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태원 참사 속 영웅들, 또 위로받고 끝낼 것인가

송상현 기자 2022. 11.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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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아이들이 떠내려온다.

이태원 참사에서 분연히 구조에 나선 '영웅'들을 바라보며 전혀 관련 없을 것 같던 이 경영학 서적이 떠올랐다.

국민의 시선이 참사의 비극과 이태원 영웅들의 활약에 머무르길 바랐는지 모른다.

대형 참사 후 등장한 영웅에게 위로받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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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 인근. 2022.10.30/뉴스1 ⓒ News1 김예원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강가에서 아이들이 떠내려온다. 낚시하다가 놀란 친구 세명이 강에 뛰어들어 떠내려오는 아이들을 구하기 시작한다. 이중 한명이 아이들을 구하는 것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며 강 상류로 뛰며 말한다. "난 상류로 가서 아이들을 빠트리는 놈을 찾아 멈추게 할게"

행동경제학자 댄 히스의 저서 '업스트림'에서 소개된 일화다. 업스트림은 상류라는 뜻으로 저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다운스트림(하류)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위로 올라가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태원 참사에서 분연히 구조에 나선 '영웅'들을 바라보며 전혀 관련 없을 것 같던 이 경영학 서적이 떠올랐다.

사고 직후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거나 난간에서 사람을 끌어 올리는 등 구조에 나선 시민·경찰·소방대원들부터 대피장소를 마련해준 인근 상인들까지.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참사에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태원 영웅들의 미담에서 위로받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대형참사가 일어났을 땐 늘 영웅들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때 온몸에 소방 호스를 감고 학생들을 끌어올리던 '파란 바지 의인', 구조를 위해 무리한 잠수도 마다하지 않은 민간잠수들의 활약상은 보는 이들의 가슴에 온기를 심어줬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과 같은 대형 참사 때도 어김없이 영웅들이 나타나 비극에 지친 사람들의 숨통을 터주곤 했다.

하지만 참사 이후 영웅들이 만든 미담에 감동만 하고 있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영웅의 활약은 '시스템 실패'의 다른 이름이다. 국가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영웅은 등장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류로 올라가 150명이 넘는 생명이 번화가 한복판에서 깔려 죽는 동안 국가라는 시스템이 무엇을 했는지 차근차근 뜯어봐야 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이번 참사의 원인이 시스템 붕괴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안전 책임자인 행안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을 더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변명할 정도다. 참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상류로 향하려는 행위를 정쟁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국민의 시선이 참사의 비극과 이태원 영웅들의 활약에 머무르길 바랐는지 모른다.

다행히 참사의 원인은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경찰의 총체적 부실 대응은 이미 상당 부분 밝혀졌다. 안일한 경찰 인력 배치, 112신고 부실 대응, 보고 체계 붕괴 등 문제는 차고 넘친다.

그럼 경찰에 끈질기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상류에 다다른 것일까.

경찰을 통제하겠다며 경찰국을 신설했지만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 행안부와 인파 관리 등 적절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도 면피성 발언으로 일관한 용산구청, 서울시의 책임은 경찰보다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가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올라서야 할 상류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안전을 위한 국가의 대응 체계가 조금은 나아졌으리라 믿었다. 결과는 이렇게 또 참담함과 분노로 돌아왔다. 대형 참사 후 등장한 영웅에게 위로받는 일. 언제까지 할 것인가.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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