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 중요하지만 강대국 압력 벗어날 방법도 생각해야
[최재덕 한중정치외교연구소 소장]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전쟁의 총성이 미중 패권경쟁을 민주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의 진영 경쟁으로 확대하면서 우려해왔던 한반도의 신냉전 시기를 앞당겼다. 5년 만에 재개된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고강도 대응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이 본격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북한은 지난 9월 말 실시한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빈번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군용기 시위 비행으로 대응한 데 이어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시행에 반발하여 11월 2일 사상 최초로 동해상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여기에 우리 군은 정밀 공대지미사일 3발을 NLL 이북 공해상, 북한 미사일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 해상에 정밀 사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북한은 11월 3일에도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하여 3발의 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하여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전례 없는 강경한 태도는 미중패권경쟁, 강대국 경쟁의 시대라는 큰 틀 내에서 미국과 유럽 및 민주주의 국가 연대에 대응한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권위주의 국가의 결집과 연계되어 있다. 강대국 중심의 진영 간 대립 구도가 한반도에 냉전적 구도를 강화하고 안보 구조적 제약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중러 중심의 다극체제와 신냉전으로 이행하는 국제 정세의 혼란기를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고 핵무력을 완성할 기회로 삼고 있다. 북한은 2022년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반대하고 7월에는 러시아가 무력으로 점령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을 독립국으로 승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에 보낸 칠순 기념 축전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대항하는 것에 대해 푸틴의 탁월한 영도력과 강인한 의지를 칭송하고 북러 친선관계를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했으며, 2022년 5월 홈페이지 게시물을 통해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글로벌 안보구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 중국의 국제질서 재편 움직임에도 적극 동조하고 있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써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및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UN 안보리 차원의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보호 장막을 제공하고 있다. 북·중·러의 연대가 가시화된 것이다.
북한은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핵무력 사용 기준을 '자국이 군사적 공격을 받을 경우'에서 '근본 이익 침탈시'로 확대하고,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을 제정하여 '위협 상황'에 대응하여 김정은 총비서의 판단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의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1994년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 시절 보유했던 1800여 개의 핵탄두와 ICBM 폐기 대가로 미국·영국·러시아와 영토와 안보를 보장한다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20년 후인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에 경제 제재만 가하고 직접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이 양해각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우크라이나의 끊임없는 나토 가입 요구에도 나토는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우려해 이를 유보해왔고 핵 포기 후 28년이 지난 시점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공했음에도 미국과 서방이 핵전쟁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여 경제 제재와 무기 지원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북한이 핵 포기 후 약소국이 당할 배신, 서방이 보증하는 안전보장의 허상과 냉혹한 국제질서를 다시 자각하고 핵무장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의 책임을 한국과 미국에 돌리며 미국과 남측의 군사 행동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면서 한미가 북한을 겨냥해 무력을 사용할 경우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고, 미국은 NLL 이남을 발사된 미사일을 포함해 북한의 대량 미사일 발사는 무모한 행동이며 핵실험 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과 같이 북한이 핵 무력 고도화를 자위 수단으로 합리화하며 무력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미국과 한국이 강대강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 남북한 긴장 완화의 기회를 찾기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한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군사적으로 단호한 경고를 보내고 한미동맹의 굳건함과 전략적 우위를 확실히 해야 하지만 동시에 북한의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은 북한과 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야 한다.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매우 높은 지역에 속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같은 대륙 반대편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 힘을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계기로 군사력 증강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안보에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로 빗어지는 남북한 갈등의 극대화이다. 남북한의 갈등은 한반도에 투사되는 강대국의 부정적인 압력을 높이고 개입의 빌미를 제공한다. 강대국의 지정학적 대결은 우크라이나와 한국과 같은 중간국에 부정적인 압력을 투사한다.
지금과 같이 중러 연대가 힘을 강화하고 북한이 더욱 대담한 도발을 이어가면 중러의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일본이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 투사되는 강대국의 부정적인 압력은 증가하고 한국의 외교적 선택의 폭이 좁아져 미·중·일·러의 힘의 균형점이 깨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공조는 한국의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인정하고 미·중·일·러의 힘의 균형점이 급격히 변하지 않도록 강대국의 부정적인 압력을 분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과 매우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간국의 외교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신냉전이라는 비우호적인 전략 환경 속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대한 소련의 승인으로 발발했고 중국의 파병으로 결국 종전하지 못하고 북한, 중국, 유엔군 사이에 맺어진 정전 협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의 대리전이자 북·중·러 연대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개선과 더불어 한중· 한러 관계의 위기를 관리하여 북·중·러의 연대를 견제할 경제적, 외교적 상호 발전을 기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미중패권경쟁과 진영 대결, 국제질서를 다극체제로 견인하려는 중러의 연대와 한반도 신냉전 구도의 심화라는 넓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위기 상황과 중간국으로 강대국의 부정적인 압력이 커지는 구조화된 안보적 제약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남북한 관계는 가장 어렵고 절박할 때 관계 개선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을 기억하고 남과 북이 미중패권경쟁과 신냉전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한반도 안보 위기에 공동 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긴 시계열에서 신냉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개선의 기회를 모색하며 위기 뒤에 올 평화의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최재덕 한중정치외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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