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도시락은 식어도 맛있는 재료로, 달걀은 더운 날 피하세요

한겨레 2022. 11.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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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커버스토리] 프로의 도시락 비법
고물가 시대 늘어나는 도시락족에게 알려주는 전문가들의 꿀팁
색감 살리고 음식 배치 도움 주는 초록 채소는 약방의 감초
강한 향은 도시락 속 불청객, 달걀 요리는 따뜻한 날 피하기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한식 도시락. 김민지 제공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장하나(40)씨는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다름 아닌 ‘도시락 싸기’. 통근으로 도로 위에서 2시간 이상을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도시락을 직접 싸서 다니는 이유가 뭘까?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의외의 특별함을 찾게 되는 것이 도시락의 매력”이라고 장씨는 답했다. 직접 도시락을 싸면서 ‘내일은 어떤 메뉴로 구성해볼까’ 기대하는 재미가 있다고. 회사 구내식당의 메뉴도 이제는 지겹고, 자극적인 맛의 회사 근처 식당도 물리는데다 주머니 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미뿐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셈이다.

증가하는 도시락·밀프렙족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식음료업계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품목으로 도시락이 꼽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식당에서 식사하기보다 직접 도시락을 싸거나 구매해 먹는 이가 늘어난 이유다. 실제로 지난 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를 보면 도시락류 제조업의 쌀 소비량은 4만6723톤으로, 전년 대비 16.2% 증가했다. 쌀이 원료로 들어가는 제품군 중 가장 높은 증가 폭을 보였다.

최근에는 고물가 행진으로 ‘런치플레이션’(점심+물가상승을 뜻하는 신조어)을 겪는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면서 ‘도시락족’은 더 늘어나는 듯한 추세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 플랫폼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최근 3개월간 도시락 관련 상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최대 8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리테일 테크 기업 마켓컬리 또한 지난 2분기(4~6월) 마켓컬리에서 판매된 컵도시락 판매량이 1분기 대비 1.6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점심 대용으로 많이 찾는 샌드위치 판매량은 1.4배 늘었고, 점심 도시락을 쌀 때 자주 등장하는 방울토마토와 바나나 판매량도 늘었다고 밝혔다.

직장인 장하나씨의 참치 비빔밥 도시락. 장하나 제공
유부초밥 도시락. 장하나 제공

바야흐로 도시락 전성시대다. 에스엔에스(SNS)에 ‘도시락’을 검색하면 각양각색의 재료로 만든 알록달록한 도시락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도시락 싸는 팁이나, 조리법을 알려주는 영상들 역시 수십만회의 조회수를 자랑한다. 아예 일주일치 도시락용 식재료를 한꺼번에 준비해두는 ‘밀프렙’(meal(식사)과 preparation(준비)의 합성어) 팁을 공유하는 이들도 많다. 김칫국물이 줄줄 흐르고, 각종 재료가 어지럽게 섞여 보기에도 별로이고, 식감도 나쁜 ‘옛날 도시락’은 잊자. 형형색색 보기에도 좋고 영양도 꽉 찬 나만의 도시락 만드는 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내일의 도시락족 혹은 밀프렙족이 되고자 준비 중인 당신을 위해 요리 전문가들에게 도시락 싸기 꿀팁을 들었다.

도시락도 티피오가 중요해

장민영 음식 작가는 “식어도 맛이 있는 재료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상하기 쉬운 날것에 가까운 음식이나 유제품이 많이 들어 있는 드레싱류를 피하는 방법도 전했다. 신선도 유지가 도시락 싸기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란 뜻이다. 그는 나물 쌈 주먹밥과 유부초밥을 추천하며 “스테디셀러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유부초밥 키트에 좋아하는 재료만 간단히 추가해도 든든하고 먹기 편한 도시락이 된다. 장 작가는 조금 더 성의를 보이고 싶은 날이라면 플랫브레드에 인도식 향신료를 넣어 만든 일종의 감자 커리인 ‘마살라 감자’를 만들어 랩처럼 싼 ‘마살라 감자 랩’을 만들어보기를 권했다. 간단한 재료만으로도 이국적인 풍미의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김민지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업계에서 ‘촬영 때문에 온갖 도시락을 다 싸본 전문가’로 통한다. 영화 속 도시락 폭탄부터 상위 1% 부자들의 도시락 등을 비롯해 영화 <아가씨>에서 유독 돋보였던 일본식 ‘에키벤’ 도시락까지, 그의 손을 거친 도시락의 종류와 가짓수만 해도 수십개에 이른다. 도시락 전문가의 도시락 싸기 ‘꿀팁’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는 “메뉴가 정해지고 가장 먼저 신경 쓰는 부분은 음식의 배치”라고 설명했다. 도시락이야말로 뚜껑을 여는 기대감이 큰 음식이기 때문에 음식을 놓은 자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칸막이가 있는 용기를 사용하는 것도 팁이다. 밥과 함께 먹어도 무방한 요리는 덮밥 형태로 만든다거나, 다양한 고명을 올려 보는 재미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 “무조건 초록 채소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메뉴와 메뉴 사이를 구분해주는 칸막이 구실을 해 음식을 섞이지 않게 하고, 신선해 보이는 효과도 준다.

영화 ‘아가씨’의 에키벤. 김민지 제공

김민지 푸드스타일리스트는 ‘특별한 한끼를 위한 도시락’으로 비건 도시락을 꼽았다. 고기 대신 비건 패티로 떡갈비를 만들고, 다양한 채소와 밥을 함께 넣으면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모두 살릴 수 있다. “곡물로 패티를 만드는 ‘달버거’에서 의뢰해 만들어봤는데, 대중 반응이 무척 좋아 상시로 만들어 판매할 생각도 했다”고. 지역색 물씬한 도시락을 만드는 재미도 추천했다. 김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제주도의 토속 공예품이자 일종의 도시락 바구니인 ‘차롱’을 이용한 ‘차롱 봉그락 도시락’을 만든 적이 있다. ‘볼록하다’는 뜻의 제주 방언 ‘봉그랑’의 말맛을 살려 나무로 만든 차롱에 밥을 봉긋하게 쌓아 제주 별미인 옥돔, 빙떡 등을 얹어냈다. 지역색을 담은 도시락은 만드는 재미도 있고, 선물로도 좋을 듯하다.

이승은 요리연구가는 “도시락은 먹을 때의 상황이 가장 중요한 특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티피오’(TPO, time(시간)·place(장소)·occasion(상황)의 앞 글자를 딴 말)를 따져 구성해야 한다는 것. 일하면서 먹으려면 한입 크기로 만들어 쉽게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술과 함께 곁들이는 도시락이라면 마시는 술의 주종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승은 요리연구가는 장소에 따라 음식을 담는 용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따뜻하게 먹는 도시락은 가열할 수 있도록 열에 강한 재질의 도시락에 담고,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주스를 살짝 얼려 보냉재로 사용하면 좋다”고 설명했다.

함박스테이크 도시락. 이승은 제공
주먹밥 도시락. 김민지 제공

가을에 어울리는 버섯·뿌리채소밥

주의를 필요로 하는 식재료도 있다. 이승은 요리연구가는 “달걀은 조리하기에도 편하고 보기에도 근사하지만 생각보다 신선도에 민감한 재료”라고 꼽았다. 조리 후 30분 이내에 먹을 것이 아니라면, 특히 더운 여름철에는 더더욱 피하라고 설명했다. 튀김 요리는 튀긴 뒤 한 김 식히고 완전히 밀폐하지 않은 상태로 담아야 끝까지 바삭하게 즐길 수 있다는 팁도 제시했다.

너무 향이 강하거나 국물이 많은 음식은 도시락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메뉴다. “음식을 조리한 뒤 밀폐해서 보관하는 도시락의 특성상 향이 강한 음식이 한가지라도 있으면 다른 요리에서도 그 향만 강하게 나서 식감이 떨어진다”는 것. 손님에게 대접하는 도시락이라면 알레르기와 질병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필수. “대접하는 이의 성별과 나이는 물론, 조금 더 ‘오버’해서 출신지까지도 알아내면 그날의 도시락은 무조건 성공적일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화려한 색감의 한식 도시락. 이승은 제공

그는 지금 가장 먹기 좋은 도시락으로 ‘버섯과 뿌리채소 영양밥’을 꼽았다. 지금 가장 향이 좋은 제철 버섯을 듬뿍 썰어 넣고 연근 등의 뿌리채소를 곁들여 밥을 해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것. 밥에 간장이나 소금 등으로 살짝 간을 하면 굳이 데우지 않아도 식은 상태로도 아주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흘려들어지지 않는 요즘이다. 매일 시간이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와중에도, 제대로 된 식사 한끼는 해야 하지 않을까. 똑같이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재미가 도시락통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뚜껑을 열기 전의 기대감과 설렘이야말로 도시락만의 미덕이다.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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