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못한다'던 교수님, 결국 '여학생 필요하다'더라"

김훈남 기자 2022. 11. 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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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ICT(정보통신기술), 바이오 등의 분야로 산업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요즘 이공계에 진출하려는 인재들은 예전과 다른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공돌이'(공대 남성)나 '공대 아름이'(공대 여학생)와 같은 남성 중심적 표현이 옛말이 된 것처럼 이공계에도 남성과 여성 양쪽의 다양성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 여성인력이 이공계 분야에서 필요한 이유와 강점을 설명해 달라.

- 이공계 진출을 꿈꾸는 여학생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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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K-걸스데이] 민병주 KIAT 원장 "남녀 차이가 아니라 다양성으로 접근해야"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과 박새롬 성신여대 교수가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KIAT 사무실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가장 힘들었던 건 여성에 대한 편견이었다. 하지만 전공 선택을 말렸던 교수님도 나중엔 '원자핵 실험에도 여학생의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AI(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박새롬 성신여대 교수)

AI와 ICT(정보통신기술), 바이오 등의 분야로 산업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요즘 이공계에 진출하려는 인재들은 예전과 다른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공돌이'(공대 남성)나 '공대 아름이'(공대 여학생)와 같은 남성 중심적 표현이 옛말이 된 것처럼 이공계에도 남성과 여성 양쪽의 다양성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머니투데이는 여학생의 이공계열 진학과 산업현장 진출을 위한 기술체험 프로그램 'K-걸스데이'(K-girls' day)의 일환으로 지난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실에서 민병주 KIAT 원장과 박새롬 성신여대 교수의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국회의원 출신의 민병주 원장은 우리나라 원자핵 물리학 분야를 개척한 여성 이공계 학자 출신으로 올해 9월부터 KIAT를 이끌고 있다. 박새롬 교수는 1990년생으로 국내 최연소 대기업 사외이사가 된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의 이공계 대표주자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KIAT 사무실에서 열린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이공계 여성으로서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민병주 원장(이하 민 원장) = 가장 큰 어려움은 편견이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석사·박사 때 실험 쪽으로 진로를 정하려고 교수방 문을 두드렸을 때 교수에게서 처음으로 돌아온 답이 "여학생이 하기 어려운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였다.

(유학을 간)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교수는 "이론 물리학을 하겠다면 다른 교수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실험을 하고 싶다고 말해 겨우 "6개월간 실험을 해보고 결정하자"는 답을 들었다. 그게 학과 개설 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여학생이 연구실에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는 나를 말렸던 교수가 "원자핵 물리 실험에도 여학생의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원자력연구소에 들어갈 때도 면접에서 "결혼하면 그만두거나 다른 데로 갈 것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엔 여성이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많아 "배우자를 (연구소가 있는) 대전에서 찾겠다"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 민 원장처럼 선배들이 겪었던 환경과 비교하면 지금이 달라진 게 있는가.

▶박새롬 교수(이하 박 교수) = 앞에서 원장님 같은 분들이 많은 걸 바꿔주셔서 직접적인 차별을 느끼진 못했다. 오히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구나'하면서 놀라고 있다. 듣기 전까진 예전 상황을 몰랐는데 (민 원장님이 겪은 것 같은) 직접적인 차별은 많이 없어졌고 차별적인 표현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민 원장 = 박 교수와 저의 중간 세대에서 많이 느꼈을 부분이 출산이나 육아일 것이다. 여성과학기술인회 활동이나 국회 있을 때 가장 노력했던 부분이 직장보육시설 확충이다. 10년 전 얘기인데도 직장이나 출연연구소, 국립대학에 계신 여성분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애로사항이 '직장보육시설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식이나 문화 등 개선해야 할 일이 많다.

- 교단에 서면 10~20대 학생들의 고민을 조금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박 교수 = "수학을 못 하는데, 컴퓨터를 못 하는데 이공계를 가도 되는가요?"라는 질문이 많다.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도전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수학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데에도 수학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수학을 못 하면 해당 분야 진출이 어려울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민 원장 = 우리나라 수학교육이 문제풀이 중심으로 돼 있다 보니까 '수학을 못 한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 실제로는 수학을 못 한다는 말은 문제를 못 푼다는 것이지 논리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수학에서 중요한 건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논리력이다. 수학을 잘하려면 문제 풀이와 상관없이 책도 읽고 새로운 걸 생각하는 사고력도 필요하다.

박새롬 성신여대 교수가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KIAT 사무실에서 열린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요즘은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이공계 현장에서 남녀 성비 불균형으로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민 원장 = 과거에도 화학이나 생물 쪽 분야는 여학생이 많았고 최근에는 조금 더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물리나 기계공학처럼 하드웨어 중심 학문 분야에선 여전히 여학생 비중이 10% 안팎이다. 여학생이 진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여성) 선배가 적다 보니까 직장에서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출산이나 육아 영역에선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 있는데도 승진이나 업무에서 소외되는 부분은 문제로 남아있다.

▶박 교수 = 컴퓨터를 예를 들면, 여학생이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래픽카드를 설치해보는 것 같은 직접적인 경험이 적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다가가기 어렵고 회사에 진출해서도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공부나 도전에는 (성별에) 제약이 없고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할 수 있다고 독려해야 한다.

▶민 원장 = 과거에는 (특정 분야에 대해) 여성이 하면 안 좋다, 안 된다고 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부터 관심을 안 갖게 하는 셈이다. 여성이 잘하는 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듯이 개인의 노력이나 도전에 따라서 결과가 나와야 한다.

- 여성인력이 이공계 분야에서 필요한 이유와 강점을 설명해 달라.

▶민 원장 = 과거에는 하드웨어가 중심이다 보니 남성을 선호했다면 이젠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회가 바뀌었다. 대학원 시절 실험을 하다 보면 미세한 조절이 필요한 부분이 여성으로서 장점이 되곤 했다. 장시간 이어지는 가속기 실험 특성상 늘 2명 정도 밤을 새야했는데 난 밤을 잘 새다보니 나중에는 밤샘조로 넣어주더라. 남녀가 신체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실험에 임하는 마음이나 도전정신을 갖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 교수 = AI 분야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다. AI가 스스로 문제를 학습하도록 해야하는데 어떤 문제를 풀게 할지도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고민해야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특성이 유사한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그들의 문제만 관심을 갖게 된다. 여성의 역할은 다양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민 원장 = 맞다. 최근에는 남녀 차이가 아니라 다양성으로 접근한다. 박 교수의 말처럼 최근 학문이나 사회에 기여하는 기술이 개발되는 데 있어 다양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여성과 남성이 비슷한 비율로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협력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 이공계 진출을 꿈꾸는 여학생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 원장 = 학생들은 본인이 어떤 힘을 갖고 있고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의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는 40대 중반에 정치를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그 나이(82세)에도 오랜 기간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도전이 빠르고 늦고는 중요하지 않다. 낸시 펠로시의 자서전 제목이 'Know your power'(너의 힘을 알라)다. 스스로 장점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박 교수 = 이번 방학 때 K-걸스데이와 비슷하게 중·고등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참여율이 낮았다. 입시에 도움이 안 되니까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채로 공부만 하다 보니 막막해하는 학생이 많다. 본인의 관심사나 진로를 찾기 위해선 체험도 귀중하고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 이공계 진출을 꿈꾸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K-걸스데이'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달라.

▶민 원장 = K-걸스데이가 올해 9회째를 맞이했다. 지난해까지 코로나19(COVID-19) 때문에 대면으로 진행하지 못했는데 올해 산업현장 방문과 온라인 행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K-걸스데이에서는 이공계 진학을 원하는 여학생을 상대로 산업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박 교수같은 선배들과 만남을 통해 이공계 이해도를 높이고 관심을 가지게 한다.

올해 행사는 2019년 행사에 참여했던 여학생이 선배가 돼 서포터즈로 참여했는데, 그 학생이 성신여대에 진학해서 박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K-걸스데이는 고등학생 때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현장을 보고 관심을 갖도록 하고, 다시 그 학생이 후배들에게 경험을 얘기해 주는 선순환이 늘어나길 기대한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과 박새롬 성신여대 교수가 1일 서울 강남구 KIAT 사무실에서 대담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 K-걸스데이(K-Girls' Day) 운영사무국


[프로필]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1959년 △이화여대 물리학 학사 및 동대학원 석사 △규슈대 대학원 이학 박사 △한국원자력연구원 단장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교육센터 센터장 △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 △한국연구재단 비상임이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운영위원 △제19대 국회의원(새누리당) △이화여대 기초과학연구소 초빙교수 △울산과학기술원 초빙교수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 △제32대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박새롬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조교수 △1990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서울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박사 △서울대 수학기반산업데이터해석연구센터 연구원 △카카오 사외이사 △성신여대 지식서비스공과대학 융합보안공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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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남 기자 hoo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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