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1인 통치시대…중국 청년들이 ‘중화’ 모자 벗어던진다면
인류학자 샹뱌오와 청년들 대화
‘주변’ 상실한 시대 진단
무한경쟁에 상처받은 청년세대
‘강대국 환상’으로 도피
주변의 상실
방법으로서의 자기
샹뱌오 지음, 우치(대담), 김유익·김명준·우자한 옮김 l 글항아리 l 2만5000원
‘시진핑 1인통치’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다수가 곧 미국을 넘어서 세계 최강대국이 된다는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의 열망으로 가득하고, 현실에 대한 토론과 성찰을 잊은 ‘21세기 홍위병’일 뿐일까.
2020년 중국 청년들은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책에 열광했다. 인류학자 샹뱌오가 쓴 이 책은 그해에 20만부 이상 팔렸다. 샹뱌오는 이 책에서 거창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청년들이 국가와 민족의 거대한 모자를 벗고, 자신과 부근(주변)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샹뱌오는 “왜 꼭 국가적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중국 담론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자기 생활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거대한 국가와 민족의 모자를 눌러써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죠”라고 짚는다. 중국 청년들은 왜 이런 이야기에 이토록 마음을 쏟고 있을까. 거기에 이들이 밖으로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이 책 <주변의 상실>은 <방법으로서의 자기>와 샹뱌오의 인터뷰·대담들을 한국어로 옮겨,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한다.
샹뱌오는 계속 국경과 경계를 넘어온 연구자다. 저장성 원저우의 부두 노동자 마을에서 교사의 아들로 자랐고, 1989년 톈안먼 시위가 유혈 진압된 바로 다음해에 베이징대학에 입학해 1년 동안 군사교육을 받았다. 학부 시절 베이징에 일하러 온 고향 출신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저장촌’이 저가 의류 생산·판매 기지로 변모하는 과정을 현장에서 연구해 <경계를 넘는 마을: 저장촌 이야기>를 썼다. 이 연구가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면서 옥스퍼드대학에 유학하게 되었고, 글로벌 IT기업이 인도 출신 개발자를 고용하는 분업구조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대 교수를 거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샹뱌오는 현대사회가 개인에 대한 몰입과 거대 사건에 관한 거창한 논평만을 오갈 뿐, 정작 자신의 주변 세계를 돌아보지 않는 자아를 양산하는 ‘부근의 소실’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은 전세계적 거래의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부근의 소실’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샹뱌오가 제안하는 ‘방법으로서의 자기’란 세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문제로 삼자는 것이다. 이때의 ‘자기’는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개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매번 새로워지는 네트워크다. 이런 ‘방법’에 따르면, 단일하고 거대한 중국 담론이란 의미가 없다. 중국에 대한 이런 이해는 소박해 보이지만, 중국 당국의 국가주의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반론이 된다. “현재의 모순을 부여잡고 이 모순에서 출발해 과거의 모순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역사로 들어갈 수 있고 역사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들어가면 일종의 연관되고 안정되고 중국이라는 국가를 단위로 하는 역사는 필요 없어집니다. 중국의 역사는 아마 단절된 것처럼 보일 겁니다. 예컨데 하이난성의 문제는 아마 말레이시아와 타이에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하나의 안정된 ‘중국 서술’의 존재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국가가 선전·선동하는 거대담론의 껍질을 깨고 현실 속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중국이 드러난다. 2020년 중국 사회의 유행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의미하는 ‘네이쥐안’(內卷)이었다. 샹뱌오는 “계속 때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팽이처럼 ‘자신을 끝없이 다그쳐야 하는 팽이식 무한 루프”인 네이쥐안 현상의 이면에는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고도의 일체화된 경쟁이 있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이 시작됐을 때 엇비슷한 상태였던 중국인들은 남들보다 뒤처지게 될까봐 겁내며 동시에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14억 인민이 모두 돈을 많이 벌고 30여평의 집과 차를 사고,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이제는 “(계층 상승의) 막차가 모두 떠났기 때문”에 모두가 불안에 빠졌다. 빠져나갈 수 없는 무한경쟁 속에서 중국인들의 겪는 초조함에 대한 샹뱌오의 이런 해석은 중국 사회의 이면을 이해하게 하는 동시에,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실은 거의 비슷한 현실과 불안 속에 내던져진 채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런 현실에서 중국 청년들이 애국주의와 중화문명론에 더욱 호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샹뱌오는 이렇게 설명한다. “동아시아 모델의 서사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삶이 갈수록 나아진다는 거죠. 그런데 실제 상황, 특히 2010년대 이후의 청년들의 현실은 더이상 이 서사를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이들이 처한 현실에서 뛰쳐나오는 환상을 제공하는 게 바로 강대국에 대한 상상인 거죠.” 이렇게 존엄에 상처 받은,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이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올바름(PC)을 공격 대상으로 삼거나, ‘샤오펀훙’으로 불리는 애국주의자가 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단결해 미국을 이기자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왜 대안이 될 수 없는가를 샹뱌오는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중국 주류의 마음은 대안적인 길을 걷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권력을 대체하고 싶어합니다. 새로운 ‘원톱’이 되고 싶다는 것이죠.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미국과 아주 비슷합니다. 저는 이게 공동의 이상을 상실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자기를 증명하겠다는 것은 사실 자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시장의 논리에 상실된 자신과 주변을 회복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려는 샹뱌오와 그에게 호응하는 청년들이 보여주는 ‘중국’은 ‘시진핑의 중국’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시진핑 3연임을 확정하는 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 직전 베이징 대학가의 육교 위에 ‘PCR 검사가 아닌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거짓말 대신 존엄을…” 플래카드를 내걸고 목숨 건 시위를 벌인 그런 이와 닿아 있는 길일 것이다. 이 책을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에 와 있는 중국 유학생, 대만에 유학중인 한국 학생이 함께 번역한 것도 그런 길을 만들어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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