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맨' 웨스트브룩이 부활한 이유? 그는 원래 '넘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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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이커스가 5연패 후 2연승했다.
웨스트브룩이 오자 브룩스 감독은 그를 1인자 대접을 해주었다.
그러나 브룩스가 경질되자 웨스트브룩은 외톨이가 됐다.
다만, 웨스트브룩이 언제까지 식스맨으로 그 같은 활약을 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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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러셀 웨스트브룩을 식스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매체들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정말 그럴까?
식스맨은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선발 선수와 교체돼 코트를 밟는 선수다.
식스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출중한 식스맨을 보유하고 있는 팀들 성적이 대개 좋다.
그렇다면 웨스트브룩이 원래 식스맨 취향이기 때문에 잘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그는 식스맨과는 어울리지 않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의 선수다. 다시 말해, 그는 팀의 1인자였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서 그는 '넘버원'이었다. 그의 1인 '독재 플레이'에 시비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케빈 듀랜트는 늘 2인자였다. 웨스트브룩의 그늘에 가려 대접을 별로 받지 못했다. 오클라호마시티를 떠나 골든스테이트로 떠난 것도 따지고 보면 웨스트브룩의 '1인 독재 농구'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듀랜트는 번지 수를 잘못 찾았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는 스테픈 커리가 있었다. 그곳에서도 2인자 또는 3인자 취급을 받자 브루클린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카이리 어빙이 있었다. 듀랜트는 이렇듯 늘 팀의 리더가 되지 못했다.
반면, 웨스트브룩은 팀의 리더로 오랫동안 군림했다.
그러나, 오클라호마를 떠나 휴스턴 로키츠로 이적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오클라호마에 계속 있었다면, 그는 비록 우승 반지는 거머쥐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1인자 대접을 받으며 편안하게 농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휴스턴에서 1인자가 될줄 알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제임스 하든이 이미 보스가 돼 있었다.
결국, 그는 1년 만에 휴스턴을 떠나 워싱턴 위저즈로 갔다. 그곳에는 스캇 븐룩스 감독이 있었다.
브룩스 감독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웨스트브룩을 1인자로 만든 인물이다.
웨스트브룩이 오자 브룩스 감독은 그를 1인자 대접을 해주었다.
그러나 브룩스가 경질되자 웨스트브룩은 외톨이가 됐다. 마침 레이커스가 손을 뻗쳐 워싱턴을 떠날 수 있었다.
레이커스에서 웨스트브룩은 르브론 제임스의 바톤을 이어받아 1인자 농구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레이커스 농구는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를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웨스트브룩은 '넘버쓰리'에 불과했다. 웨스트브룩이 시즌 내내 레이커스 농구에 녹아들지 못한 이유다.
결국 다빈 햄 감독은 웨스트브룩이 1인자 농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식스맨이 그것이었다.
식스맨이 되자 웨스트브룩은 제임스와 데입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자기농구를 할 수 있게 되자 마치 다시 1인자가 된 것처럼 펄펄 날았다.
식스맨이라서 부활한 게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에 부활한 것이다.
다만, 웨스트브룩이 언제까지 식스맨으로 그 같은 활약을 할지는 미지수다.
[장성훈 선임기자/seanmania2020@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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