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레인저가떴다] 갈라지고 부서지고…한탄강 따라 50만년 시간여행
웅장·단아 '재인 폭포', 은밀·고요 '비둘기낭 폭포'…역동의 '주상절리 잔도길'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우리나라 강은 대부분 폭이 넓고, 장마철에 물이 넘칠 만큼 주변 지형과 높낮이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한탄강은 다르다. 좁고 깊게 파인 협곡에서 강물이 빠르게 흘러간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힘차게 흘러가는 여울이 많다. 한탄강(漢灘江)이란 이름은 '큰 여울이 많은 강' 이란 뜻이다.
한탄강은 북한에서 발원하여 철원~포천을 거쳐 연천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50만 년에서 12만 년 전 사이에 인근에서 화산이 폭발해, 이때 흘러들어온 용암이 식어서 현무암이 되었고, 물과 얼음이 오랜 세월 현무암의 틈을 벌리고 깎아내 오늘의 깊은 협곡이 되었다. 용암이 식어 바위가 될 때 바위가 오그라들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는 것이 주상절리(柱狀節理)다. 오랜 세월이 지나 각 절리의 틈이 벌어져 바위가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가 폭포와 강, 절벽이 되었고, 그런 현상은 한탄강 곳곳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탄강 일원에는 이런 화산지형과 더불어 수억 년에 걸쳐 변화해 온 암석과 지질경관이 곳곳에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의 오랜 삶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런 역사적인 지형과 독특한 경관을 보호하고,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지질공원이다. 한탄강은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한탄강 일원에는 각 지질 명소를 연결하는 지오트레일이 있고, 지질 명소와 주변의 볼거리를 잇는 다양한 탐방코스와 교육·관광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한탄강세계지질공원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연천 한탄강…재인폭포, 좌상바위, 차탄천 주상절리 "갈라지고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 억겁 세월의 흔적"
연천 한탄강의 제1 명소는 재인폭포다. ‘재인(才人)’은 이곳에서 줄을 탔다는 전설 속의 광대 이름이다. 커다란 웅덩이로 곧게 쏟아져 내리는 20m 높이의 폭포는 수량이 많을 때는 웅장하고, 적을 때는 단아해서 언제나 볼만하다. 약 50만 년 전에는 한탄강으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였으나 현재는 강과 380m 떨어져 있다. 폭포가 절벽을 매년 0.76㎜씩 깎아서 뒤로 물러난 것이다. 폭포는 살아서 움직인다. 물웅덩이 둘레의 절벽도 살아있다. 바위가 갈라지고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생생하다. 자세히 보면 세로로 주름이 생겨 갈라지고 있는 주상절리가 많다.
전망대와 출렁다리에서 폭포를 내려다보고, 계단으로 10분쯤 내려가서 폭포를 가까이 올려다 볼 수도 있다. 폭포 위쪽으로 토토봉(411m)이나 성산(520m)을 다녀오는 2~3시간의 여러 등산코스도 있다. 인근에 백의리층(암석화되지 않은 퇴적층), 좌상바위 등의 지질명소가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고, 한탄강댐 물문화관과 지질공원 홍보관에서 이 지역의 지질과 문화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수도 있다. 전곡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와 한탄강관광지도 유명하다.
◇ 포천 한탄강…비둘기낭 폭포, 화적연, 멍우리협곡 "물의 힘이 깎아낸 아름다운 조각품들"
포천 한탄강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비둘기낭 폭포와 하늘다리다. 비둘기낭 폭포는 하천이 바위를 깎아내서 만든 높이 16.7m의 폭포로, 깊고 넓게 파인 물웅덩이 주변으로 다양한 현무암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비둘기낭이란 비둘기 둥지란 뜻으로, 폭포 안쪽의 작은 동굴에 비둘기들이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소란스럽지만, 조용히 떨어지는 폭포와 잔잔한 물웅덩이의 옥색 물빛 풍경은 은밀하고 고요하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여기서 선덕여왕, 킹덤 등의 많은 드라마를 촬영했다.
비둘기낭 폭포에서 15분쯤 거리에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하늘다리가 있다. 높이 50m, 길이 200m에 달하는 구름다리에서 내려다보는 강물이 거침없이 시원하게 흘러간다. 바라보는 누구나 자기 인생도 그렇게 막힘이 없었으면 하고 소망할 강물이다. 다리의 발판 일부는 유리바닥으로 되어 있어 짜릿한 고도감을 느낄 수 있다. 너무 아찔해서 이 위를 지나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비둘기낭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지오버스 투어링을 이용하면(요금 3천원, 90분 소요), 이곳에서 좀 떨어진 화적연과 멍우리협곡을 다녀올 수 있다. 화적연은 강물이 휘돌아나가는 넓은 수면(淵)에 화강암 바위가 볏단(禾積) 모양으로 솟아 있는 풍경이다. 멍우리협곡은 강물이 깊게 깎아내린 양쪽의 절벽 풍경이 그랜드캐년 같다는 곳으로, ‘멍우리’는 협곡이 험해 넘어지면 멍이 든다는 뜻이다. 동반한 해설사가 포천의 이동갈비와 이동막걸리 홍보를 곁들인다. 말만 들었는데 침이 고인다.
비둘기낭 폭포 인근의 ‘한탄강 지질공원센터’에 다양한 전시시설이 있는데, 지질은 내용이 좀 어려워 그곳의 해설사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게 좋다. 포천의 한탄강 유역에는 대교천 현무암 협곡, 아트밸리와 포천석,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같은 지질명소가 있고, 인근에 산정호수와 평강랜드 식물원이 있다.
◇ 철원 한탄강…주상절리 잔도길, 고석정, 용암대지 "깎아지른 벼랑과 힘찬 여울이 어우러진 협곡. 뜨거운 용암이 밀려와 덮어버린 평야에 황금빛 벼 물결"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는 요즘의 핫플레이스다. 깎아지른 절벽에 붙인 폭 1.5m, 길이 3.6km의 잔도(棧道)를 걷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우측통행을 하기 때문에 한탄강 쪽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상류(순담)에서 하류(드르니)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잔도는 대체로 수평으로 가면서 짧은 계단과 교량이 자주 나온다. 중간의 쉼터에서 두세 번 쉬고 뷰 포인트마다 사진을 찍더라도 두 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이 벼랑길에는 50만 년 전에 생긴 현무암과 1억 년 전에 생긴 화강암이 섞여 있어 다양한 형태의 암석과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잔도가 설치된 절벽 쪽으로 그런 지형을 가까이 구경하고, 멀리 반대편 절벽과 저 아래 강물을 내려다보며 협곡의 다이내믹한 풍경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아찔할 것이다. 요즘의 주말에는 풍경보다 사람 구경이다. 물밀듯이 몰려오는 사람들을 피해가고, 밀려가느라 수백만 년의 신비가 새겨진 절벽을 공부할 여유가 없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만원이다. 엄청 비싸다. 그러나 5000원을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주어서 철원에서는 현금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지역경제에 큰 활력을 준다고 택시 기사가 말한다. 주말에는 잔도의 입구와 출구의 주차장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예약제를 해서 호젓한 분위기를 만들고, 주요 지질을 설명하는 해설판을 설치한다면 더욱 가성비가 높을 것이다.
철원의 한탄강 일원에는 직탕폭포, 고석정, 삼부연폭포 등의 지질명소가 있다. 그 중에서 소이산(362m)에서 바라보는 용암대지(臺地/넓고 평편한 땅)가 특별하다. 강원도 답게 높은 산과 야산이 많은 철원이지만, 소이산 밑에는 평편한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용암이 흘러들어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낮은 곳을 메꾸어 생긴 땅이다. 용암의 두께가 20~30m라고 하니, 그것을 걷어내면 이탈리아의 폼페이와 같은 고대 도시가 발굴되지 않을지 상상해본다. 용암으로 덮이지 않아 섬처럼 남아있는 동산 중에는 귀에 익은 백마고지와 아이스크림 고지가 있다. 그 너머에 북한의 산들이 보인다.
원재길의 장편소설 '궁예이야기'에서 철원평야를 이렇게 표현했다. "넓고 반듯한 평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실개천이 곳곳에서 꼬불꼬불 흐른다. 가뭄이 들지 않고 물난리가 없는 곳이다. 흙이 워낙 기름져서 어떤 곡식이든지 잘 자란다."(필자 편집)
철원은 궁예의 고장이다. 신철원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어떤 산꾼이 명성산(923m)의 억새축제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가장 믿었던 심복인 왕건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한 궁예가 억새산에서 통곡할 때 억새들도 크게 우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울음산, 명성산(鳴聲山)으로 부른다.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거기서 철원평야와 한탄강을 내려다보고 크게 한탄했을 1100년 전의 궁예를 그려본다. 기자는 한탄강의 발원지가 DMZ로 막혀 있음을 한탄하며 한탄강을 떠난다.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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