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에 이어 DB까지…보험사 유동성 확보 '비상'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까지 신종자본증권 조기행사권(콜옵션)을 연기하면서 보험사들의 유동성 관리에 '비상'이 걸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보험업계는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최근 예·적금 금리 상승으로 보험에서 돈을 빼고 은행권으로 돈이 몰리는 '머니 무브' 현상까지 가속화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보험사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 채권 등 자산 매각에 나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가능성까지 우려되자, 금융당국은 보험업계의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 일부 유동성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일 DB생명은 오는 13일 예정됐던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7년 발행된 것으로, 최근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콜옵션 행사일을 변경키로 한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즉각 "투자자와 사전협의를 통해 연기(계약 변경)한 것으로서 조기상환권을 미이행한 것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DB생명과 투자자 간 사전협의를 통해 조기상환권 행사 기일 자체를 연기한 것이지, 조기상환권을 미이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당국은 "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해외 발행이 아닌 국내 발행건으로서 해외 투자자와 관련이 없다"며 "이번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는 소수이며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아니므로 채권 유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금융당국의 이같은 설명에도 흥국생명과 DB생명을 포함해 국내 금융사들의 연이은 콜옵션 연기로 인해 시장에 불안감이 커져 채권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 1일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발행 당시 약 5571억원) 규모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연기한다고 공시, 시장이 들썩였다. 국내 금융기관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이 연기된 것은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당시에도 한국물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 전반에 타격을 입었다.
물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디폴트(채무불이행)인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종자본증권은 30년 이상의 만기로 발행되나 일반적으로 콜옵션 행사가 가능해지는 시점에 조기상환 하는 것이 관례로, 많은 투자자들이 콜옵션 행사를 전제로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해 왔다. 더욱이 흥국생명은 지난 9월에만 해도 외화 차환발행을 통한 콜옵션 행사의지를 나타낸 바 있어, 투자자들의 신뢰를 깬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크레딧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번 콜옵션 연기에 따른 시장의 충격이 다른 때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다른 보험사들도 달러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거나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 한화생명과 KDB생명은 내년 4월과 5월에 각각 10억 달러, 2억 달러의 달러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일이 도래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RBC(지급여력) 비율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콜옵션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며 "더군다나 내년 도입되는 새 재무건전성지표인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에 대비해 보험사들은 자본을 일정 부분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에 대해 투자자들은 증권 조기상환이 어려울 정도로 자본력이 약화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이 경우 국내 채권시장에서 동사에 대한 투심은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도 "당국에서 금융사들에 외채 발행을 확대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흥국생명과 DB생명 건은 악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에서 다행히 사전협의된 건이라고 진화를 하곤 있지만,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타 금융사들의 외채 발행시 영향이 갈 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들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전날 보험회사가 채권시장안정펀드 캐피탈 콜 납입 등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동성 평가기준을 올해 12월 평가 종료시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보험사 경영실태평가(RAAS)시 유동성 지표의 평가등급을 1등급씩 상향 적용하는 것이다. 평가등급이 2등급이면 1등급으로, 5등급이면 4등급으로 올려준다는 의미다.
또 앞서 지난달 28일엔 유동성비율 규제시 유동성 자산의 인정범위를 확대해 보험회사의 유동자산 보유부담을 완화해줬다. 기존엔 '만기 3개월 이하 자산'만 인정했지만, '활성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채권 등 즉시 현금화 가능한 자산'을 포함했다.
아울러 당국은 차입을 통한 유동성 확보 가능 여부 명확화 등 유동성 확대를 위한 보험업계의 건의사항에 대해서도 현장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신속히 검토하기로 했다. 과거 금융당국은 '유동성 유지 목적'으로 보험사가 자금을 차입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 한 바 있으나, 업계는 현 상황에서 차입을 하는 것이 '유동성 유지 목적'에 부합하는지 해석해달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보험회사의 유동자산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은 이해하나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매도 등은 가급적 자제하고 기관투자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안정을 위해 노력해 달라 당부했다"며 "다만 보험회사가 최근 자금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당국도 제도적 지원 방안을 검토·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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