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book적]진보의 시대는 끝났다…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
자연, 약탈 대상서 생명의 원천으로
새 서사 동력은 디지털 3차 산업혁명
거대플랫폼 대신 로컬 데이터 부각
분산형 네트워크가 경제 민주화 실현
대의민주주의도 시민참여형 정치로
“진보의 시대에서 회복력의 시대로, 역사의 중심축이 이동한다.”
우리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학자이자 경제·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그동안 산업 발전을 추동해온 진보의 시대, 즉 효율성의 시대가 끝나고 회복력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전망한다.
리프킨은 세계 동시 출간한 새 저서 ‘회복력 시대’(민음사)에서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가 대멸종을 부르고 있는 이 때,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문명의 서사로 회복력의 시대를 제시한다. 원래 속해있었으나 약탈의 대상이 됐던 자연계 안에서 인류가 제자리를 찾는 새로운 여정이다.
회복력 시대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바뀐다. 진보의 시대가 효율성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회복력의 시대에는 적응성이 척도가 된다.
리프킨에 따르면 효율성과 회복력은 상충한다. 효율성이 높을수록 회복력은 떨어진다. 대량생산과 분업체계로 대표되는 산업자본주의의 효율성은 세계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반도체 부족 등 공급망과 물류, 완충재고의 붕괴로 확인된 바 있다. 자본주의 운영의 핵심으로 신봉된 효율성이라는 아킬레스건이 무너지는 걸 세계가 목도한 것이다.
리프킨은 1,2차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효율성 서사가 진행돼온 과정을 살피는데, 테일러주의의 효율성이 가정과 사회, 교육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 들려준다. 또한 20세기 초반의 효율성 서사가 공정, 성평등 및 인종 평등, 도덕 등의 근본적 문제를 회피하는 편리한 도구로 사용된 점도 지적한다.
1,2차 산업화 시대의 효율성과 개발 신화가 지구에 미친 파괴적 영향은 수치로 확인된다. 전 세계 표토의 3분이 1이 황폐해져 지구상의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표토가 60년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표토 1인치를 다시 채우는데 500년이 넘게 걸린다. 기후변화는 80년 안에 기존 모든 종의 절반을 사라지게 하고 지구의 산소는 지난 20억 년 중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100년 전, 지구 표면의 약 85퍼센트는 여전히 야생지역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인간에 의해 변형이 이뤄지지 않은 육지가 25퍼센트 미만이다. 이마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사라진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나고 35억년 만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리프킨은 화석연료에 기초한 파괴적인 산업활동들의 탄소발자국도 따라가는데, 단적인 예로 글로벌 패션산업을 지목한다. 해마다 9200만 톤의 폐기물을 만들내고 3분1 이상의 팔리지 않는 재고로 지구에 배출되는 모든 혼합 폐기물의 22퍼센트를 차지하며 제조 공정에서 2500 여가지의 화학물질을 쓰고, 연간 44조 리터 규모의 물을 사용하고 있다.
리프킨은 인류 문명의 큰 변화를 인프라 혁명에서 찾는데, 에너지와 동력, 운송 물류 방식,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가 근본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데이터, 알고리즘 등 디지털 3차 산업혁명은 회복력 시대의 새로운 서사와 맞물린다.
앞선 1,2차 산업혁명과 대조적으로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중앙 집중형보다는 분산형으로 설계, 네트워크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모든 참가자가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또한 1,2차 산업혁명 인프라가 제로섬 게임에서 다수보다 소수에게 더 많이 보상하도록 설계된 반면,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경제력을 더 폭넓게 분배해 경제생활의 민주화를 추진한다.
물론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지배적인 글로벌 플랫폼이 글로벌 독과점으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우세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리프킨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데이터 수집과 저장, 알고리즘 관리가 기존 거대 글로벌 기업에서 지구 곳곳에 분산된 첨단기술 중소기업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소규모 에지 데이터 센터가 사물인터넷 인프라를 따라 등장해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다수의 플랫폼과 공유하고 있다.
거대 플랫폼 클라우드의 지연성 때문에 로컬 데이터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충돌하려는 순간, 거대 플랫폼 클라우드를 이용할 경우 최신 데이터를 보내고 지상에서 다시 지시를 받는 경우 응답시간이 너무 느려 충돌을 피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리프킨은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가정과 사무실, 지역 기업, 이웃, 지역사회 환경에 저렴한 에지 데이터 센터 수백만 개가 설치돼 현장에서 데이터의 수집과 저장을 수평화하고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분석과 알고리즘 거버넌스를 실시간으로 이용하게 될 것으로 본다.
리프킨은 미국의 회복력 3.0 인프라 혁신(2020~2040) 계획을 상세히 소개하는데, 전기와 수도 등 국가 인프라의 모든 측면에서 집중화된 형태에서 분산형으로 전환, 유사시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맞춰져 있다.
리프킨의 통찰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의민주주의의 시효 만료이다. 소수의 정치 집단을 투표로 선출하는 것을 넘어 시민이 직접적인 활동가로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다.
리프킨은 진보의 시대라는 지난 250년 간의 무용담은 역사 속으로 물러나게 될 것이라며, 현재 우리는 뗘오르는 회복력 시대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탐색하는 방식 면에서 개방형 시간적, 공간적 방향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회복력 시대/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민음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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