 있다. 점자 위치를 쉽게 인지하도록 점자 배경은 검은색, 점자는 흰색으로 인쇄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은 라면을 구매할 때 제품명이 없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특히 용기면에 물을 맞추기 위해 손가락을 직접 집어넣어야 하는 위험을 감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라면업계 빅3 중 하나인 농심은 점자 표기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요청에 의해 점자 표기 적용을 다각도로 검토 중에 있다"며 "다만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롯데칠성음료 제공

음료업계도 시각장애인이 제품을 선택할 때 불편함을 덜 수 있도록 점자 표기 개선에 힘쓰고 있다. 팔도는 1998년부터 비락식혜에 '음료'와 '하트' 모양 점자 표기를 병기하고 있다. 하트 모양을 통해 비락식혜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한 것.

롯데칠성음료는 2008년부터 캔 음용구에 '음료'라는 점자를 표기했고, 2017년부터는 국내 음료업계 최초로 칠성사이다, 밀키스 등에 '탄산'이라는 점자를 넣어 차별화했다. 지난해부터는 생수 '아이시스8.0' 300ml와 탄산음료 '칠성사이다' 페트병 500ml 제품 상단에 브랜드명을 점자 표기하고 있다.

현대약품도 대표 식이섬유 음료 '미에로화이바' 유리병 패키지에 점자 표기 '미에로'를 도입했다. 혼합음료 중 최초로 브랜드명을 점자로 기입했다. 점자는 100ml 제품 측면에 우선 적용되며 향후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식음료 업계 표기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지만 시각장애인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6월 발표한 '시각장애인 식품 점자 표기 소비자 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식품산업협회 161개 회원사 중 7개만 점자 표기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제품명이 아닌 '음료' 등 식품 유형으로만 표기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유통기한, 제품명 등을 점자로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있어 시각장애인에게 발생한 피해 사례 및 불편 사항이 다수 있다"며 "그럼에도 점자 표기 비율이 현저하게 낮고 통일된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른 자기 결정권 및 선택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품업계는 점자 도입에 대한 취지에는 공감하나, 이를 위해 정부 지원 및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점자 간 간격과 높이 등 표준 규격 등을 통일할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회사가 점자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추가해 제품 생산 공정을 바꿔야 하고, 관련 기관이나 시각장애인 개인에게 따로 검수를 요청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정해진 기준이 없는 만큼, 큰 변화를 위해선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limhj@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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