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겉멋의 재발견

2022. 11. 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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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이 넘고 나서야 나는 겉멋이 들기 시작했다.

속은 텅텅 비고 능력도 안되면서 치장을 하거나 명품을 휘두르는 겉멋이 아니라 나의 외면에도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는 의미다.

억지로 젊어 보이거나 남들에게 허세를 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기 위해 겉멋에도 신경을 쓰며 나이 들어가는 것이 기쁘다.

살짝 겉멋이 든 나는 우리나라 경제활성화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캐시미어 스웨터를 한벌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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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이 넘고 나서야 나는 겉멋이 들기 시작했다. 속은 텅텅 비고 능력도 안되면서 치장을 하거나 명품을 휘두르는 겉멋이 아니라 나의 외면에도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는 의미다.

예전에는 화장을 하거나 요란한 옷차림을 하는 이들에 편견이 있었다. 마치 부실한 상품을 화려한 포장지로 위장한 속물로 여겼다. 지식과 지혜, 자기성찰과 고상한 취향으로 무장해 내면의 불빛이 은은히 드러나는 사람이 근사해 보였다.

그런 단순한 사고로 나를 꾸미는 데는 시간과 비용을 별로 들이지 않았다. 화장품도 대충 아무 제품이나 바르고, 옷도 시장이나 홈쇼핑에서 구겨지지 않는 소재를 골라 입고, 액세서리도 눈에 띄는 것을 생각 없이 사서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내 피부와 머리카락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지고 ‘네게 어울릴 것 같아 골랐다’는 지인들의 선물은 갈수록 저렴해졌다.

정작 사람들은 나의 내면이나 영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니 나도 모르는 내 내면을 그들이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읽은 책들, 내가 온몸으로 겪어서 깨달은 알량한 지혜나 타인에게 베푼 호의, 남들 모르게 기부한 기부금들은 내 예상과 달리 전혀 겉으로 우아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 딸을 비롯한 지인들은 성의가 없어서 오히려 과해 보이는 나의 화장이나 유치한 옷차림을 지적하고 안쓰러워했다.

생각해보면 세기의 지성이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옷에 다는 브로치로 정치적 메시지를 상징했다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부 장관 등도 외면의 멋, 즉 겉멋에 몹시 신경을 썼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립한국문학관장인 문정희 시인은 훌륭한 시만큼이나 근사한 패션 감각으로 매력을 더한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각 나라의 대통령들도 전속 코디네이터를 고용해 화장이나 헤어스타일·의상으로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기자 시절에 어느 명사를 취재했는데 말씀하실 때마다 구취가 느껴지고 덜렁거리는 셔츠 소매 단추가 눈에 거슬려 인터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는 요즘 화장도 정성을 다해 꼼꼼하게 하고 여름철에는 발톱에 페디큐어도 바른다. 가끔은 나를 위해 제법 가격이 나가는 옷도 사고, 양가죽 부츠와 스카프에 대한 기대로 겨울을 기다리기도 한다. 땅속에 보물이 들어 있어도 폐허가 된 집에는 사람들이 가려 하지 않듯 내 몸을 무장지대로 두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억지로 젊어 보이거나 남들에게 허세를 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기 위해 겉멋에도 신경을 쓰며 나이 들어가는 것이 기쁘다. 피부에 윤이 날 때는 거울을 볼 때도 나 자신에게 미소 짓게 되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으면 마냥 행복하다.

물론 온갖 보석과 모피로 휘감아도 표정이 심술궂거나 입에서 천박한 말이 나오면 더 비참하다. 그러나 정신세계와 내면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외면에도 투자하는 것이 균형 감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살짝 겉멋이 든 나는 우리나라 경제활성화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캐시미어 스웨터를 한벌 구입했다. 상생경제라고 믿으면서….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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