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人공정에 직원 왜 끼었는지 몰라”... 농심, 연이은 사고에도 덮개설치 ‘미봉책’
노동부 안전조치 요구에...농심, 덮개 설치 방안 확정
농심 “무인 공정이라 사고 경위 미스터리”... 노동자에 책임 전가 비판
인터록 설치 제외…끼임 사고 경위 파악도 미진행
노동부 “안전조치 계획서 검증…현장 실사할 것”
농심이 노동자 ‘끼임 사고’가 발생한 부산 신라면 공장 내 냉각 설비에 덮개 추가 설치 방침을 정했다.
완제품 포장 작업 전 라면을 식히는 ‘리테이너’ 설비에서 지난 2월과 이달 노동자가 설비에 끼어 다치는 산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데 따른 조처다.
농심은 “냉각 공정은 무인 공정으로 사고가 날 수 없는 공간”이라면서 덮개가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사고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 지우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인 공정으로 왜 직원이 이동했는지도 규명하지 못한 채다.
4일 농심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농심은 전날 부산 사상구에 있는 농심 부산공장에서 황청용 농심 경영관리부문장(전무) 주재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고 리테이너 설비에 덮개를 설치하는 안전조치 안을 잠정 확정했다. 여기에는 비상 정지 버튼 위치 조정도 포함됐다.
농심의 이번 안전조치 안 구성은 고용노동부의 안전조치 계획서 제출 요구에 따른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농심 부산공장에서의 노동자 끼임 사고 발생 후 9개월여 만인 지난 2일 재차 노동자가 끼어 다치자 안전조치 계획서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부, 안전조치 계획서 제출 요구... 농심 “공장 리테이너에 덮개설치 할 것”
부산공장은 농심이 수출용 신라면을 만드는 주력 공장으로 꼽힌다. ‘사상공장동’, ‘삼락공장동’으로 나뉜 부산공장 내 2개동에 라면 반죽을 섞는 혼합기. 반죽 증숙기, 유탕기, 냉각기(리테이너), 포장기 등 9개 생산라인이 구축됐다. 각각 5개, 4개 라인이다.
지난 2월에는 사상공장동에서 노동자가 리테이너 설비에 손이 끼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달 2일에는 재차 야간작업 중이던 노동자의 신체가 삼락공장동 리테이너 설비에 끼어 크게 다쳤다. 공장동은 달랐지만, 설비의 형태와 작동 방식은 동일했다.
이는 지난달 15일 SPC 계열사인 SPL 제빵 공장에서 20대 직원이 소스를 섞는 교반기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망하고, 같은 달 23일 SPC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직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절단되는 사고가 난 데 연이어 발생한 식품 제조 공장 사고다.
일각에선 농심이 공장에 끼임 방지 센서인 ‘인터록’ 등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반복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농심 부산공장 9개 생산 라인에 설치된 총 9대 리테이너 중 인터록 설치 설비는 단 1개도 없다.
농심은 사고가 잇따른 리테이너 설비에 덮개를 설치해 해당 설비로의 노동자 접근을 차단, 추가 사고를 막는다는 방침이다.
덮개는 노동자의 신체가 낀 설비 작동부를 가리는 형태로 예정됐다. 다만 덮개를 열 경우 기기가 멈추는 인터록은 제외하기로 했다.
농심 관계자는 “라면 공장이 선형 구조로 이뤄져 있고, 공간 등이 좁아 리테이너에만 따로 인터록을 설치할 수는 없다”면서 “리테이너 냉각 공정은 이미 무인으로 이뤄지고 있는 공정인 만큼 덮개를 설치하면 추가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무인 공정이라더니, 9개월새 두번이나 끼임사고...“노동자 탓으로 돌려”
문제는 농심의 이번 안전조치 안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무인 공정이라는 농심의 설명과 달리 이미 두 차례 노동자가 배치돼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2월 사고에서 농심은 리테이너 공정의 완전 무인화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아울러 농심은 왜 무인 공정으로 노동자가 이동해 동일 설비에서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됐는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이번 덮개 설치라는 안전조치 안을 세웠다. 대신 덮개에 잠금 장치를 설치, 노동자의 접근 자체를 막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파악됐다.
농심 관계자는 “리테이너 설비 이상 시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는 안전 지침이 있었지만, 지난 2월 이후로는 이조차 제외하고 완전 무인으로 변경했다”면서 “사고를 당한 해당 직원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리테이너 냉각 공정에 왜 갔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시 기기 가동을 멈추는 비상 정지 버튼의 위치를 보다 접근이 쉬운 위치로 조정하기로 했다. 지난 2일 사고 당시 비명을 들은 동료 작업자가 비상 정지 버튼을 누르면서 더 큰 피해를 막았다. 무인 공정이라는 설명과는 재차 배치된다.
공장 설비 전문가들 사이에선 농심의 이번 안전조치 안이 부실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같은 공장 같은 설비에서 끼임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도 못한 채 덮개 설치라는 ‘미봉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한 제조 공장 설비안전 담당자는 “직원이 해당 작업 공간에 왜 이동해야 했는지부터 규명한 이후에 그에 맞는 조치를 내는 게 일반적인 절차”라면서 “이대로라면 일부 작업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공정 전반의 문제 해결이 자칫 가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농심의 안전조치 계획서를 받아 타당성·효용성 등을 입증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당초 고용노동부는 농심으로 추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인터록 설치를 명령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농심의 이번 안전조치 안에 인터록 설치는 제외된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농심의 안전조치 계획서를 받는 대로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 계획서를 보내 추가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을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추가 현장 실사 및 개선 결과 보고도 추가로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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