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부터 이어진 생업의 기술···경쟁을 넘어, 널리 삶을 이롭게 하다[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김유익 재중문화교류 코디네이터 2022. 11. 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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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조업 힘의 기원

<바이궁(百工)>

줘징(左靖) 엮음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요? 저도 답이 없죠.” 경남지역의 용접노동자 출신 작가 천현우씨의 <쇳밥일지> 북토크를 우연히 유튜브로 보고 청년 세대 혐중 감정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어떻게 다시 대중 무역흑자로 돌아서냐고요?” 노동자인 동시에 개미투자자인 청년들이 즐겨 본다는 <삼프로TV>에 나오는 중국 전문가들도 구체적인 답을 청하면 말문이 막힌다. 고부가가치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중국 제조 2025’는 코앞의 현실이고 애국주의 정서에 힘입은 자국 제품 선호를 뜻하는 궈차오(國潮)가 중국의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가성비 좋은 노동력을 좇아 끊임없이 유동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고, 세계 최대의 국내 시장도 상수이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 공업대국 일본, 한국을 차례로 앞지른 중국 제조업의 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실력의 문화적 기원은 어디 있을까? 큐레이터인 줘징이 엮은 공예문화 무크지 ‘바이궁’의 창간호가 나온 2016년만 해도 중국 사회는 기술인력의 부족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이 인민을 사농공상으로 나눈 것은 결코 차등을 의미하지 않았는데 후대에 이를 오독한 것이라 한탄하고, 사상가이자 동시에 엔지니어였던 묵자(墨子)의 조물(造物) 설계 이념의 깊이를 논했다. 전통 중국 공업문화의 바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에 신석기시대부터 네 차례에 걸쳐 찾아온 ‘공(工)’의 마지막 전성기는 명나라 시절이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삼각지역문화의 적자인 소설가 왕안이(王安憶)의 작품 <톈샹(天香)>에는 바로 이 시기 비단과 자수 등으로 유명했던 강남지역의 다양한 생활 공예기술이 묘사된다.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의 관직에 진출한 명문가에서도 농민, 장인과의 통혼이나 상공업 종사를 꺼리지 않았다. 지금도 중국의 내셔널 브랜드 중 상당수가 바로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양한 생업의 기술을 의미하는 바이궁은 서주(西周) 시대의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에 처음 등장한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끈 민중의 공예, 즉 민예운동에 대응하는 개념을 찾는 중국의 학자들에게 재발견됐다. 하지만 이 담론은 애초에 국가적 관점과 민족주의에 일방적으로 포섭되기보다는 지역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성하게 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줘징은 향촌 건설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문화예술인으로 고향인 안후이성뿐 아니라 구이저우, 윈난과 같은 농촌 지역에서 예술을 통해 마을의 삶에 활력을 되찾아주고 있다. 향촌의 풍토, 물산, 인문, 관습을 발굴하고 재해석해서 다양한 공공공간을 만들고 여기서 일을 벌인다. 이 문화와 실천을 알리는 ‘비샨(碧山)’이라는 무크지도 만들었다. 그는 다시 도시의 동네로 공간을 넓혀 중국 전역에서 지역의 기록과 창작을 융합하는 방지소설(方志小說) 프로젝트도 탄생시켰다. 특산물을 상품화해 전시하는 매장과 공방도 비샨마을에 열었는데, 지역과 환경을 중시하는 ‘롱라이프 디자인’으로 알려진 ‘디앤디파트먼트’의 나가오카 겐메이도 함께하고 있다. 그 역시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이자 일본의 1세대 산업디자이너인 야나기 소리의 후예를 자처한다. 무네요시의 공예사상은 20여차례에 걸친 방문을 통해 그가 매료됐던 소박하고 실용적인 조선 생활공예의 미에서 비롯했다. 원래 삶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장인의 마음과 솜씨에 국가 간 경쟁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유익 재중문화교류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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