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길 바랍니다 [책&생각]
시만의, 시에 의한, 가장 문학적인
버스킹…‘죽음보다 사랑’ 짚어
인생의 역사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l 난다 l 1만8000원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의 제목은 <인생의 역사>다. 2005년 비평을 시작한 이래 ‘시’만 다룬 첫 책이다.
부제는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고대시가와 이영광의 시 모두 ‘나’의 말은 절박한, 그러나 당신은 듣지 못할 수화 같다. 몸의 부르짖음, 그 ‘몸부림’의 말은 무엇이던가. 시화집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인용구로 꼽을 만한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랍니다.”(<전체주의의 기원>,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보낸 연애편지에 적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부서지는 개별적 삶의 부서질 수 없는 원형적 생애를 시가 고래로 증언해왔다는 믿음은 책의 1~5부 차례로 더 여실하다. 고통의 각―사랑의 면―죽음의 점―역사의 선―인생의 원. 이 장대한 시공의 지평에서 저자는 되뇐다.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행) 아래로 쌓여가는(연) 일”이 “인생의 육성”으로서의 시인 터,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말하자면 ‘사랑의 본색을 시로 다시 겪는다’는 전제라서 다시금 목차에서 보란 듯 ‘고통’과 ‘죽음’ 사이 ‘사랑’을 선후행시킨 이유, 가령 ‘고통―죽음―사랑’의 흐름이 아닌 까닭을 한나절 고민해야 했는데, 이윽고 서울 이태원에선 고통 속에 죽음으로 내몰린 이들의 소식이 낙석처럼 몸부림쳐 나앉았다.
‘슬픔학’을 왜 가르치지 않는가 자책·타박하면서도 이번엔 ‘사랑’을 생지옥의 복판에 세운 그의 입장을 기사체로 추리면 이러하다.
고통은 진실하다. 자신을 드러낸다. 비관적 허무주의자조차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20년 후에, 지에게’, 최승자) 증언하질 않는가. 죽음은 이미 삶에서 발원한다. 다만 삶이 그러하듯 죽음도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상태다. 상태는 변주된다. 고통의 각에서 비롯하되 사랑의 면에 입각하여 이 죽음과 그 죽음은 달라진다.
그리하여, 때로 너의 죽음은 기어코 나의 죽음이 된다. 막다른 이 지경을 신형철은 3부 두 번째 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텍스트: ‘장례식 블루스’, W. H. 오든)에서 짚는다. 히라노 게이치로(<나란 무엇인가>)를 동반한바, ‘나’란 여러 나(분인·dividual)의 집합이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그의 죽음은 하나의 나, 심지어 가장 행복한 나, 즉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고통과 환멸의 관계 속)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게 했던 나를 잃는 일이다.
당신의 존재를 간구하는 하이데거식 사랑은 결국 당신과 나의 죽음을 선험적으로 고해하는 일로, 사랑의 감각은 죽음의 감각과 닿는다. 덧붙여진 기타노 다케시의 말(“5천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대로,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을/죽일 수는 없다. 죽음을 바르게 세는 법으로 애도는 비로소 애도다워지므로, 이제 ‘장례식 블루스’를 켜보자.
“모든 시계를 멈춰라, 전화를 끊어라,/…// 비행기를 하늘에 띄워 신음하며 돌게 하고,/…/ 거리의 비둘기들 하얀 목에 검은 상장을 두르고,/ 교통경찰에게는 검은 면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우리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 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부분)
지구적 애도 이후의 제의는 무엇이어야 할까. 있기는 한가. 외견상 죽음의 기척이 역력한 나희덕의 시 ‘허공 한줌’을 ‘죽음’ 대신 ‘사랑’의 증언 목록에 끼워둔 저자의 저의로 짐작해볼 뿐이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부분)
저자의 말마따나 “사랑을 부드럽게 내려놓는 일”인데, 여기서부턴 떠난 자의 사랑법으로 들린다. ‘사랑합니다, 남은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시화집엔 스물다섯 편의 시가 선별됐다. 진리처럼 김수영과 이성복의 시가 들어가 있고, 아홉 편의 시(릴케, 밥 딜런 등)는 저자가 직접 번역했다. 독자들은 ‘인생의 원’에 누워 눈을 감아볼 수도, ‘죽음의 점’에서 웅크릴 수도, ‘사랑의 면’에서 활개 펼 수도 있다. 그때 시도 함께 눕고 내려앉고 설 것이다. “나날들은 우리가 사는 곳”(‘나날들’, 필립 라킨, 5부 ‘인생의 원’)일진대, 우리의 거처는 부서져도 ‘나날들’밖에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후기 “나의 책이 멀게 느껴진다”
평론가 신형철은 2일 <한겨레>에 “이 책의 은밀한 주제는 사랑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과 다르길 바랐고 4년이 지났는데 (막상) 가장 최근 책 같은 이상한 느낌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물었을 때 “화가 난다”며 토해낸 말이다. 책은 2016년 <한겨레>에 연재한 ‘격주시화’로 몸통을, 2018년부터 최근까지 쓴 글(부록 ‘반복의 묘’ 등)로 남은 3분의 1을 채웠다. 마치 슬픔의 시가 사랑의 시로 “알던 시도 다시 겪(게 하)는” 중대한 저자의 경험 고백이 올해 쓰인 프롤로그에 있다.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텍스트 삼은 머리글은, 아내를 네 번이나 응급실로 보낸 끝에 지난 1월 태어난 한 생명에 대한 헌사로 귀결한다. 연재물로 구성한 1~5부에 유일하게 올해 써서 추가한 시 ‘허공 한줌’ 역시 대목 “어렵다”면서도 작정하여 읽어낸 까닭. 그래서 갓 내놓은 제 역작을 두고 그가 <한겨레>에 남긴 “지금 책이 멀게 느껴진다”는 말은 아이 잃은 부모의 마음을, 무슨 시를 보고 또 보고 달리 겪어내어 필사해도 당장 감당하기 힘드리란 이 시절의 가장 정확한 신형철식 평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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