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단의 아프리카 출신 흑인 작가… 세상의 오해 · 편견을 응시하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 윤진 옮김 │ 엘리
추앙받다 표절논란에 사라진
실제 말리 출신 얌보 모델로
또다른 흑인 작가가 삶 추적
인물 행적 좇는 추리형식으로
실존적 고민 · 문학계 비판 담아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성찰도
천재로 추앙받던 젊은 흑인 작가가 표절 논쟁에 휘말린다. 세네갈에서 파리로 유학 왔다가 1938년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라는 단 한 권의 저서를 낸 T C 엘리만. 문단은 한때 그를 ‘흑인 랭보’라 불렀다. “아프리카 흑인의 걸작”이라고 칭송하더니, 급격하게 돌아선다. 공격은 처참했고, 책은 회수되고, 출판사는 문을 닫는다. 작가는 고집스럽게 침묵하다 서서히 기억에서 사라진다.
소설은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2018년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엘리만처럼 세네갈 출신에 젊은, 그래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문학의 유망주’라는, 시혜적이며 동시에 악의적인 수식어가 달린 작가 디에간 라티르 파이다. 엘리만의 책에 매료된 디에간은 수수께끼 같은 그의 삶을 추적한다. 그러면서 문학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두 가지 미리 밝힌다. 그래야 추리 형식을 띠면서, 전기적 요소를 품었고, 허구와 실제, 기억과 환상을 넘나드는 소설을 기분 좋은 속도로 따라갈 수 있다.
엘리만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다. 1968년 ‘폭력의 의무’로 르노도상을 수상했으나 표절 시비 후 사라진 말리 작가 얌보 우울로구엠이다. 어떤 대응도 하지 않던 얌보는 1970년 말 조용히 말리로 돌아가 2017년 사망했다. 또 하나는, 이 소설을 쓴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작가에 관한 것. 그는 31세의 나이로 지난해 공쿠르상을 받았다. 100년 만의 흑인 작가 수상. 엘리만, 디에간, 얌보, 사르의 관계는 금세 발각되고(엘리만=얌보, 디에간=사르), 공통점은 명확하다. 프랑스 문단에 입성한, 혹은 그랬다 외면당한 아프리카 작가들이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작가는 그 단위를 ‘책’이라 표기했다. ‘첫 번째 책’은 디에간이 엘리만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그의 책을 손에 넣게 되는 이야기다. ‘두 번째 책’은 본격적으로 엘리만의 행적을 좇는다. 그가 파리에 정착해 책을 출간하고, 표절 논란을 겪고 사라질 때까지를 다루며, 편집자 등의 증언을 듣는다. ‘세 번째 책’은 엘리만을 찾는 여정을 마무리하려는 디에간이 그의 고향을 찾아간 후 겪는 일이다.
소설은 엘리만의 비밀이 하나씩 풀리며 전개되는데, 그러면서 디에간을 통해 프랑스 문학계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작가들에 대한 비판, 독자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종종 아프리카에 대한 몰이해를 범하는 유럽과 영미권 비평가들까지. 특히, ‘첫 번째 책’은 거의 절반을 이에 할애하는데, 압권은 디에간이 파리의 동료 흑인 작가들과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들은 애매모호한 정체성으로 유럽에서 활동해 온 선배 ‘아프리카 작가’들의 책에 모조리 ‘0’ 점을 매긴다. 또한, 그 공범으로 아프리카 독자들과 서구의 독자들을 소환하고, 나아가 세상 가장 지루한 비평을 일삼는 학계, 언론계, 문화계의 지식인들까지 단두대에 올린다. 보수적으로 유명한 공쿠르상이 100년 만에 흑인 수상자를 내며, 이렇게 강도 높게 프랑스 문단을 비난한 작품을 뽑은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사르는 공쿠르상 수상 당시 이렇게 말했다. “나를 침묵시키려는 건지, 지지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디에간은 엘리만의 표절을 조사하다가, 그것에 인종차별적 견해가 크게 작동했음을 감지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엘리만은 고국에선 “지배자들의 언어를 받아들인” 배신자였고, 그것은 당시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하려는 아프리카 작가 대부분이 겪은 실존적 고민이었다.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문학인지 사회인지,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딜레마.
지나간 세대와 문단을 향해 가열하게 퍼붓던 디에간과 작가들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치열한 논쟁의 끝은 언제나 성찰이고, 이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들은 스스로 “막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자기들에게는 모든 게 허락되었다고 믿는 젊은 바보들”이라며, “우리가 뭐라고, 그들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도 없었을 텐데 어쩌자고 이리도 가혹하고 완강하고 가차 없는 비판을 쏟아냈단 말인가?”하고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작가들이 문학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디에간은 페이스북 책 출간 소식에 1000명이 넘게 ‘좋아요’를 눌러도 겨우 79부밖에 팔리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문학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처럼 굴어야 하는 게 자신들의 삶이고, 작가들이야말로 세상의 증인이라고, 문학이 무용하다는 이들에게 한 번 더 목소리를 낸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구성을 의도적으로 모방한 책은 자연스럽게 환상성을 품는다. 엘리만이 미래의 디에간에게 보내온 편지가 그렇다. 엘리만은 편지에서 자신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디에간에게 “전부 너에게 달려 있다”고 한다.
사르는 “이 책은 무한한 질문들의 책이다”고 했다. 정말로 소설은 인종차별과 문학, 작가들의 삶을 관통하는 정치적 문제,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욕망까지 다루고, 조금씩 그것에 답하고 있으나, 소설 속 디에간의 앞에는 숙명처럼 딱 하나의 선택만 남았다. ‘쓰기’와 ‘쓰지 않기’. 그 선택의 결과, 우리는 또 한 권을 책을 이렇게 만났다. 언젠가 모두가 떠나도 남을, 홀로 무한의 여정을 떠날, 사라지지 않고 흔적을 남길. 552쪽, 1만8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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