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눈치 보며 美 등한시한 결과, 韓 3등 동맹국
● 美, 韓에 한미일 동맹 참여 독촉 중
● 친일 논란에 동맹 놓치면, 美 등 돌릴지도
● 한미관계 파탄시킨 文의 균형전략
● 경제·군사 패권은 미국에 있다
3등급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상설 FIMA Repo Facility(이하 피마)를 맺은 국가다. 한국은 2등급 국가지만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지 못했다. 2등급 국가군이지만 실상은 3등급에 가까운 셈이다.
통화스와프와 피마는 거래한도가 600억 달러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나 차이가 크다. 통화스와프는 필요시 자국 화폐를 달러와 교환한다. 따라서 외환보유액이 늘어난다. 반면에 피마는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맡기니 전체 외환보유액은 늘어나지 않는다. 대신 달러를 현금 형태로 쓸 수 있다. 최하등급 국가군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미노선을 추종하는 북한, 이란 등이 속해 있다.
한국에 조금씩 등 돌리는 미국
한국과 미국의 사이가 멀어진 이유를 알아보려면 시곗바늘을 8년 전으로 돌려봐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10월 북중러 군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전제조건으로 한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개정안은 한반도 긴급 사태 발생 시 한국의 주권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서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합동작전을 펼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한미는 주한미군 전력의 첨단화, 한미 참수작전체계(적국 수뇌부 무력화 작전) 구축 등 대북 응징보복 체계를 구축했다.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전향적인 조치는 일시적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1등급에 속했던 한미동맹은 2021년 12월 사실상 3등급 동맹으로 격하된 듯 보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통화스와프 연장에 실패했다. 한국은 피마 체결 대상국이 돼 버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집권기 한국의 외교정책 기조는 '균형전략'이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의미였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를 계승한 것이다. 미국 위주의 동맹관계를 중국을 이용해 재편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기조였다. 이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론에 근거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기인 2008년 초만 해도 중국의 성장세는 두드러졌다. 중국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에 입각해 한미일 동맹 관계를 조금씩 흔들었다. 2019년 8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체결을 파기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GSOMIA 파기 결정에 지속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같은 해 11월 9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이 일본행 비행기 안에서 "미국인들은 한국에 왜 미군이 필요한지 모른다"며 주한미군 감축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을 정도였다. 결국 2019년 11월 22일 정부는 GSOMIA를 매년 재협상하는 조건으로 연장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4개국 안보회담(QUAD·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가입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20일 한미 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한 문 전 대통령은 하원 의장단 간담회에서 쿼드 참여 요청을 받았으나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펼친 동북아균형자론은 실패로 돌아갔다. 올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쿼드 가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5월 2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QUAD는 QUAD로 남을 것"이라며 기존 가입국인 미국, 일본, 인도, 호주 외의 추가 가입국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는 미국이 한국의 QUAD 가입을 부담스럽게 여기기 시작한 셈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도 지금으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글로벌 경제 패권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금 대신 달러가 지구촌의 강제통용화폐(Fiat money)가 돼 버렸다. 달러 사용 인구는 빠르게 늘었다. 1940년대 달러 경제권의 인구는 4억 명이었다. 1950년대 10억 명, 1980년대 30억 명을 거쳐 2020년대에는 78억 명으로 확대됐다. 사실상 지구상에 사는 전 인류(80억 명)가 달러의 영향권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9월 16일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지자 세계금융시장은 멈춰 섰다. 대형 금융기관이 무너졌고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시중 달러는 부족해졌다. 미국 연준은 전 세계 중앙은행에 수백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준에 따르면 2008년 12월~2020년 7월 중앙은행 11곳과 총 569건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이외에도 연준은 7500억 달러 상당의 미국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그 덕분에 미국 금융시장에서 부실채권은 모습을 감추었다. 달러 가치 회복을 위해 소요된 돈만 약 25조 달러. 일각에서는 미국의 긴급구제금융 지원을 '헬리콥터 머니'(무제한 돈 풀기)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돈이 서유럽(2010~2013년)과 동부 유럽권(2014~2016년) 그리고 중국(2015~2017년)의 금융위기를 해결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하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유동성 위기를 종식시키는 데에도 헬리콥터 머니의 역할이 컸다. 수차례의 국제금융 위기를 거치며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점차 커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각국에 달러를 공급하는 기준은 동맹정책의 새로운 잣대가 됐다. 한국은 글로벌 기축통화(Global Fiat Money)인 달러의 위상과 조정 단계에 접어든 최근의 미중관계 동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루비콘 강 건넌 미·중관계
부시 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2006년 3월 미국·인도 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인도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했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가 잇따라 베트남에 방문하며 관계를 정상화했다.
미국은 이후로도 전방위로 중국을 압박해 왔다. 최근 미국의 대중 압박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은 미국판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전쟁 없이 상대방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방식이다. 미국은 현재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공산당과 러시아 정부 붕괴를 정조준하고 있다.
순응이냐 붕괴냐 기로에 선 중국과 러시아
미국은 다양한 제재 조치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1992년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2005년 중국은 고정환율제도를 적용 중이었다. 위안화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으니 미국의 대중국 경상수지 적자는 당시 150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은 중국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결국 중국은 고정환율제(8.2위안)를 포기하고 2005년 관리환율제로 전환했으며 2015년에는 고정환율제도를 아예 폐지했다. 고정환율제를 폐지하자 2020년 1월 1단계 미·중 무역합의를 계기로 연간 10%대를 기록하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5%대로 하락했다.
바이든 정부도 통상무역법 301조 적용(불공정 무역 보복 조항)을 통해 지적재산권 보호, 산업보조금 관행 개선, 금융시장 개방을 중국에 강제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3%대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노무라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3%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의 압력을 제외하고서라도 코로나19 대유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삼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막대한 부채도 골칫거리다. 2000년 이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46배 성장했으나 융자도 24배 늘어났다. 2012년부터 산업 생산성과 경제 성장률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8년 당시 전 세계 자본의 80%가 중국으로 유입됐으나 그중 4분의 3가량이 부채 상환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공식적 대외부채 비율은 300%대지만 상환 불가능한 부채가 85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 국면에 접어든 미·중 패권경쟁
전쟁이 끝나면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6·25전쟁 직후 형성된 한미동맹과 같은 반(反)중국·러시아 양자동맹이 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의 과거로 반추해 보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손을 잡고 막대한 전쟁 피해를 극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도 있다.
한국도 뒤늦게 미국의 손을 잡으려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고 대북 선제타격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를 선언했다. 대통령 당선 뒤인 5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표명하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한 참여를 선언했다.
미국은 한미일 공조 체계를 확립해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한일관계가 걸림돌이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갈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반일 vs 친일 정쟁 넘어서야
그래서일까. 9월 30일부터 시행된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유사시 한반도 문제에 일본의 해상자위대를 개입시키겠다는 것인지 윤석열 정부의 안보관이 의문"이라고 논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한미일 군사합동훈련을 "극단적 친일행위"라고 했다.한미일 동맹은 경제적 측면에도 군사적 측면에도 한국에 이득이 돼 왔다. 6·25전쟁 이후 미국은 일본에 7000개 종류의 상용기술을 이전했다. 전후 한국을 지원하는 것이 기술이전의 조건이었다. 한국은 정부 수립 후 126억 달러 규모의 원조도 받았다. 미국이 대부분 지원했으며 일본도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금액을 원조했다. 이 같은 원조를 토대로 한국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은 한국 발전 과정의 초석이 됐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1962~1967) 중 발생한 12억 달러의 재정적자 국면을 대일청구권 자금 8억 달러로 극복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1967~1971)에 발생한 62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는 베트남 파병에 따른 특수를 통해 보전하며 외환 수급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미국도 한국의 빠른 선택을 독촉하고 있다.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76년 이후 45년 만에 최초로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중국보다 높아졌다. 미국에 반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국내 여론 때문에 한미일 군사동맹 격상을 주저하고 있는 데 대한 메시지로 볼 수 있다.
●1961년 서울 출생● 육사 41기
●국방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 前 국군정보사령부 대북분석관
●조성태(前 국방장관) 의원 보좌관, 디앤디 포커스 발행인
●現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
● 現 국방부정책자문위원
●저서 : '북한의 통일대전과 대응책' 등 비공개 안보정책서,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안'
홍성민 안보정치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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