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의 제넥신 인수...'독이 든 성배'였나
1999년 설립된 제넥신…상용화된 신약없어
신약개발 대신 바이오벤처 투자에 열중했지만
‘빅딜’로 여겨지던 툴젠 투자도 지금은 ‘물음표’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제넥신(095700)이 또 한번 유상증자라는 카드를 뽑아들었다. 제넥신 주주들은 1000억원 규모의 유증 탓에 주가 상승의 호재로 여겨질 수 있는 무상증자의 의미도 퇴색돼 버렸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주목받을 만한 기술이전 성과나 상용화된 신약 없이 2년마다 수백억~수천억원 규모로 이뤄지는 제넥신의 유증에 제넥신을 인수한 한독(002390)(옛 한독약품)의 부담도 가중되는 형국이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제넥신은 이사회에서 1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회사측은 유증 목적에 대해 “자궁경부암 치료백신인 ‘GX-188E’의 국내 임상 3상 비용 충당 및 항암 면역치료제 ‘GX-I7’의 상업화를 위한 시험생산(PPQ) 투자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대주주인 한독도 이번 유상증자에 113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같은 날 930만주 규모의 무증 결정도 함께 공시됐지만 제넥신 주주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제까지 해 온 유증 규모에 비해 무증 규모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비판이 거세다. 제넥신 주식을 보유 중이라고 밝힌 한 주주는 “이전부터 주가상승에 영향이 있을 시기에 무증을 하겠다고 해서 기대해왔는데 (회사가) 호언장담하던 바에 비하면 금액과 수량이 너무 적고 (무증을) 유증과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주주를 농락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보통 주가상승 시그널로 여겨지는 무증 공시 이후에도 제넥신 주가는 2만6750원(9월20일 종가 기준)에서 2만2400원(11월2일 종가 기준)으로 16% 이상 하락했다.
제넥신의 유상증자는 2년에 한 번 꼴로 이뤄지고 있다. 앞서 지난 2018년과 2020년 12월에도 제넥신은 각각 2500억원, 58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회사는 전환사채(CB)도 함께 발행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리 인상으로 회사채, CB와 같은 메자닌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유상증자에만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012년 한독은 제3자 유증 163억원과 전환사채 167억원을 인수하는 등 총 330억원을 들여 제넥신의 지분 30%를 인수했다. 한독이 제넥신 인수 초기 제넥신에 대한 지분투자는 한독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인수 10년이 지난 현재 한독의 제넥신 인수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번에 제넥신 유증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한독은 외부 자금조달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반기말 727억원이었던 한독의 현금성자산은 지난 6월 기준 34억원으로 줄어든 상태다. 한때 3조원에 육박했던 제넥신의 몸값은 현재 56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설립 24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상용화한 약물 하나 없는 신약개발사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제넥신은 약 19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1999년 제넥신은 신약연구개발 기업으로 설립, 보유 중인 파이프라인만 공동 임상을 포함해 26개에 달한다. 26개 파이프라인 중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것도 지속형 빈혈치료제 후보물질 ‘GX-E4’와 성장호르몬 ‘GX-H9’ 두 개뿐이다. 특히 제넥신의 주력 파이프라인이자 2012년 한독이 기술이전해 양사가 10년간 공동개발한 GX-H9는 2020년 임상 2상이 끝난 뒤 지지부진하다 지난 6월에서야 중국에서 임상 3상 환자모집을 마쳤다.
신약개발 진행 상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제넥신은 바이오벤처 투자에 열을 올렸다. 대표적인 것이 유전자교정 전문기업 툴젠(199800)이다. 애초 제넥신은 툴젠을 흡수합병하기를 원했지만 양사 합병 공시 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4500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가 쏟아지자 합병이 무산됐다. 이후 약 1년이 지난 뒤 주가가 다시 상승세에 오르자 현금 210억원과 발행주식 1.8% 규모의 신주 발행만으로 툴젠의 최대 주주 지위에 올라섰다.
2020년 제넥신이 툴젠의 최대 주주가 되자 증권가에서는 바이오의약품 기술보유 업체 사이의 ‘빅딜’이라며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합병 후 2년이 지난 지금 양사는 난관에 놓였다. 바이오벤처 투자에 앞장서 온 창립자 성영철 회장은 지난 3월 사내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으며 제넥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최근 제넥신 주주들 사이에서는 툴젠 투자에 대해서도 ‘당시 너무 고평가돼 있었다’는 불만까지 터져 나온다. 툴젠은 유전자가위 원천기술 보유기업이라는 브랜드 외 지금까지도 임상에 진입한 파이프라인이 없는 상태다. 여기에 최근 미국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PTAB)이 경쟁사의 항소 제기로 유전자가위 선발명자를 가리기 위한 저촉심사를 일시중단하면서 내년으로 기대하던 특허수익료 수취 시점도 2년 이상 기약없이 미뤄진 상태다.
나은경 (ee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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