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읽는 신간]음습한 흉가에 무슨 일? ‘곽재식의 유령~외

2022. 11. 4. 08: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곽재식 지음, 김영사)=납량 특집으로 각종 매체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 중 하나가 폐가나 흉가 체험이다. 이를 경험한 이들은 악명 높은 흉가일수록 음침하며 습한 기운이 돈다는데, 그곳에 들어갔다가 무엇엔가 공격을 받아 이후 앓아 누웠다가 굿을 했다는 이들도 있다. 일부 주장대로 이들은 과연 악귀에 씌인 걸까? 공학박사이자 SF소설가인 곽재식은 오싹한 미스터리, K괴담의 진실을 유쾌하게 밝혀낸다. 귀신부터 심령사진, 악령 들린 인형, 점성술, 저승사자까지 초자연적 괴담의 허점을 치밀하게 파고들며, 우리의 두려움의 정체를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음습한 흉가의 마귀의 정체는 말라리아나 일본 뇌염을 일으키는 모기일 가능성이 크다. 악령이나 유령의 소리를 듣거나 보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파레이돌리아 현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즉 우연한 모양이나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의 노래에서 ‘피가 모자라’라는 악마의 소리가 들린다는 헛소문 같은 것이다. 심령사진도 상당수가 바로 이런 의미 없는 형상이 사람 형체와 비슷하게 보이는 파레이돌리아의 결과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악령 들린 인형의 공포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적지 않은데 저자는 이 역시 예로부터 사람을 닮은 물체를 종교적·마법적인 대상을 여기는 풍속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본다. 책은 호밀의 곰팡이에 의한 맥각병이 일으킨 16세기 유럽의 무도광 현상 등 역사적인 미스터리도 과학의 눈으로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경청(김혜진 지음, 민음사)=프랑스의 세계적인 출판사 갈리마르를 비롯, 전 세계 16개국 언어로 번역된 소설 ‘딸에 대하여’의 작가 김혜진의 신작 장편소설. 타인을 향한 이해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온 저자는 이번 작품에선 좀 다른 결의 소통의 방식을 보여준다. 소설의 화자 임해수는 30대 후반의 심리 상담 전문가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 신뢰받는 상담사에서 경멸의 대상, 공공의 적이 된다. 그리고 퇴사 통보, 이별 등으로 이어지며 일과 삶으로부터 추방 당한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임해수는 매일 밤 편지를 쓴다. 자신에게 반성과 사과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향해 쓰는 글이다. 사과와 항의, 후회와 변명을 오가며 혼란스런 심경을 담아낸 글은 완성되지 못하고 폐기되길 반복한다. 편지 쓰기 외에 하는 일이라곤 산책하는 게 전부인 해수의 시선에 어느 날 길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다. 어딘가 아픈 고양이 주변을 서성이던 해수는 고양이가 살아온 나날에 대해 알려주는 아이를 만난다. 자기 혐오와 옹호의 무한 반복에 빠졌던 해수는 조금씩 마음을 터놓게 되고 마침내 고양이 구조에 나선다. 소설은 비난을 받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해 그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담히 그려낸다. 용서받지 못한 가해자, 가혹한 누명을 쓴 피해자, 역경에 굴복한 패배자 등 판단을 유보하고 그를 바라볼 뿐이다. 작가는 잘못한 사람의 잘못과 책임져야 할 몫과 감당해야 할 고통에 대해 묻는다. 반성과 사과, 뉘우침의 적정량은 얼마일까?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김영민 지음,사회평론)=“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중국정치사상 연구가로 잘 알려진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영혼의 피 냄새 같은” 인생의 허무를 직시하며 사유한 에세이를 펴냈다. 그의 허무의 사유 여정은 송나라 문인 소식의 '적벽부'에서 시작된다. 소식은 '기제조경순장춘오'에서, 북송 시절 관리를 역임했던 조경순을 조명한다. 조경순은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장춘오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자라날 후학을 기약하며 ‘소나무 잔뜩 심고, 드높이 자라 서릿바람에 휘날리는 모습 보고자’ 했다. 그러나 조경순은 그런 후학을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화려한 봄을 보려 한 게 아니었다. ‘조물주 영역 밖으로 세월을 던져두니, 봄은 선생의 지팡이와 신발 가운데 있었네’라고 노래한다.“조경순이 봄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 경직된 마음을 버리고 유유하게 산책을 즐겼기 때문”이라는 풀이다.저자는 인생의 짧은 봄과 느닷없는 허무의 날카로움에 찔린 순간을 포착한 단테의 ‘신곡’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작품과 17세기 네덜란드 그림 ‘호모 불라’(인간은 거품이다)등 다양한 그림들, 영화 등을 넘나들면서 앞선 이들의 고민과 사유를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해 자신만의 해석과 또 다른 사유를 풀어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lp.com

meel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