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누적 탄소배출량 세계 17위…더는 “억울하다” 못한다

남종영 2022. 11. 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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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름엘셰이크 현장][COP27] 지구의 미래를 위한 시간
최근 2년 배출량 늘고, 2030 재생에너지는 축소
당사국총회 앞두고 세계 기후환경단체들 벼른다
지난 9월24일 그린피스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400여개 단체로 구성된 ‘9월기후정의행동’이 주최한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번 행사는 2019년 이후 3년 만에 진행되는 대규모 기후변화 관련 행사다. 연합뉴스

미세먼지를 한국에서 배출하면, 한국만 피해를 본다. 하지만 온실가스는 그렇지 않다. 한국이 적게 배출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많이 배출하면, 전 지구 배출량에 따라 세계 시민들은 피해를 균등히 입는다. 지구 대기 중 높아진 온실가스 농도가 지구 시스템을 무작위로 교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국제기후정치에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적용된다. 서로 협력하여 선택하면 풀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이기적인 선택을 하여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각국이 모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고 합의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체결된 1992년 356ppm이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30년이 지난 2022년 417ppm까지 치솟았다. 국제기후정치는 거듭 실패했다.

한국도 ‘눈치 보는 죄수’였다. 당사국간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 협정으로서는 최초인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한국은 선진국으로 구성된 ‘부속서1’ 국가에서 빠져 감축 의무를 부여받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경제 성장과 함께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가 됐다. 27일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1990년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5천만톤으로 세계 29위였으나, 2020년에는 5억9800만톤으로 9위로 뛰어올랐다. 영국과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등 네 나라 배출량을 합한 것과 맞먹는다. 그린피스는 “이 기간 네 나라는 1990년 대비 평균 38%의 온실가스를 줄인 반면 한국은 온실가스를 오히려 139% 늘렸다”고 설명했다.

물론 억울한 점이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 같은 선진국이야말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 지구를 망쳐 온 주범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뒤늦게 산업화에 나서 이제야 본궤도에 올랐다. 기후변화협약상의 선진국은 현재의 경제개발 수준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값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산업혁명 때부터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한국 내세워 온 논리였다.

하지만 이런 소명은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한국의 역사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서구 선진국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자료를 보면, 한국의 1800년대 이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세계 17위다. 한국보다 인구가 비슷한 스페인(18위)을 이미 넘어섰고,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보다 앞서 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대비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한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지금의 시대를 ‘신기후체제’라고 한다. 이때부터는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회원국 모두가 자발적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량(NDC)을 설정하고 2년 주기로 이행 경과를 보고하기로 한 것이다. 개발도상국에 온실가스를 감축하라고 압력을 넣었던 선진국과 여기에 역사적 책임을 들며 저항한 개발도상국이 맺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내년부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5년마다 온실가스 감축 등에 대한 전 지구적 차원의 이행 점검(GST)을 실시한다. 나라마다 자기가 낸 숙제를 검사받는 셈인데, 숙제를 안 했다고 불이익을 받는 조항은 없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박지혜 연구원은 “이것이 국가들에 얼마나 압력으로 작용할지는 11월 6일부터 이집트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총회에서 한국은 선진국에 준하는 노력을 하겠다는 점을 밝힐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충실히 이행하고, 경제 규모에 걸맞게 개도국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힐 방침”이라고 했다.

앞서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2030년 원전 비중을 32.8%로 대폭 확대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8%가량 낮추는 등 후퇴했다. 온실가스 다배출국가에 걸맞은 행동을 한국이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세계 기후환경단체는 이번 당사국총회를 벼르고 있다.

그린피스는 “2018년 이후 2년간 줄었던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시 늘고 있다.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받는 현재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량조차 지켜질 가능성이 작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2030년과 2050년 시점의 목표 배출량보다 (2050년까지의) 누적 총배출량 관리가 더 중요한데, 이에 대한 계획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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