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산티아고로 가지 않고 반대로 걷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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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구원을 위해, 깨달음을 위해, 혹은 그저 걷기 위해 매년 약 18만 명이 찾는 곳이다.
27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사진)은 '그'를 지켜보는 오호츠크 해상의 기후탐사선 속 기후연구원 'AA'(배우 이은정)와 'BB'(배우 정슬기)의 대화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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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팬데믹 등 인류의 고민 담아
50번 암전은‘깜박이는 세상’
산티아고 순례길. 구원을 위해, 깨달음을 위해, 혹은 그저 걷기 위해 매년 약 18만 명이 찾는 곳이다. 동쪽에서 서쪽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향해 걷는 사람들과 달리, 홀로 동쪽 시베리아 끝으로 가는 순례자가 있다. 그는 누구이고 왜 반대로 걷는가.
27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사진)은 ‘그’를 지켜보는 오호츠크 해상의 기후탐사선 속 기후연구원 ‘AA’(배우 이은정)와 ‘BB’(배우 정슬기)의 대화로 이뤄진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젊은 연극상을 받은 작가이자 연출가 정진새의 신작이다.
배경은 2020년 그 이후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온라인으로 구현한 관광 상품이 유행하는 때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산티아고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향하는 한 캐릭터가 나타나고, AA와 BB는 그가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도 똑같이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유명해지고 온라인 속 무려 700만 명이 그의 길을 따른다. AA와 BB는 “그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왜 다른 사람들이랑 반대로 걷고 있는 거지?”라고 묻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둘은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으며 사소하면서도 실존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극은 매끄럽지 않다.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뒤섞여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실재의 기반이 무너지는 기후위기, 기존의 믿음이 흔들리는 세계 등. 정 연출은 “의도적으로, 아주 흩트려 놨다”며 “명료하고 잘 맞물리는 서사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완성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극은 대표적인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닮았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과 허무를 그렸다면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과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인류의 고민을 담았다.
이 연극에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암전이 50회 이상 이뤄진다. 공연이 90분간 이어지니 약 1분 50초에 한 번씩 깜깜해지는 셈이다. 정 연출은 “깜박이는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팬데믹 시절에 대한 연극적 기록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지난 3년 동안 저마다의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질문 이후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패턴 말고 그 이후, 지금까지 해왔던 연극 말고 그 이후, 그동안 해왔던 질문 그 이후의 질문에 대해서요.”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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