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가 천지 차이…신한은행이 야구팬, 긱 근로자 잡은 비결
‘직장인’ 개념 확장, 긱 근로자 잡아
프로야구 역대 최장기 타이틀 스폰서십
“은행은 필요하지 않다”는 요구에 대응
“금융(banking)은 필요하지만, 은행(bank)은 사라질 것.”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의 28년 전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영업점을 방문하는 대신 휴대폰의 뱅킹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7년 이후 지난 8월까지 5년여간 문을 닫은 국내 은행 영업점 수는 1112개에 달한다.
은행들은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디지털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은행권에서 신한은행은 발 빠르게 디지털화에 나서고 있는 은행으로 꼽힌다. 지난 3분기(7~9월) 신한은행 뱅킹 앱 ‘쏠’(SOL)의 평균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847만명으로 전년 동기(754만명)보다 12.3% 급증했다. 토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MAU 1200만~1300만명)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3분기 신한은행의 전체 여신 중 디지털 채널을 통한 여신 규모는 71.4%로 2년 전(65.6%)보다 5.8%포인트 증가하기도 했다.
은행권에선 신한은행의 ‘디지털 올 라이프 플랫폼’ 마케팅 전략이 디지털 경쟁력 확보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온오프라인에서 파악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디지털 플랫폼 트래픽을 유도하고 있다”며 “금융과 비금융을 망라한 콘텐츠로 신한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도 이용할 수 있는 범국민적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 1 직장인을 잡아라
도전 1 고정관념을 깨다
직장인은 은행의 ‘귀한 손님’으로 꼽힌다. 일정한 소득이 있어 유동성 자금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예·적금 및 대출 수요가 많은 고객군이기도 하다. 은행들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신한은행은 ‘발상의 전환’으로 직장인 마케팅을 차별화했다. ‘직장인’이란 개념을 ‘규칙적으로 직장에 다니면서 급료를 받는 사람’에서 ‘일정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확장한 것이다. 2019년 6월 신한은행이 은행권에서 최초로 도입한 ‘소득 이체 고객을 위한 디지털 멤버십’이 대표적이다. 직장인에게만 주어지던 급여 이체 혜택을 연금 소득자, 주부, 학생, 아르바이트생, 긱(gig·임시직) 근로자 등 일정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신한은행은 매월 50만원 이상의 소득을 정기적으로 은행에 이체하면 이 멤버십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체 및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출금 수수료 혜택, 환율 우대 등 각종 금융 혜택이 제공된다. 매월 진행되는 이벤트 참여 기회와 문화 서비스도 주어진다.
소득 이체 고객을 위한 디지털 멤버십 출시 이후 3년 만에 가입자는 106만명을 넘어섰다. 디지털 앱으로만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규모라는 평가다. 전체 가입자 중 26만명은 전통적 개념의 직장인 급여 소득자가 아닌 기타 소득(연금 소득자, 주부, 아르바이트 등) 보유자로 서비스의 취지가 극대화됐다.
상황 2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라
도전 2 야구 콘텐츠로 팬덤 생성
시중은행들은 야구 농구 배구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브랜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특정 구단이나 선수, 대회를 후원하면 스포츠 팬들에게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인기 종목을 지원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스폰서십과 같은 브랜드 마케팅엔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 기업 입장에선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이를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신한은행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2018년 KBO(한국야구위원회)의 타이틀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2021년 말엔 스폰서십을 2년 연장해 역대 최장기 타이틀 스폰서십 확보하게 됐다.
신한은행은 야구팬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스포츠 마케팅 전담팀을 신설하고, 뱅킹 앱 쏠을 통해 야구 콘텐츠 ‘쏠야구’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매일 10만명씩 참여하고 있는 ‘야구·상식 퀴즈 이벤트’, 승리 팀을 맞히는 ‘쏠픽’, ‘월간 MVP 팬 투표’, ‘KBO 올스타 팬 투표’ 등이 대표적이다.
야구 팬덤은 신한은행 뱅킹앱의 이용자 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쏠야구’ 이용 고객 수는 2019년 하루 평균 1만5000명에서 올해 10만명으로 급증했다. 연간 이용자 수는 100만명으로 신한쏠의 주력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상황 3 치열해진 뱅킹앱 경쟁
도전 3 변화는 과감하게
시중은행에 뱅킹 앱은 늘 고민거리였다. 디지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무엇보다 뱅킹 앱 사용자 수를 늘려야 하는데, 카카오뱅크 토스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비해 앱이 무겁고 복잡해 이용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는 앱에 너무 많은 기능을 한데 모아 놓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인터넷전문은행과 달리 카드사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 캐피털사 등 여러 그룹사와 함께 금융지주 아래 묶여 있는 은행으로서는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최근 신한은행은 ‘(과거의) 은행은 깨끗하게 지운다’는 철학으로 뱅킹 앱을 과감하게 업그레이드했다. 1년 전 1만명 규모의 자문단을 구성해 대대적인 뱅킹 앱 개편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50차례의 설문을 통해 접수된 4000여개의 고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렇게 탄생한 게 10월 20일 출시된 ‘뉴 쏠’이다.
뉴쏠은 기존 앱보다 작업 처리 속도가 4배 빨라졌다.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메뉴 화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친구·그룹 지정 기능을 만들어 계좌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챗봇을 켜고 “김신한에게 10만원 이체해줘”라고 말한 뒤 ‘이체하기’ 버튼만 누르면 송금이 이뤄지도록 설계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필요하지 않다는 시대의 요구를 귀담아듣기로 한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쉽고, 편하고, 안전하게 금융 업무를 볼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기업간 경쟁에선 한끗 차이가 천지 차이를 만든다. 신한은행의 마케팅 전략은 이 한끗 차이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던 대로’ ‘남들처럼’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집요하게 차별화를 꾀했다.
직장인의 개념을 주부, 학생, 긱 근로자 등 일정한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확장한 것은 보수적인 은행권에서 ‘파격’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이들에게 1금융권의 문턱이 높기만 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금융사’라는 이미지와 ‘유동성 자금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로 분석된다.
신한은행은 모든 은행들이 활발하게 추진 중인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스포츠 팬들에게 브랜드를 노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야구라는 매개를 통해 신한은행에 대한 새로운 ‘팬덤’을 만들겠다는 전략이 통했다. 다양한 야구 콘텐츠와 금융 상품을 앞세운 덕에 많은 야구 팬들이 신한은행의 뱅킹 앱으로 유입됐다.
새 뱅킹앱 ‘뉴쏠’은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관점을 바꾼 결과물이다. 그동안 “은행 앱엔 필요없는 기능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한 은행은 많지 않았다. 앱에서 특정 기능이 사라진다는 건 은행 내부의 누군가에겐 본인의 담당 업무가 후선으로 밀리는 ‘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고객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앱의 자유도를 높여 문제를 해결했다.
박상용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마치 콜라를 파는 것과 컴퓨터를 파는 것이 다른 문제이듯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렇다면 “금융마케팅만의 독특한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금융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서비스임을 이해해야 한다. 서비스는 (1)눈에 보이지 않으며(intangibility), (2)같은 서비스라고 해도 누가, 언제, 어디서 서비스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전달된다(heterogeneity). (3)생산과 서비스가 잘 분리되지 않으며(inseparability), (4)저장이 안된다는 특징(perishability)도 있다.
이 중 “서비스의 비분리성(inseparability)”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조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생산→판매→소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데 반해, 서비스업은 보통 먼저 판매되고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판매→생산&소비).
그렇다면,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발생하는 서비스업의 특징 때문에, 금융마케터들이 더 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금융서비스의 성공적 전달을 위해 “더욱 치열하게 소비자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서비스의 경우 소비자의 니즈 자체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특징이 있다. 단순한 예적금 수준의 금융상품만을 원하는 소비자도 있는 반면, 다양한 투자상품, 절세 이슈 등에 대한 니즈를 가진 PB 고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마케터가 소비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애초부터 생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비스의 본질적 특성상 금융마케터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경우에도 뱅킹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1만명 규모의 자문단을 구성해 4000여개의 고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는 “서비스마케팅의 비분리성”을 이해한 적절한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한편, 신한은행이 직장인의 개념을 일정한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확장해 연금 소득자, 주부, 학생, 아르바이트생, 임시직 근로자 등에게 급여 이체 혜택을 제공하고, KBO(한국야구위원회)에 최장기 타이틀 스폰서십을 제공한 것 역시 금융마케팅만의 독특한 특징을 잘 이해한 마케팅으로 해석된다.
이는 특별히 금융마케팅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인 “수탁책임(Fiduciary responsibility)”을 잘 이해한 마케팅 전략이다. 수탁책임은 금융회사의 윤리적 책임, 평판 관리가 일반 회사에 비해 본질적으로 2배 이상 중요함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일반 제조업 제품의 경우 부품 공급자와 최종 제품 수요자가 다른데 반해, 금융 상품은 raw material의 제공자, 소비자 모두 최종소비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출 상품의 ‘raw material’은 돈인데, 이 돈은 대부분 최종 소비자인 고객의 수신 상품으로부터 나온다. 즉, 금융상품의 공급자, 소비자 모두 일반 소비자이다. 따라서 금융마케터의 경우 기업의 윤리 경영, 평판, 명성 관리 등이 매우 중요하다. 평판이 좋지 않은 금융회사에 아무도 돈(raw material)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해외투자 '한경 글로벌마켓'과 함께하세요
▶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집값의 80%까지 '금리 1%대'로 대출해 준다고? [집코노미TV]
- "15억 아파트, 5억 곤두박질쳤다"…'악소리' 퍼지는 동네
- "삼성보다 20만번 더 접는다"…독기 품은 화웨이 새 폴더블폰 [영상]
- 손석구·아이유도 입었다…올 겨울 대세로 떠오른 '이 옷'
- 머스크 '新트위터 전략' 역풍맞나…화이자·아우디 "광고 중단"
- 이영애, 200억 기부한 ♥남편 따라 또 나섰다…외국인들에 도움의 손길[TEN피플]
- ‘국민 첫사랑’ 이승연, 하루아침에 승무원→실업자 된 사연 고백
- [단독]서유리 남편"경영권 분쟁, 아내의 오해…아파트도 안 팔아"[TEN인터뷰]
- '100억 CEO' 김준희, 몀품 C사 가방 들고 쇼핑몰 홍보...진심이네
- 이상순, 제주 카페 논란에 "이효리와 무관…온전히 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