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만 남았다… 北, NLL 이남 이어 美 본토 전역 위협

박수찬 2022. 11. 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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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사거리 1만5000㎞ 화성-17형
北 평양 순안 일대서 동해상 발사
1·2단 분리 뒤 탄두부 정상비행 실패
韓·美는 ‘비질런트 스톰’ 훈련 연장
北 “엄청난 실수” 거센 비난한 뒤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 다시 쏴
단계별 도발수위 고조
北 “연합공중훈련, 침략형 전쟁연습”
NLL 이남 이어 美 본토 전역 위협
ICBM 정상비행 실패에 추가 발사
단거리 탄도미사일 하루 사이 5발 쏴
美전문가 “김정은의 절박함 보여줘
지금이 협상 테이블 복귀시킬 기회”
북한이 3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을 쐈으나 정상비행에 실패했다. 동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공해상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고강도 도발을 시도한 셈이다. 한·미는 이날 애초 4일까지였던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을 무기한 연장했다.
지난 3월 24일 북한이 시험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노동신문·뉴스1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화성-17형 등 미사일 3발 발사 후 오후 박정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명의 담화로 훈련 연장을 비난한 뒤 오후 9시35분부터 9시49분까지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3발을 다시 발사했다.

북한은 박 부위원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훈련 연장에 대해 “엄청난 실수”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앞서 이날 오전 7시40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ICBM을 발사했다. ICBM은 최고 고도 1920㎞, 비행거리 760㎞, 최고 속도 마하 15(음속 15배)로 탐지됐다. 발사 후 1·2단 추진체는 성공적으로 분리됐으나 탄두부가 비행 도중 제 속도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고 속도로 기록된 마하 15는 지난달 4일 북한이 발사해 4500여㎞를 비행했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개량형 속도(마하 17)보다 느리다. 일반적인 ICBM 속도인 마하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군은 이날 발사된 미사일이 북한의 최신 ICBM인 화성-17형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17형은 화성-15형보다 추력과 탄두중량 등이 향상된 ICBM으로, 2개 이상의 핵탄두를 탑재하고 최대 1만5000㎞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3월16일 시험 발사한 화성-17형은 고도 20㎞ 미만의 초기 단계에서 폭발했다. 이번에는 고각발사 직후 2000㎞ 가까이 상승했고, 단 분리가 이뤄지면서 7개월여 전보다는 기술적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화성-17형에 이어 오전 8시39분쯤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도 발사했다. 이들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330㎞, 고도 70㎞, 속도 마하 5로 탐지됐다. 북한이 최근 잇따라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초대형 방사포일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개최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찾아 “한·미 확장억제 실행력을 더욱 강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정부는 북한이 전날 분단 이후 첫 NLL 이남으로 SRBM 1발을 발사한 데 이어 이날 또 탄도미사일 도발에 나선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미 공군은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해 4일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던 비질런트스톰 기간을 연장했다. 기간 등 세부 내용은 한·미 협의가 진행 중이다. 이번 주말쯤 괌 앤더슨 공군 기지에 배치된 미군의 전략폭격기 B-1B의 한반도 전개 훈련도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SCM) 회의를 개최하고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미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공약의 실행·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북한이 시험발사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北, 한·미 동시 겨냥 ‘미사일 폭주’… 핵실험만 남았다

북한이 한·미 공중 연합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이 연장 결정된 3일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화성-17형 추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함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하고 다시 심야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쏜 것은 한·미에 대한 동시 도발로 해석된다. 북한이 전날 분단 이후 처음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1발의 SRBM을 쏜 데 이어 ICBM을 발사함으로써 대남·대미 핵·미사일 위협 수위를 대폭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北, 비질런트 스톰 연장에 “엄청난 실수”

북한은 이날 오전 ICBM 등 미사일 3발 발사 후 오후 박정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명의담화를 통해 비질런트 스톰의 연장을 비난한 뒤 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박 부위원장은 담화에서 훈련 연장에 대해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선택”이라며 “미국과 남조선은 자기들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부위원장은 앞서 2일 0시를 갓 넘긴 시각에도 담화를 통해 비질런트 스톰을 “침략형 전쟁 연습”이라고 규정하고, 한·미에 대해 “(우리의) 특수한 수단들은 부과된 자기의 전략적 사명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은 박 부위원장의 첫 담화를 기점으로 전날 NLL 이남을 향해 SRBM을, 이날 오전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화성-17형를 쏘고 밤에 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전날 발사한 20여발의 SRBM과 지대공미사일, 100여발의 포사격은 대남 위협을 고조시키는 것과 함께 비질런트 스톰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ICBM 발사는 대미 핵위협을 보여주고 단(段)분리 등 성능 개량을 과시했다고 볼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핵심 기지가 위치한 지역을 전술핵 탑재 미사일로 공격할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한·미를 겨냥한 북한의 연쇄 도발은 연합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되고, 7차 핵실험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이 언제 7차 핵실험을 할지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향후 핵실험과 ICBM과 같은 고강도 전략도발을 통해 강대강 대치 분위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한반도 긴장이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평가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문가들 “北 미사일 도발은 절박함 반증”

북한이 이날 발사한 ICBM이 2단 분리 후 정상 비행에 실패하면서 추가 ICBM 도발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는 29일은 북한의 ICBM인 화성-15형 발사 성공 5주년으로, 북한이 이달 내 화성-17 발사 성공을 외부적으로 과시할 계획을 세웠다는 관측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날 통화에서 “연초 ICBM을 발사했을 때보다 기술적으로 진화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대응을 명분으로 반복 실험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앞서 북한의 무더기 미사일 도발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 군사 안보 전문 연구기관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2일(현지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김정은의 이러한 도발은 그가 얼마나 절박하고 긴장한 상태인지 보여준다”며 “그의 관심을 끈 지금이 북한을 핵무기 관련 협상장으로 복귀시킬 기회”라고 주장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9·19 군사합의가 남북 미사일 발사로 무력화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미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대남 공세로 합의는 무력화했다”며 “한국의 대응이 북한이 국제 규칙과 규범을 위반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수찬·이우중 기자, 워싱턴·도쿄=박영준·강구열 특파원, 홍주형·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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