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과학기술의 이미지는 결국 우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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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는 '대중적 학술서'를 표방하며 한국과학문명사 총서 30권을 완간하였다.
사실 과학책 제목에 '한국'과 '과학기술'이 들어가면 책에 대한 호감도가 뚝 떨어진다.
과학책 시장에서 '한국의 과학기술'을 이야기하는 책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고 있기에 독자들이 좀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과학기술사학자 김태호의 <과학기술과 한국인의 일상> 은 학술논문과 대중적 글쓰기를 결합한 좋은 책이다. 과학기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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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경의 과학 읽기]
과학기술과 한국인의 일상
김태호 지음/들녘(2022)
올해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는 ‘대중적 학술서’를 표방하며 한국과학문명사 총서 30권을 완간하였다. 사실 과학책 제목에 ‘한국’과 ‘과학기술’이 들어가면 책에 대한 호감도가 뚝 떨어진다. ‘한국’이라는 거대 담론에 소소한 재미는 증발되고, ‘과학기술’이라는 딱딱하고 무거운 용어가 책 판매량을 한없이 끌어내릴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이것은 우려에 불과했다. 하드커버 양장본과 ‘총서’라는 학술적 분위기에 경계심을 푼다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로 구성되었다. 과학책 시장에서 ‘한국의 과학기술’을 이야기하는 책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고 있기에 독자들이 좀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과학기술사학자 김태호의 <과학기술과 한국인의 일상>은 학술논문과 대중적 글쓰기를 결합한 좋은 책이다. “한글의 기계화는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한국형 냉장고’를 찾아서, 한국인이 30층까지 ‘온돌집’에 살게 되기까지” 등등 목차만 보더라도 흥미를 자아낸다. 한글의 문자생활, 쌀과 김치의 식생활, 보일러 난방의 주생활은 하루의 일상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들이다. 김태호는 100년을 조망하는 과학사의 망원경으로 한국인의 생활 변화를 비춰보았는데 그 렌즈에 우리네 가족사가 포착된다. 언제 냉장고를 장만하고 온수 난방집에서 살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는지, 그 기억의 편린들을 따라가다보면 과학기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었다.
서구에서 들어온 근대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대표적인 외래문화다. 전통문화와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오늘날 일상이 되어버린 과학기술이 자리 잡기까지 숱한 사연들이 있었다. 이 책은 서구 과학기술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만나 어떻게 변용되는지 다각적으로 살펴본다. ‘기술의 한국화’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역사를 복원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생각과 감각을 살려놓았다. 일상의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한글의 기계화에서 “한글을 쓰는 자명한 최선의 방법 같은 것은 없다.” 전통적 식생활을 하는 “한국인에게 냉장고는 필요한 물건이었는가?” 현대 주거생활에서 “온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문장들을 통해 김치냉장고와 온수 온돌을 다시 보게 된다. 김치냉장고는 아파트 주거문화에 김장의 식문화를 수용한 기술이고, 온수 온돌은 전통 온돌의 개념에 서구의 난방 기술을 결합한 것이다. “서구형 아파트에 살아도 바닥은 따뜻해야 하고, 김치는 부엌 뒤에서 바로 꺼내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한국인의 삶이다.”
김태호는 과학기술의 시대적 변천사를 “기대와 가능성의 변증법”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반대로 새로운 기대가 새로운 기술을 낳거나 기존 기술의 새로운 해석과 적용을 촉발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은 과학기술에 어떤 기대를 하고 사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지난 20세기에 풍미했던 과학기술의 이미지, 키워드, 과학기술자의 초상, 우표, 영화 등에서 드러난 우리의 기대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국가가 주도하는 근대화, 경제개발, 민족주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일례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허준, 장영실, 세종대왕의 초상은 1970년대 정부의 ‘표준영정’ 제도에 의해 창작된 것이다. 우리의 기대와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과학기술의 이미지는 결국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한국의 과학기술은 한국인이 바랐던 무엇이 된다는 것을 역사가 알려주고 있다.
정인경/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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