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소왕국의 왕'이 사는 그곳
'갑질 사각지대' 지역농협
▷ 지연 · 혈연 얽힌 '갑질 사각지대' 된 지역농협, 왜? (관련 8뉴스 보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937268 ]
"입원 치료가 필요해 병가를 신청했는데 꾀병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내가 해고된 진짜 이유"
"간부들에게 밉보인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C 씨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치료를 받기 전인 지난 2019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해당 지역농협에 체불임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노동부 조사 결과 그동안 직원들에게 주지 않은 시간외수당이 약 3억 원에 달했습니다. 지점장과 전무 등 간부들은 총무 차장이었던 C 씨에게 직원들에게 각서를 받아오도록 시켰습니다. 시간외수당을 안 받아도 좋다는 내용이었습니다. C 씨는 직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몇 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동의 각서를 받아내지 못한 C 씨에게 돌아온 건 "그런 거 하라고 총무 자리 줬지, 뭐하려고 그 자리에 앉아있냐"는 핀잔이었습니다. 결국 간부들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면담 후 일일이 각서를 받아냈고, C 씨와 다른 직원 한 명만 노동부에 솔직하게 반대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C 씨는 유방병변 치료를 받게 됐는데, 이때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정신과는 병이 아니다. 꾀병이다."
"책상에서 꼼짝도 하지 마라."
"장이 다 탈 난 상황에서 화장실에 오래 있을 때가 좀 있었는데, 일찍 안 오면 근무지 이탈이라고 기록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C 씨는 이런 말을 들으며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해고를 당한 C 씨는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인사 청탁과 금품 제공 행위 등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 않았고, 무단결근은 인정됐지만 해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에선 판단이 뒤집혔습니다. 결국 해고가 인정되면서 C 씨는 현재 부당해고 구제 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소왕국의 왕'
▷ "말대답했다" 면담 직후 초교 없는 섬 발령…딸과 생이별 (관련 8뉴스 보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935772 ]
먼저 조합장은 인사권과 경영권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자산 규모에 따라서 조합장의 업무 권한을 제한시켜 놓긴 했습니다. 현재 자산 규모가 2,500억 원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비상임조합장을 둬야합니다. 비상임조합장은 해당 농협을 대표하는 자리는 상임과 같지만, 경영 업무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그 아래 전문경영인을 둬야하는데 그게 바로 상임이사입니다. 자산 규모가 큰 만큼, 부실 경영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들여온 조치입니다. 하지만 법은 그렇다지만, 비상임조합장과 상임조합장의 권한이 현장에선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특히 비상임조합장은 연임 제한도 없습니다. 경남 지역의 한 조합장은 28년째 연임하고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면 당연히 그 권한은 비대해지지 않을까요.
윤미향 의원실에 의하면 1,115개 농축협중 비상임조합장을 둔 곳은 483곳, 43%로 절반에 가깝습니다. 앞서 보도한 서강화농협도 4년 전 정관을 바꾸면서 비상임조합장이 들어섰습니다. 대들었단 이유로 9살 딸과 엄마를 생이별을 시킨 그 조합장은 현재 무제한으로 재임할 수 있습니다.
"제도가 있음 뭐하나"…여전히 강요되는 침묵
예단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만난 직원들은 "문제 제기 자체가 어려운 조직 문화"라고 토로했습니다. 눈치가 보여 신고가 꺼려진다는 겁니다. 앞서 말한 작은 규모의 조직, 좁은 지역사회, 조합장의 권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물론 지역농협마다 고충처리기구가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60명 남짓한 작은 규모에서 익명 보장이 철저할까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 고충처리 담당자도 결국엔 조합장과 상무이사 밑에서 일합니다. 서 위원장은 "지난해 국감 당시 전수조사를 했을 때 실제 운영되고 있는 곳은 0에 가까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직원들은 투명성이 보장되는 제3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중앙회 차원에서 범지역농협을 대상으로 감시하는 외부 기관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중앙회에 익명 제보센터와 농축협 직원 대상 '레드휘슬' 신고센터가 마련돼 있긴 합니다. 중앙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지역농협에서 약 200건의 신고가 들어왔고, 이 중 직장 내 괴롭힘은 18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앙회 측은 지역농합이 개별 법인이라 지도감독까지는 가능하지만 직접적인 관여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강화농협 사건의 경우에도 SBS 보도 이후 중앙회도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감사 결과에 따라 지역농협에 징계 요구는 할 수 있지만, 결국 징계에 대한 권한 자체는 지역농협에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직원을 폭행하고 강제로 염색을 시키는 등 갑질을 한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 기억하실 겁니다. 언론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졌고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정작 고용노동부에 양 회장을 신고했던 직원은 없었습니다. 양 회장이 갖는 위치와 힘 때문에 두려웠을 겁니다. SBS 보도 이후, 지역농협뿐 아니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신협, 새마을금고 등에서 많은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직원들이 많았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죠.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고 해도, 믿고 이용할 수 있도록 투명한 조직 문화를 조성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보미 기자spri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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