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행동’ 전문가가 바라 본 이태원 참사[한입과학]
◆ 한입과학 ◆
지난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턴호텔 인근 골목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1일 오전 기준 156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을 두고 국내외에서 정부의 사전 대비가 미흡했다고 지적하는 가운데 이번 사고를 접한 해외 군중 행동 전문가 역시 사전 예방 계획이 필요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사고는 이태원 소재 번화가인 세계음식거리와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잇는 골목에서 발생했다. 골목의 폭은 약 3m, 길이 40m로, 골목의 역 쪽 입구의 고도는 반대쪽보다 5m가량 낮다. 이 좁고 가파른 골목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렸고, 누군가 넘어지면서 연쇄적으로 깔리는 사태로 이어졌다.
군중 행동 연구에 따르면 사고의 일차적인 원인은 ‘밀도’다. 단위 면적당 밀집된 사람 수가 특정 값을 넘어서면 보행자들은 전체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뒤로 돌아갈 수 없고,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도 없다. 목적지를 잃은 보행자들이 밀고 밀쳐지는 와중 사고가 발생한다.
군중 행동 전문가인 키이스 스틸 영국 서퍽대 방문 교수에 따르면 단위 면적(1 제곱미터) 당 사람 수가 6명이 넘으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또 다른 전문가인 메흐디 무사이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이태원 참사 당시 영상을 분석한 후 단위 면적당 8~10명의 보행자가 밀집돼 있었다고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전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군중 밀도가 임계치를 넘으면 두 가지 유형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먼저 군중 속 한 보행자가 밀쳐지거나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발생하는 압사 사고로 이번 이태원 참사가 이에 해당한다. 주변의 압박으로부터 지지해 줄 사람이 없어지면서 보행자들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넘어진다.
다른 한 가지는 벽 쪽에 있는 보행자가 압사하는 경우다. 한 예로 지난 1989년 4월 잉글랜드 셰필드 힐즈버러스타디움에서 발생한 사고는 관중석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자 펜스 쪽 관객이 이에 눌려 질식사한 사례다.
원인은 달라도 두 경우 모두 순식간에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은 폐가 부풀 수 없을 정도로 압력을 받으면 뇌로 가는 혈액의 양이 줄어 30초 안에 현기증을 느끼고, 지속되면 6~10분 안에 사망에 이른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태원 사고의 원인이 보행자가 골목에 우르르 몰려든 것과는 관계없다고 설명했다. 좁은 공간에 보행자가 밀집한 상황 자체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스틸 교수는 “몰려든다는 건 사람이 달릴 공간이 있다는 것인데 이태원 사고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라며 “군중 속에 사람이 많아 사고 위험이 커졌고, 한꺼번에 쓰러진 군중들이 다시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무사이드 연구원 역시 “이태원 사고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지만, 군중이 몰리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특별한 일은 아니다”라며 “메카 성지순례 기간에는 종종 수백에서 수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경찰 인력을 늘리는 것보다 통행로를 방향에 따라 분리하는 등 사전 예방 계획을 세워 밀집되는 상황 자체를 막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태원 사고 영상을 보면 (보행자가) 양방향으로 움직인다”라며 “메카에서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양방향 통행을 금지하는 데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은 보행자는 다른 길로 가야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은 계획된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종교 순례의 군중 충돌과는 다르다“라면서 “일단 밀도가 너무 높아지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지, 이동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예측해 사람들의 이동을 조금이나마 통제하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라며 설명했다.
군중 행동을 연구하는 마틴 아모스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 역시 워싱턴포스트에 전달한 성명에서 “이러한 대규모 행사는 적절한 계획과 군중을 관리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라며 “위험할 정도로 높은 군중 밀도를 예측, 감지, 방지하는 적절한 관리 프로세스를 마련하지 않는 한 이런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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