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이어 외화 조달도 비상”…정부, 연말 자금시장 ‘병목 현상’에 골머리
‘레고랜드 사태’로 “해외서 회사채 발행” 떠밀던 금융위
외화 조달길 ‘비상’ 걸리면서 자금시장 상황 악화일로
예년보다 빨라진 ‘북클로징’…기재부 “내년 기다릴밖에”
흥국생명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중도상환(콜옵션) 미행사를 계기로, 악화한 ‘해외채 발행 여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국내 단기 자금시장의 유동성 문제로 공공 기관이나 금융사 등에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에서의 회사채 발행을 독려하고 나선 측면이 있었는데, 일찌감치 동면(冬眠)에 들어간 해외채 발행시장 상황을 감안하지 못한 방침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원화 자금 시장 경색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자금시장의 ‘병목 현상’이 심화하면서 정부 역시 난감해진 모습이다. 하지만 채권 가격 하락장에 이미 올해 들어 꽤나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이른 결산(북 클로징)에 나서고 있어, 연말까지는 사실상 손쓸 방도가 없는 분위기다.
4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흥국생명은 당초 오는 9일로 예정된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면서 논란이 됐다. 당초 지난 9월 새로운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상환 자금을 당겨올 계획이었으나, 투자 모집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일정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흥국생명은 내년 5월 다시 채권을 발행해 5억달러의 영구채를 상환하겠단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한국 신인도 문제와 결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과거 국내 금융기관이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미행사한 때는 2009년 우리은행 사태다. 그 이후 13년 만에 불거진 것이다. 당시에도 한국 외환 사정에 대한 우려로 인식되면서 한국물 채권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최근 시진핑 3기 체제 수립 후 차이나런(해외 투자 자본 및 기업의 중국 이탈) 현상으로 아시아 해외 채권 시장이 개점 휴업 상태로 접어들면서 발생한 특이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 연준의 연속적인 자이언트 스텝, 차이나런 현상 등이 겹치면서 아시아 채권 시장의 투자자들이 일찌감치 북 클로징에 들어갔다”면서 “내년 연초로 넘어가면 사정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미국 등 주요국들의 긴축 기초에 따라 글로벌 채권시장 발행 여건이 나빠진 데서 비롯한 일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돈맥경화’로 시름을 앓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 자금시장의 병목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은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시장의 ‘자금 쏠림’ 문제가 커지자,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과 은행 등 금융기관에 회사채(은행채) 발행을 자제해 달라는 지침을 전달한 바 있다. 초우량채들이 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발생한 문제인 만큼, 이들의 발행을 자제하면 투자 수요가 다시 일반 회사채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공공기관 등에서 자금조달이 필요하다면 최대한 은행 대출을 받되, 부득이하게 회사채를 발행해야 한다면 해외에서 발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독려와는 반대로 닫혀있는 해외채를 통한 자금 조달길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달러 자금 조달을 준비하고 있다가 외화채권 발행 계획을 접었고, 호주달러채 발행을 준비 중이던 신한은행 등도 난감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DB생명 역시 최근 투자자들과 협의해 오는 13일 예정된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변경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예년보다 빠르게 결산에 나서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점도 정부의 고민을 더하는 요소다. 업계 관계자는 “워낙 채권 가격이 떨어지다 보니, 이미 손실을 많이 본 투자자들이 더 금리가 오르기 전에 손익 결산을 빨리 확정하려는 움직임이 벌써부터 감지된다”며 “전반적으로 발행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은 아니나, 최근 이어진 북한의 도발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결코 긍정적인 사안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다시 ‘북(채권 운용 자금 계정)’이 열리는 내년을 기다릴 수밖에는 없다는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12월 미 연준(Fed·연방준비제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뒤 내년 금리 인상 경로나 투자 심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을 때, 우리 기관들이 나가서 자금을 잘 조달하는 수밖에 없다”며 “발행 기관들의 신고를 받는 기재부 입장에서 내년 해외채 발행 물량이나 일정을 잘 조율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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