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비극을 곱씹고 기록해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플랫]
나타샤 트레스웨이 지음·박산호 옮김|은행나무|276쪽|1만5000원
네이티브 가드
나타샤 트레스웨이 지음·정은귀 옮김|은행나무|104쪽|1만2000원
나타샤 트레스웨이 어머니 궨덜린 앤 턴바우는 1985년 메모리얼 드라이브 아파트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1973년 재혼한 남편 조엘 T 그리메트가 저지른 살인이었다. 턴바우 나이 마흔 살 때다. 남편은 살해 전 턴바우를 마구 때렸다. 트레스웨이도 학대했다. 비난과 협박은 나날이 거세졌다. 총과 칼로 위협했다. 의붓딸인 트레스웨이와 친자식인 조이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턴바우는 아이들과 자신의 삶을 위해 탈출을 시도했다. 체포 영장 발부를 위한 증거 자료를 직접 수집해 제출했다. 1년 뒤 감옥에서 나온 그리메트는 다시 이들을 찾아왔다. “죽음에서 도망쳤다고 간신히 믿었는데 또다시 죽음이 임박”한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집을 떠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을 향해서, 지금 태양은 우리
뒤에서 지고 있고, 철로는 마치 기대처럼 콧노래를
부르고, 기차는 우리를 끌고 있다, 또 다른
날의 끝을 향하여. 기차 창문으로 작은 마을들이
하나씩 지나는 걸 나는 바라본다, 마침내
빛이 사라지고, 창문에 어머니 얼굴이 반사되어
나타난다, 저녁이 오고 있으니 어머니 얼굴은 이제
더 선명하다, 저녁이 온다, 어둡고 확실한 저녁이.
-<네이티브 가드>에 수록한 ‘남부의 초상달’ 중
미국 계관시인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트레스웨이는 비통한 가족사를 고통스럽게 써 내려간다. 딸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30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살해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내가 아는 모든 방식으로 엄마의 기억을 존중하려고 애를 쓰는 한편으로 잊겠다고 굳게 다짐한 과거를 상기시키는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곳”으로 다시 가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엄마 인생의 비극적인 경로와 그 유산으로 인해 내 삶이 빚어진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고 여겨 다시 찾는다.
경찰 조사 기록, 법원 문서, 검시 보고서, 증인 진술, 당시 방송 영상 등을 살핀다. ‘피해자의 침실에서 발견된 서류 가방에서 나온 증거. 6/5/85/’ 같은 경찰 기록물도 확인한다. 어머니의 생을 하나하나 더듬어간다. 턴바우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매 맞는 여자들을 위한 단체에 연락하기 오래전부터 그 단체에 대해 들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일에 관한 눈에 띄는 기사는 다 읽었고 그들의 노고에 조용히 갈채를 보냈다. 나는 항상 이곳이야말로 내 아이들이 다 크면 내가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단체라고 느꼈다.” 폭력에 관한 내용도 적었다. “그동안 그의 폭행으로 입은 내 육체적 손상으로는 시퍼렇게 멍든 눈, 턱의 가는 선 골절, 멍든 신장, 접질린 팔까지 다양했는데 그게 다 그가 ‘생각한’ 말도 안 되는 이유들 때문이었다. 나는 재빨리 그의 기분을 판단하는 법을 익혔고, 그의 비위를 맞추는 데 도사가 됐다. 우리 부부의 문제 중 하나는 내가 직장에서 잘나간다는 점이었다. 그는 내 월급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즐겼지만, 내 성공은 질투했다.”
트레스웨이는 이 가정폭력의 와중에 “지배와 항복으로 이뤄진 세계의 일면”을 배운다.
떠나려고 내가 돌아섰을 때 해가 나왔다,
내가 돌아서서 떠날 때 해는 이글이글 나를 노려보았다--
엄마 누워 있는 곳에 엄마를 두고 나는 등을 돌려버렸다.
집으로 가는 길은 온갖 구멍들로 패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그 길은 늘 은갖 구멍들로 가득했는데;
우리가 지금 속도를 늦추더라도, 시간의 바퀴는 여전히 구른다.
나는 지금 망자들의 이름 사이를 혜맨다:
우리 엄마 이름, 내 머리를 누일 돌베개.
-<네이티브 가드>에 수록한 ‘묘지 블루스’ 중
트레스웨이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듯 죽음에 관한 기록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회한이 몰려오기도 했다. 법원 문서에는 그리메트가 엄마를 벌하려고 미식축구장 트랙에 있는 트레스웨이를 죽일 계획이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메트는 재판에서 트레스웨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해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트레스웨이는 그때 자신이 죽었다면 그리메트가 감옥에 갇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날인 1985년 6월5일 오전 1시 법원은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관은 불침번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 그때 그리메트가 아파트에 도착했다.
챙겨두지 않은 엄마의 유품을 떠올리며 “지금 그게 있다면, 엄마의 일부를 다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트레스웨이가 가장 없애고 싶었던 것은 “갇혀서 고통받는 이미지, 그 마지막 비명”이었다.
“내가 우리 이야기에서 가장 절실하게 피해왔던 부분을 쓰려고 마침내 자리에 앉았을 때. 내가 억지로 기운을 내서 마침내 그 모든 증거를 읽어보게 됐을 때 나는 바닥에 쓰러져 방금 막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것처럼 애끓는 소리로 울부짖었다.”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길고도 원시적인 통곡”은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 느꼈을 그 공포 때문에 나온 것이다.
트레스웨이는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 자아에 관한 이야기로 진화해 그 안에 또 다른 트라우마를 담을 수 있고 그 트라우마에 의미를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트레스웨이는 “과거가 우리 삶의 이야기에 퍼즐 조각처럼 들어맞으면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심지어 엄마의 죽음조차 내 소명의 이야기에서 구원을 받아, 더는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계속 살아가기 위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도 했다.
인종차별에 관한 글이기도 하다. 트레스웨이의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흑인이다. 두 사람은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미시시피에서 결혼하지 못했다. “자유가 제한된 세상에서 꼼짝 못하고 살아”온 턴바우는 1966년 트레스웨이를 낳을 때도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격리 병동으로 가야 했다. 당시 미시시피주엔 인종차별이 동기가 된 살인 사건이 종종 벌어졌다. KKK단이 집 진입로에서 십자가를 태웠다.
가족은 걸프 포트에 살았다. 백인들은 이 가족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보였다. 개중에 좀 더 나은 사람들은 “아주 매력적인 여자인데 흑인이라니 참 안됐어”라고 속삭였다. 서너 명의 남자는 아버지에게 “당신은 대체 어디가 잘못된 거요? 왜 그런 검둥이들하고 살고 있지?”라고 따지듯 물었다.
“지리와 역사, 공적이면서 사적인 역사와 국가적이면서 개인적이기도 한 역사가 합쳐져 가장 깊은 상처”가 됐다.
트레스웨이도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웠다. 성인이 된 뒤 관공서 같은 델 가면 한 직원은 백인으로, 다른 직원은 흑인으로 기재했다. 어린 시절엔 부모에게 “왜 나는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지”를 물었다. 두 사람은 “넌 우리 두 세계의 가장 좋은 면만 가지고 있는 아이야”라고 답했다. “오직 집에서 우리 셋이 같이 있을 때만 나는 두 사람의 것이라는 완전하고 충만한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엄마와 아빠와 아이라는 평화로운 삼위일체 속에서 눈을 감고 높은 침대에 누워 두 사람 사이에서 잠이 들곤 했다”고 떠올린다.
그녀가 화장으로 덮은 덧없이 사라지는
멍이 아니라, 그녀가 출구를 찾으며
망원경에 눈을 너무 세게 눌러 찍힌 자국처럼 남은
어두운 반점이 아니라, 난로 위 뼈다귓국 우리던
솥에 몸을 기울이고선 그녀가 가다듬곤 하던
목소리의 떨림이 아니라, 자기 치아 대신
해 넣은 그 이가 아니라, 혹은
그 공문서--그직인과
희미해진 서명-이미 바래고 있는,
나달나달 닳은 모서리가 아니라. 날짜들과 그녀 이름이
적힌, 역사처 럼 추상적인, 그 작은 표지가 아니라.
다만 그녀 육신의 풍경 -- 쪼개진 빗장뼈,
구멍 난 관자놀이 -- 그녀의 자그만 뼈들이지,
매일 조금씩 자리를 잡는, 모든 게 그러하듯.
-<네이티브 가드>에 수록한 ‘증거란 무엇인가’.
엄마에 대한 폭력과 자신에 대한 학대 속에서 글을 쓰려고 마음먹는다. “작가가 될 거예요”라고 선언한다. “너는 그중 어느 하나도 하지 못할 거야”라는 그리메트의 구박에 턴바우가 입을 앙다문 것 같은 표정으로 한 말은 “나타샤는 해낼 거야. 자기가 원하는 건. 뭐든 다”였다.
트레스웨이는 <메모리얼 드라이브>를 두고 “슬픔을 견디며 사는 것,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것, 엄마와 아이 사이의 불멸하는 사랑과 변치 않는 유대, 그리고 작가가 되는 것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2007년 퓰리처상을 받은 <네이티브 가드>도 함께 나왔다. 남북전쟁 때 북부 연방 군대에서 최초의 공식적 흑인 병사 연대로 인정한 부대다. 트레스웨이는 이 시집에서 흑인 병사들에게 가해진 폭력, 차별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폭력과 고통에 관한 이야기도 시어로 풀었다. <메모리얼 드라이브>가 인종 폭력의 역사도 다룬다는 점에서 두 책은 맞물린다.
노예 설화에 따르면 --목화 꼬투리 하나마다
여러 세대의 유령들이 깃들어 있다:
산더미 같은 포대들의 무게와 일렬로 늘어선
그 열들의 길이로 자신의 날들을
재는 사람들, 그들의 땀이 목화에 얼룩져 있고
아직도 우리 옷에 꿰매져 있다.
나는 시골 전쟁터로 돌아왔다
거기에서 흑인 군대가 싸우고 전사했다--
허드슨항에서 흑인 병사들의 시체가 부풀어 올라
태양 아래 시커멓게 되었다--묻히지도 못하고
대지의 초록 시트가 그들을 덮어줄 때까지,
어떤 묘비로도 표시가 되지 않았다.
길들도, 빌딩들과 기념비들도 다
남부 연합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진 곳,
그 오래된 깃발이 아직도 걸려 있는 곳, 나는 돌아온다.
미시시피로, 내 존재를 범죄로 만들어준
주(州)로--물라토, 혼혈--내 원래의 땅에서
내가 네이티브인데, 이곳에 그들은 나를 묻을 것이다.
-<네이티브 가드>에 수록한 ‘남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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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 기자 jom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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