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상장 바이오]②투자자도, 기업도 '우왕좌왕'
업계, 어중간한 '유예기간'이 산업 성장 방해
"개인에 리스크 전가" 지적도…제도 개선돼야
특례상장 제도는 수익성은 부족하지만 기술성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의 상장 문턱을 낮춘 제도다. 제도 도입 후 17년간 수많은 바이오 기업이 기술평가특례나 성장성 추천 제도를 기업공개(IPO)의 주요 통로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만한 신약 개발 성과를 낸 바이오 기업은 없다. 투자자 보호와 신사업 육성 측면에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례상장 제도의 성과와 문제점, 개선 방향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바이오 업체들이 특례상장을 통해 입성하는 코스닥 시장은 '육성'과 '규제'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자금 조달 창구를 제공해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개인 투자자를 위한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수익성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을 갖춘 기업의 상장을 돕겠다는 취지로 생긴 특례상장 제도가 기업 육성과 투자자 보호를 모두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①투자자 보호 측면
특례상장 제도는 현재의 수익보다는 성장 가능성에 방점을 둔 제도다. 특히 바이오 업종은 신약 개발에 오랜 기간과 비용이 드는 만큼 당장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코스닥 시장은 개인 투자자 거래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더욱 관리가 필요하다. 현재 코스닥 시장의 개인 투자자 거래 비중은 86%에 달한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건 공모가의 적정성 여부다. 기술평가특례나 성장성 추천 제도로 상장한 기업(기술성장 기업)은 미래 실적을 예상해 희망공모가를 산정한다. 과거 실적만으로는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추정이익(미래 당기순이익)은 해당 기업의 기술력과 산업 전망, 과거 재무 성과 등을 종합적을 고려해 결정한다.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미래추정이익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이 중 바이오 업종의 경우 혁신 기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워 다른 업종보다 공모가 산정 리스크가 크다. 공시줍줍팀이 기술성장 바이오 기업 62개사 중 미래추정이익과 현재 해당 추정실적을 비교 가능한 27개사를 추린 결과, 미래추정이익을 달성한 기업은 디엔에이링크와 인트론바이오 2곳에 불과했다. ▷관련 기사: [공시줍줍]기술성장제도, 제약·바이오의 무덤?(8월 30일)
특례상장 기술평가모델에 허점이 있어 미래추정이익과 현재 실적 간 괴리가 크게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실제 바이오 업계에선 "같은 기술이라도 평가기관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라며 "상용화되지 않은 바이오 기술들을 24개의 국내 기관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일부 바이오 기업이 미래추정이익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문제는 기술평가나 공모가 산정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을 때 최대 피해자는 개인 투자자라는 점이다. 올해 특례상장 제도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 중 공모가 대비 주가가 오른 곳은 샤페론이 유일하다. 지난해 특례상장 제도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 중엔 공모가보다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또 기술성장 바이오 기업 중 디엑스앤브이엑스(전 캔서롭), 큐리언트, 신라젠 등이 거래정지 종목으로 지정된 바 있다.
②바이오 산업 육성 측면
정작 바이오 업계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가 오히려 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기술성장 기업은 일정 기간 관리종목 지정이 유예된다. 이들 기업은 △상장 연도 포함* 5년 매출 요건 미적용 △상장 연도 포함 3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 요건 미적용 △영업손실 요건 면제 등의 혜택을 받는다. 바이오 기업은 한층 관대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유예 기간이 지난 뒤에도 ①최근 3년 매출 총합이 90억원 이상이면서 직전 연도 매출이 30억원 이상 ②연구개발·시장평가 우수기업이면 매출 요건이 면제된다.
*특례상장 기업 관리종목 지정 유예 조건: 상장일로부터 상장일이 속한 사업연도의 말일까지 기간이 3개월 미만이면 그다음 사업연도부터 계산
그러나 바이오 기업들은 유예 기간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1조~2조원이다.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제약사(빅파마) 역시 10년 이상이 필요하다.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가 3~5년 내로 실질적인 매출을 내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특례상장 제도의 상장 유지 조건 탓에 본업과 무관한 사업을 영위하는 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특례상장 유예 기간 만료에 다다른 다수의 바이오 기업이 매출 구색을 갖추기 위해 부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2006년 기술특례로 상장한 크리스탈지노믹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424억원)의 35%(148억원)가 핫팩 사업에서 나왔다. 2015년 상장한 디엑스앤브이엑스는 장례식장 운영 사업 매출(16억원)이 지난해 매출(75억원)의 20%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헬릭스미스(건기식·매출의 77%), 엔케이맥스(건기식·매출의 29%), 강스템바이오텍(화장품·매출의 25%), 아이큐어(화장품·매출의 37%) 등이 부업으로 실적을 내고 있다.
바이오 기업의 신사업 진출을 부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 다만, 이로 인해 R&D 인력과 비용이 분산되면 신약 개발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바이오 산업을 키우겠다는 특례상장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에 있어 3~5년 정도의 유예 기간은 있으나 마나 한 혜택"이라며 "그동안 특례상장 제도가 바이오 산업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산업 발전의 속도에 맞춰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개인 투자자에 리스크 전가"…제도 '회의론'까지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특례상장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상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기술력을 갖추지 않은 바이오 기업조차 손쉽게 시장에 진입했고, 바이오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졌다는 시각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술성장 기업에 대한 상장 후 관리·감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최근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기술특례 상장 붐이 일었던 시기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것이란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개인 투자자가 바이오 업종의 위험을 인지하고 투자하기보단 상장 기업이라 믿고 투자하는 모습"이라며 "사실상 특례상장 제도는 기관 투자자가 져야 할 투자 리스크를 시장 활성화 명목으로 개인 투자자에 전가한 것으로, 제도를 손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차지현 (chaj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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