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배양숙의 Q ]‘그냥 미술하는 사람’이라고 읊조리던 프랑스의 한인 작가
삶과 죽음의 중첩 ‘수용’ ‘미완성’’無(무)’ 녹인 작품
다른 시각을 열어준 살바드로 달리, 루이스 부뉴엘
공동작 Un Chien andalou 1929와
백남준 Good Mornign, Mr. Orwell 1984.
장자(莊子)의 오상아(吾喪我)를 지나
‘무한의 공간’을 발견 후 새로운 작품세계 구축
삶과 죽음의 중첩 ‘수용’ ‘미완성’’無(무)’ 녹인 작품
다른 시각을 열어준 살바드로 달리, 루이스 부뉴엘
공동작 Un Chien andalou 1929와
백남준 Good Mornign, Mr. Orwell 1984.
장자(莊子)의 오상아(吾喪我)를 지나
‘무한의 공간’을 발견 후 새로운 작품세계 구축
Q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A 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 엄상섭입니다. 외국에서는 소비(Sobi)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때 이모님께서 “소비야”라고 부르셨던 것이 기억에 오래 남아서 일본 유학 때 여권을 갱신하면서 이름을 상소비 옴므(HOMME Sang-Sobi)로 아주 어렵게 바꾸었습니다. 그 이름을 아이덴티티로 가지고 싶었습니다. 옴므도 UM이 아니라 불어로 관사를 붙이면 인간이라는 뜻의 HOMME입니다.
Q 일본과 프랑스에서 학위를 했다던데?
A 일본에서는 학교를 두 군데 다녔습니다. 먼저 일본 대학교 예술학부였는데, 백 년 이상이 된 세계 4대 영화 학교 중 하나였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강사로 오셨던 학교에서 영화(영상)를 전공했습니다. 극영화가 아닌, 실험영화라고 불리는 예술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또 다른 대학은 국립 동경예술대학입니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영상을 했던 것이 작업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엄상섭 작가의 시각을 다르게 열게 해준 작품이 있다고 했다.
A Un chien andalou, 1929 과 Good Morning, Mr. Orwell 1984입니다. 루이스 부뉴엘과 살바드로 달리의 공동작인 Un chien andalou는 초현실주의 태동을 알린 걸작으로, 스토리의 개연성을 무시하고 이미지의 연산 작용만으로 이루어진 실험적인 작품으로 관객을 소외시킨 최초의 작품입니다. 그 당시 한국 사회에는 금지된 영화였습니다.
백남준의 Good Morning, Mr. orwell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통한 생중계 쇼였습니다. 이 쇼는 미국 시각으로 1984년 1월 1일 정오에 시작, George Orwell 의 소설 <1984>의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에 지배당하며 살 것이라는 내용은 틀렸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요셉 보이스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뉴욕에서는 존 케이지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 외에도 이브 몽탕 등의 많은 예술인이 참여 뉴욕 공영방송 주조정실에서 이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해 내보냈습니다. 이렇듯 제가 관심을 가졌던 작가의 작업이나 그 당시 시대 상황에서 저의 취향을 보면, 저는 남다른 세계를 혼자서 몰입하면서 연구했던 것 같습니다.
Q 의심으로 시작된 작품의 세계가 궁금하다.
A 프랑스에 왔을 때,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주어진 공간에서 작업을 했었습니다. 요청만 하면 즉시 준비되었던 넓은 공간과 재료들로 작게는 2.5m에서 4~5m 크기의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엔날레에 출품도 했던 시절의 특별한 대우에 길들어 있었기에 프랑스에 왔을 때, 일본에서와 같은 작업 공간이 없음에 많은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으로만 알았던 공간에서 작업을 했고, 완성된 작업의 큰 규모가 그 공간을 떠나면 만들 수 없었던 것들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두 번째는 나의 파이오니아 작가였던 미디어 아티스트 게리 힐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인용과 레퍼런스를 통해 작품을 완성해도 그 작가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비디오 작품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사진만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이력은 쓰지 않습니다.
길고 깊었던 고민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던 어느 날 목공소에서 버려진 나무를 봤습니다. 다음날에도 나무가 또 떨어져 쌓여 있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순간 망치로 맞은 듯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이 버려진 나무를 다시 붙여서 조각하면 되겠다.” 해체된 것을 다시 이어 재구성시켜보자는 것이 제가 찾은 해답이었습니다. 버려진 나무가 리사이클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 작업의 방향이 거의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공간이 아닌 내가 공간을 만들어 작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의 고민에서 나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되었습니다.
Q 두 번의 깨달음은 무의식중에 무한의 공간으로 이끌어 해체와 재구성으로 완성된 작품이 일본 시절의 물리적인 공간과 길든 편안함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했다. 문득 소르본대학교 박사과정과 연결성이 보인다.
A 박사과정을 하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 하는데, 저는 특이하게 세웠었습니다. A부터 Z까지, 나오는 단어 중 저의 작업과 관련된 것들을 선택했습니다. 왜 이 단어가 나의 작업에 중요한가를 세세하게 써 내려가던 중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조각품이면 “왜 항상 놓아두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서 벽에 붙은 장식인 가고일(gargoyle)을 보는 순간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조각인데 회화처럼 벽을 이용해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각을 벽에다 꽂아 놓고, 관객의 시선이 다가가기 불편한 장소에 설치했습니다. 관객들이 바닥에 놓인 조각을 360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벽을 등지고 있는 조각을 180도의 각도 안에서 전후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관찰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발상을 했습니다.
저의 단어로 하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뭔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것, 즉 자신이 다룰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르본대학교 박사과정 논문 제목이 <수용과 미완성>으로 정해졌습니다.
7년 가까이 논문을 쓰면서 작품의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조각’에서 ‘설치’로 가게 됩니다. 조각 덕분에 작가로서의 인식이 어느 정도는 좋아졌습니다. 여전히 저의 조각작품을 보면 상당히 시니컬하면서 매우 꼼꼼한 작업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조각 하나에 각각 깨어진 나뭇조각이 500개 정도가 들어갑니다. 깨진 부분을 일일이 다 붙였습니다. 안에서부터 조금씩 양을 늘려 붙이는 작업을 집요하게 반복하면 덩어리가 생기게 됩니다. 각각이 다른 나무의 결을 생각하면서 붙여갑니다.
Q 에꼴 데 보자르 베르사유에서 수업 참관을 해보니 가르치는 일도 예술적이겠다고 느껴졌다. 판화학과 학과장 김명남 교수는 엄상섭 작가의 교수법이 탁월하다고 했었다.
A 아주 오래간만에 소명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조각하게 된 것은 사실 호기심과 재미였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호기심만으로 할 순 없습니다. 23년 전, 국립 동경예술대학에서의 저는 정말 학생들에게 마치 쏟아붓듯이 가르치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굉장히 전진하는 스타일의 교수법이었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다가오는 걸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6일 에꼴 데 보자르 베르사유에서의 학기 첫 수업 후, 한 친구에게 “수업이 좀 난해했지?”라고 질문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정말 이런 수업을 원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 더욱더 소명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의 인생 모토는 사람에게도 물건에도 겸손하는 것입니다. 창작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어떤 경우에는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건방질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물건이 바뀌게 됩니다.
제가 품고 있는 성향이나 마음가짐이 물건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작업을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즉 인식의 자동화를 멈추게 하기 위해 낯설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조금 달리 생각해야 하지요.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이 언어가 과연 내 것인가’라는 걸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 제기’라는 말을 보통의 경우에 많이 쓰는데, 저는 이 단어보다 ‘의심’이라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문제 제기한다는 것은 그 문제에 관해 중점적인 논의나 토론 대상을 내어놓는 것을 얘기합니다. 반면 ‘의심’은 막연한 자기의 것입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막연한 자기의 촉이나 의심, 이 자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의심하는 순간 재밌는 영감이 많이 나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함으로써 낯선 상황을 만들고 그 낯선 상황은 예술과 창작의 새로운 길로 나를 안내해줍니다. 학생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은 부분입니다.
에꼴 데 보자르 베르사유에서 색상, 회화를 가르치고 교육 조정 담당인 세골렌 페로 (Segolene PERROT) 교수에게 엄상섭 작가를 초빙한 이유를 질문했다.
세골렌 페로 : 엄상섭 작가는 처음엔 중재 예술가로 회의에 참석차 왔었는데, 워크숍에서 학생들과의 수준 높은 소통과 결합을 보였습니다. 그 후 정식으로 초빙했습니다. 예술가의 삶과 예술가가 되는 길에 대한 관심과 예술과 공간의 개념, 설치 등에 대한 정규수업을 요청했습니다. AI가 그린 작품이 미술시장에서 거래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티스트는 ‘논리’에 있지 않고 예술가는 인간이 기대하지 않는 일은 하는, 즉 예측하지 못한 아티스트 개인만의 고유한 철학과 영감으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개인만의 특별한 접근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에꼴 데 보자르 베르사유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Q 세 번째 깨달음에선 어떤 나비가 탄생했었나?
A 지금의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명을 인지하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 저의 작업이 한 번 더 바뀌게 되었습니다. 전시 기간 작품이 서서히 없어지는 것입니다. 즉 작품 자체가 썩어가는 것입니다. 재료는 제가 지금까지 조각에서 다루었던 나무가 아니라 음식물입니다. 산딸기를 16m 하얀 벽에 설치했습니다. 전시 첫날의 산딸기가 전시가 끝나는 날은 산화해서 없어집니다. 소멸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다시 한번 학위를 따고 싶을 만큼 욕심이 나기도 하는 인지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네 번째 나비는 이와 연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달음과 영감이 어떤 물질과 만나, 애벌레가 되어, 인고의 시간이 흐른 후, 어떤 나비로 변하는지는 앞으로 나오게 되겠지요.
22년 10월 1일 파리에서 김명남 개인전 [검정 묘법 & 하얀 묘법]이 열리던 슘 브라운슈타인 (SCHUMM-BRAUNSTEIN) 갤러리에서 작가인 김명남 교수와 차담을 했다. 대화 중 엄상섭 작가의 작품을 처음 대면하던 날의 이야기가 나왔다.
엄상섭 작가는 ‘예민한 또는 섬세한 자극들’이라는 주제 아래 일상의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비틀어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알레고리적 조각 작업과 환유적 설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런 작업에 있어 두 가지의 요소는 이미지 응축과 조형의 밀도이다.
전시작 [Synestheia_Monologues (공감각_모놀로그)는 텍스트의 음성적 형식의 배열을 수천 개의 산딸기와 대바늘을 이용해 이미지화한 작업이다. 여기에 쓰인 텍스트는 작가가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일상에서 느꼈던 것을 적은 것으로,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가는 짧은 상념들 혹은 작가의 주위를 둘러싼 상황 속에 느꼈던 감정들 (흔들림, 망설임, 불안, 멜랑콜리)이다. 그 대상은 때로는 예술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 때로는 현대사회,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HOMME Sang-Sobi 작품들의 기록은 어떻게 읽어가야 할지 의문을 가지게 하고 시간을 필요케 하는 읽어 내기는 감탄과 놀라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 작품이 기록되었던 초기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흔적들의 변화와 대바늘과 검게 변한 두꺼운 점들이 빨간 산딸기였다는 것과 피같이 흘러 내렸던 흔적들이 시간이 그려준 또 다른 그의 독백이었다는 사실들 앞에서…
전시가 끝나면 습관처럼 몸과 몸 이외의 것들을 씻어 말리고 노트와 뚜껑이 있는 연필을 늘 지닌 삶, 15살에 집을 나와야 했던 현실 앞에서 늘 해체하고 무소유함이 습관이 된 것들과 늘 옮겨 다녀야 했던 HOMME Sang-Sobi의 Nomade 정신은 그의 삶과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2022년 4월 1일 파리, 찻집 마리아쥬 프레르 (MARIAGE FRERES)에서 엄상섭 작가를 처음 만났었다.
KEAB 대표인 백희성 건축가는 파리에 가면 ‘은둔의 예술가’, ‘예술가들의 예술가’로 불려진다는 엄상섭 작가를 꼭 만나보기를 권했었다. 은둔의 예술가라 호칭되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었고 파리 옛길을 걷는 엄상섭작가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만난 후, 다시 파리에 온다면 엄상섭 작가와 인터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10월 2일, 파리 근교 몽후즈 작업실에서의 1시간가량 인터뷰는 중국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장자(莊子)의 오상아(吾喪我) “내가 나를 여의고 비로소 나를 찾는다.”를 연상하게 했던 예술가 엄상섭의 ‘질곡의 여정’이 온전히 내게 전해졌다.
그 여정의 끝에 우연히, 버려져 땅에서 뒹구는 부서진 나무조각들을 발견하며 무의식적으로 아웃라인(OUTLINE)이 사라진 ‘무한의 공간’을 무의식상태에서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나뭇조각을 500번의 결을 이어 붙이고 말리고 또 붙이는 아름다운 집착이 시작되었고 산고(産苦) 끝에 또 다른 조각작품의 세계가 구축되었다.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엄상섭 작가의 소르본대학교 박사논문 발표 현장 에피소드!
스크립트 없이 논문발표를 시작하자 심사자와 참석자들은 궁금했다.
프랑스 학생들도 스크립트를 읽으며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이곳에 전시된 나의 작품들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니 가능하다.”
결국 <수용과 미완성>이 최우수 논문으로 결정되는 결과를 낳았던 엄상섭 작가.
예술가로서의 여정에서 세 번의 깨달음과 변신을 해내며 굳건하게 자신을 지켜내고 있다.
그의 가슴속에 품은 네 번째 애벌레는 어떤 우주를 담고 있을까? 그 애벌레가 나비로 변해 넓은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날갯짓을 할 내일이 매우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배양숙 글로벌인사이트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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