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얼마 남지 않은 2050 탄소중립, ‘K택소노미’로 녹색경제 초석 다진다
● 지구 평균온도 10년 사이 1.09℃ 올라
● 2020년부터 K택소노미 개발, 1년 만에 최종안
● 6大 환경목표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 분류
● 녹색금융 실행 기준 활용돼 매우 중요
● 9월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EU 기준보다 약해
● 원전과 별개로 재생에너지 기술 확보 나서야
최근 들어 지구 온도 상승 속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해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10년간 지구 평균온도는 1.0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IPCC는 보고서에서 '이번 세기 중반까지 지금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3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지구 평균온도는 1.5℃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구 평균온도가 오르면 자연재해는 더욱 심화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온도가 1.5℃ 상승할 경우 극한기온 발생빈도는 8.6배, 폭염 발생빈도는 2.4배, 강수량은 1.5배 증가하며 태풍의 강도도 10%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올해 전 세계는 역대급 폭염과 가뭄, 잦은 폭우와 슈퍼 폭풍, 홍수 등 인류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극단적 기상이변을 경험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초석 K택소노미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은 30여 년 전 시작됐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은 1988년 IPCC를 출범해 행동에 나섰다. 유엔(UN)은 1992년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위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채택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2003년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 이행 방안을 명시한 교토의정서가 발효됐고, 이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으로 다시금 의결됐다.2021년 1월에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까지 포함하는 범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 문제 해결과 적응을 위한 파리기후협정이 발효됐다. 이를 기점으로 세계 각국은 지구의 평균온도를 18세기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이내, 최소 1.5℃ 이내로 낮추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발맞춰 나가고 있다.
한국 역시 파리기후협정 이행 의지를 다잡고 있다. 2020년 12월 정부는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제로(Net-Zero), 즉 탄소중립을 향한 국가 비전을 선포했다. 2021년 8월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해 전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했다. 하지만 기본법은 강제력이 없어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자발적 노력으로는 가시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더군다나 성급한 녹색경제활동 추진으로 인한 부작용도 감지된다. 여러 국가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도입했는데, 대규모 자금 집중이 예상되자 일부 기업은 그린워싱(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에 나섰다. 그린워싱이 만연할 경우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물론 탄소중립 움직임에 걸림돌이 된다.
이런 불합리한 행위를 억제하려면 무엇이 탄소중립을 위한 행위인지 분명히 알려주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은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고, 그 결과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가 나왔다. 현재 녹색분류체계는 여러 국가에서 EU와 국제표준화기구(ISO)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한국은 2020년부터 정부 주도로 EU 및 ISO 기준을 참고해 탄소중립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이하 K택소노미) 개발에 나섰다. 환경부는 2021년 4월 개정된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에 따라 에너지, 수송·물류, 건축물, 생태계, 물, 오염관리, 자원순환 등 각 분야 14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를 개최해 초안을 개발했다. 또한 공기업, 민간기업, 신용평가사, 금융지주사, 은행, 증권 등 24개 녹색채권 발행기관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을 거쳤다. 이외 국회, 탄소중립위원회 등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과 검토를 거쳐 지난해 12월 최종안을 발표했다.
K택소노미는 개념과 원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규정돼 있다. K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 순환경제, 오염, 생물다양성 등 6대 환경목표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의 분류를 명시하고 있다.
6大 환경목표 및 3원칙 명시해 그린워싱 배제
녹색경제활동은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환경 개선에 기여해야 하고, 사전 예방적 환경 관리와 사회적 공감대를 기본으로 3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첫째로 6대 환경목표 가운데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해야 하고, 둘째로 환경목표 달성 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며, 셋째로 인권·노동·안전·반부패·문화재 파괴 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K택소노미는 크게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나뉘는데 그 아래 69개 경제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녹색부문은 재생에너지 생산, 무공해 차량 제조 등 64개 경제활동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탄소중립 핵심기술 활용을 위한 소재·부품·장비 제조, 온실가스 감축 설비의 구축과 운영, 재생에너지 생산, 수소와 암모니아 제조, 무공해 차량·철도차량·건설기계·선박·항공기 제조, 제로에너지 건축물, 녹색건축물 신규 건설 등 경제활동 자체가 온실가스 감축에 상당히 기여하는 활동 위주로 포함돼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온실가스 다(多)배출 업종으로 알려진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업종이 녹색부문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2018년 환경부 기준에 따르면 전체 산업군의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36%로 이 가운데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업종의 배출량이 전체의 5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중립 달성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특히 이들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의 탈탄소화가 필수다. 현재로서는 이들 업종에 곧바로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탄소중립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K택소노미 녹색부문에 동일 계열 최상의 환경 기준을 만족하는 다배출 업종의 제품 제조 활동도 포함했다.
또한 별도로 온실가스 감축 설비의 구축 및 운영 기준을 마련해 탄소중립에 기여하도록 하는 기준을 녹색부문에 제시하고 있다. 이는 EU도 비슷한 상황이다. 유럽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에서 지정한 제품 벤치마크 상위 10% 평균값을 기준으로 다배출 업종이지만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경우 기여도를 인정해 주고 있다.
K택소노미가 다른 나라의 택소노미와 다른 점은 '전환부문'에 있다. 전환부문은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적 경제활동으로, 한시적으로만 인정한다. 세부적으로는 중소기업 사업장 온실가스 감축 활동, 액화천연가스(LNG) 및 혼합가스 기반 에너지 생산, 블루수소 제조, 친환경 선박 건조, 친환경 선박 운송 등 총 5개 경제활동을 포함한다.
K택소노미는 기업이나 금융기관, 지원 전담기관이 녹색채권, 녹색여신, 녹색펀드 등 녹색금융을 실행하기 위한 기준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K택소노미는 적합성 판단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
순서대로 ①활동 기준 판단(경제활동이 활동 기준에 부합하는지 판단) ②인정 기준 판단(경제활동이 6대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적 기준에 부합하는지 판단) ③배제 기준 판단(경제활동이 심각한 환경피해 판단 기준에 따른 요건에 부합하는지 판단), ④보호 기준 판단(경제활동이 인권·노동·안전·반부패·문화재 파괴 등 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는지 판단) 등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녹색분류체계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녹색분류체계 적합성 기준 미충족 업종으로 분류된다.
국제 동향 따라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또 다른 쟁점은 '원자력발전(이하 원전)' 포함 여부다. 탄소중립 달성은 인류 생존을 위해 전 세계가 이뤄야할 목표지만, 지금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고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의 탈탄소화를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를 화석연료 등 인류가 기존에 사용하는 에너지 양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국토가 협소하고 산이 많은 지형으로 태양열 에너지, 풍력 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하기에 한계가 있다.
또한 한국은 산업용, 상업용, 가정용 총합 1인당 전력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8위를 기록할 정도로 전력소비량이 많은 국가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강제하다가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도 전에 국가 존폐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왔다.
정부는 업계 요구에도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할지를 신중하게 고민해 왔다. 이런 가운데 EU에서 먼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했다. EU는 7월 원전이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력원이라는 측면을 반영해 EU택소노미를 보완한 기후위임법률을 최종 통과시켰다. 올해 2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 각국은 에너지 안보에 위기를 맞았고, 원전의 역할과 운영 방식 및 신규 건설에 대한 재논의 분위기까지 형성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K택소노미 최종안을 발표할 당시 국제 동향과 국내 여건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전 포함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EU가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하자 한국 정부도 7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와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새정부 에너지 정책방향'을 수립했다.
논의 끝에 환경부는 9월 20일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한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에는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녹색부문) △원전 신규 건설(전환부문) △원전 계속운전(전환부문) 등 3가지로 구성된 원전 경제활동 부문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환경부는 "이번 초안은 EU택소노미를 참고하되 국내 여건을 감안하기 위해 학계와 전문가, 시민사회, 산업계 등으로 구성된 세부 협의체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K택소노미에 포함된 원전에 관한 기준은 EU택소노미 기준에 비해 느슨하다. 쟁점은 사고저항성핵연료(Accident Tolerant Fuel·원전의 비상노심냉각 기능이 상실돼도 사고 대처 기간을 현저히 개선할 수 있으며, 수소 발생량을 크게 억제해 원전의 안전성을 향상할 수 있는 핵연료)의 적용 시기인데 EU택소노미는 2025년부터로 정했으나 K택소노미는 '원전 신규 건설'은 바로 적용하기로 하면서 '계속운전'의 경우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국내 연구개발 일정상 상용화가 가장 빠른 시기는 2031년이기 때문에 그때로 설정하고 도입을 촉진하도록 유도했다"고 밝혔다.
"EU택소노미보다 기준 느슨해 보완 필요"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에 관한 기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EU택소노미는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하고 남은 핵연료 또는 핵연료의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선의 세기가 강한 폐기물) 처분시설 가동을 위해 문서화된 세부계획을 마련하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보유하도록 명시했다.반면 K택소노미는 지난해 12월 정부가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존재해 구체적인 시설 확보 연도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추후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 제정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과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 및 원전 해체 비용을 보유하도록 명시했다.
원전의 K택소노미 포함 결정을 놓고 관계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는 이번 결정이 원전의 경제활동과 안전성, 환경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초안 발표 당시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전·후방 원전 산업에 녹색자금이 공급되고, 이는 우리나라의 원전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업계에서는 K택소노미가 앞으로 녹색금융 투자의 기준이 될 예정이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세계 3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기금에서 평가한 바에 따르면 K택소노미는 EU택소노미 대비 충분치 않아서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네덜란드 연기금뿐만 아니라 어떤 투자처도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란 뜻도 내비쳤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가동 시점이 명확하지 않아 해외자본이 유입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종순 조선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10월 12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기술을 개발해 왔고, 일부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전문가들은 처분장을 2050년에 운영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해외에서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 우리 원자력산업이 활성화되고 원전 수출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운영 시점을 EU 기준인 2050년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원전이 K택소노미에 포함되면서 정작 녹색경제 전환의 핵심 요건인 재생에너지 생산 기술력 확보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EU택소노미가 원전을 채택한 데는 원전으로 유턴한 프랑스의 상황을 감안한 결정으로 봐야 한다. 원전이 탄소중립을 위한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확대야말로 시급한 안건이며 기술력 확보를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K택소노미를 마련해 녹색경제 실천의 초석을 다지는 일은 지금 시점에서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과 능동적인 노력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생산 기술은 기업이 독자적으로 자기 자본을 투자해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삼성전자가 RE100(재생에너지 100%) 가입을 선언했다. 이 변화를 정부가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하는데 현재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무엇인지, 방향성이나 전략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소한 EU의 기준에 맞춰 재생에너지 확대를 고민하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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