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이언트스텝에 한국 경제 ‘흔들’… 경기 하방 압력 고조

안용성 2022. 11. 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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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당분간 지속 전망 우세
10월 수출 2년 만에 마이너스
연간 무역 적자폭 더 커질 듯
수입물가 상승으로도 이어져
수요 위축 땐 반도체 등 타격
‘수출 실적 더 악화하나’ 긴장
24일 금통위 금리인상에 무게
한은, 물가중심 통화정책 폈지만
美 12월 최소 빅스텝 예상돼 고심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우리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여파로 우리 경제의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충격’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다. 특히 수출이 문제다. 지난달 수출이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가운데, 이번 조치로 연간 무역수지 적자폭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게다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강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내놓으면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미 연준은 종전 3.00∼3.25%이던 기준금리를 3.75∼4.00%로 0.75%포인트 올렸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것으로, 지난 6월을 시작으로 네 번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미국의 긴축 조치는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각국의 달러를 미국이 빨아들이는 효과를 내다 보니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말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인 달러당 1400원까지 오른 뒤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올해 들어 16% 절하(원화가치 하락)됐다. 미국이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면서 고환율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높은 환율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외국에서 물건을 사올 때 더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수입 물가는 원화 기준으로 전달 대비 3.3% 올랐다.

수입 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와도 연동된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 등으로 6개월째 5%를 넘는 고물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입 물가가 올라가면 물가가 잡히는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는 우리 경제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한미 적정 기준금리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가계 금융 불균형이 심화한 상황에서 과도한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을 가중해 경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AFP연합뉴스
국내 산업계도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현지 수요 위축으로 수출 실적이 악화할 수 있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출 주력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 악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분기 ‘어닝쇼크’(실적충격)를 겪은 상황이다. 여기에 금리 상승에 따른 실질 소득 감소로 정보기술(IT) 제품 수요가 위축되면 업황 악화는 가중될 전망이다. 반도체의 10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7.4%나 감소했다.

국내 완성차업계도 미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자동차 할부 금리가 오르면서 미국 현지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영향을 받는 한국 자동차 수요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 맞춰 공장 증설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배터리 업계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치솟고 있는 원·달러 환율도 부담이다. 철강업계는 철광석과 유연탄 등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해야 해 환율이 오르면 생산비용도 늘어난다. 항공업계도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됐다. 대한항공의 변동금리차입금은 4조7000억원에 달하며, 평균 금리가 1% 오르면 470억원의 이자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자이언트 스텝으로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적정수준을 벗어나 원화가치 하락 등 거시경제 전반의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특히 기업의 자금 사정 악화가 우려되는 만큼 유동성 지원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응 계획)을 사전에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자리 모인 경제 수장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두 번째)을 비롯한 경제 수장들이 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 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한·미 금리차, 3년 만에 1%P… 한은, 또 빅스텝 밟나

미국이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함에 따라 우리나라와의 기준금리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압력이 더욱 커진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범위를 0.75%포인트 오른 3.75~4.00%로 설정하면서 한국(3.00%)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0.75~1.00%포인트로 벌어졌다.

두 나라의 기준금리 차이는 지난 9월 최대 0.75%포인트로 커졌다가 지난달 1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으로 0.25%포인트까지 줄었지만, 다시 1%포인트로 더욱 확대됐다.

양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돼 차이가 1%포인트로 벌어진 것은 2019년 7월 이후 처음으로, 약 3년 4개월 만이다.

더 큰 문제는 연준이 다음 달 FOMC에서 최소 빅 스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한은이 오는 24일 금통위에서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대응하고, 다음달 미국이 5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실행할 경우 연말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1.50%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진 금리 역전기에 최대 격차는 1.50%포인트(2000년 5∼10월)였다.

한은은 물가 잡기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며 물가에 중심을 둔 통화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최근 수출 부진 및 경제성장률 하락, 자본시장 경색 등 경기 하방압력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내년 1분기까지 5%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러 상황이 좋지 않지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데 제1의 변수가 연준의 움직임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는 24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지게 된다. 결국 관건은 베이비 스텝이냐, 빅 스텝이냐다. 시장에서도 이달 금통위의 베이비 스텝, 빅 스텝을 점치는 견해가 거의 반으로 나뉘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이날 통화에서 “횡보장이 계속 진행될 것 같다”며 “시장의 방향성이 바뀌려면 ‘연준의 방향’, ‘경기의 방향’ 중 하나는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그 둘 다 단기간에 바뀔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FOMC 기자회견을 통해 명확해진 것은 고용악화 신호 전에 연준이 물러날 것이라는 일부의 기대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며 “문제는 노동시장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연준의 최종금리 전망치 상향은 재차 주식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소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10월까지보다는 더 느린 속도겠지만 장·단기 채권금리 모두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우상규·김준영·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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